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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inDS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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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1T18:19:38Z</updated>
	<subtitle>사용자 기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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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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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27: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17세기 전반의 한국 고전소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상흔 속에서 시작됨.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전쟁을 보는 시선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뉨.&lt;br /&gt;
&lt;br /&gt;
1.     전쟁의 시대에 던져진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세계에 대한 환멸을 작품 저변에 둠&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애정 전기류 &amp;lt;주생전&amp;gt;, &amp;lt;운영전&amp;gt;, &amp;lt;최척전&amp;gt; / 신선전의 영향을 수용한 전계소설 &amp;lt;남궁선생전&amp;gt;, &amp;lt;장생전&amp;gt;&lt;br /&gt;
&lt;br /&gt;
2.     ‘실패한 전쟁’의 책임 소재를 따지면서도 조선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작품.&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amp;lt;달천몽유록&amp;gt;, &amp;lt;강도몽류록&amp;gt; 등&lt;br /&gt;
&lt;br /&gt;
3.     전쟁을 ‘승리의 역사’로 만들어 패배의식을 걷어내고자 한 작품&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amp;lt;임진록&amp;gt; 및 그 후대적 계승인 한글소설들&lt;br /&gt;
&lt;br /&gt;
&lt;br /&gt;
- 윤바오🐼&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inds.or.kr/mediawiki/index.php?title=2._%ED%98%84%EC%8B%A4_%EB%B9%84%ED%8C%90%EC%9D%98_%ED%98%95%EC%8B%9D:_%ED%9D%AC%EB%A7%9D_%EC%97%86%EB%8A%94_%EB%B9%84%ED%8C%90&amp;diff=221</id>
		<title>2. 현실 비판의 형식: 희망 없는 비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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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27: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몽유록&lt;br /&gt;
&lt;br /&gt;
-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뒤 전쟁 수행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 작가들이 재발견한 형식 중 하나&lt;br /&gt;
&lt;br /&gt;
- '꿈에 노닌 기록'인 몽유록은 전기소설의 진화 과정에서 파생된 독특한 소설 형식&lt;br /&gt;
&lt;br /&gt;
- 김시습의 「남염부주지」, 「조신전」이 형식적 연원&lt;br /&gt;
&lt;br /&gt;
- 이를 확장하여 전쟁 체험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포폄과 의론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형식으로 진화시킨 작품이 「달천몽유록」, 「강도몽유록」&lt;br /&gt;
&lt;br /&gt;
&lt;br /&gt;
「달천몽유록」은 임진왜란 직후 윤계선이 지은 작품&lt;br /&gt;
&lt;br /&gt;
작품의 현실 공간 묘사가 대단히 음울하며 임진왜란 초기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달천 전투 현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혼령들의 기운 담아 지은 시, '책략 없는 장군'이 수록되어 있음.&lt;br /&gt;
&lt;br /&gt;
달천 전투의 지휘관 신립 장군이 전투를 그르쳐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 동안 임금인 선조가 의주로 피난 떠난 일에 대한 비판이 신랄함.&lt;br /&gt;
&lt;br /&gt;
윤계선이 황해도 옹진의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몽유'가 시작됨.&lt;br /&gt;
&lt;br /&gt;
나비를 따라가는 것이 꿈의 시작으로 도착한 곳에는 전사한 1만 명의 유령들이 존재하고 처참한 모습의 병사들의 형상으로 임진왜란의 참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냄.&lt;br /&gt;
&lt;br /&gt;
죽은 병사들은 전쟁으로 아들이나 남편을 잃은 가족의 처지를 걱정하다가 파담자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자신들을 위한 시를 써준 사실에 고마워함.&lt;br /&gt;
&lt;br /&gt;
유령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달라고 하였고, 파담자는 여타 몽유록처럼 유령들의 좌담회에 참관함.&lt;br /&gt;
&lt;br /&gt;
먼저, 무명의 병사가 신립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하자 신립의 유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변명을 함.&lt;br /&gt;
&lt;br /&gt;
신립은 패배를 자신이 아닌, 명령에 따르지 않은 병사들의 비겁함을 질책하며 전쟁의 패배는 사람의 힘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함. 작자는 신립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원한을 풀어주고자 함.&lt;br /&gt;
&lt;br /&gt;
다음으로 병사들을 물러가게 한 후 이순신과 임진왜란의 영웅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소회를 펼침.&lt;br /&gt;
&lt;br /&gt;
무공을 세운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 사연을 토로하게 하고, 논란이 있는 인물은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발언을 하게 함.&lt;br /&gt;
&lt;br /&gt;
「달천몽유록」은 잘못에 대해 따가운 질책을 하기보다는 하소연을 들어 주며 원혼을 위로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반대되는 입장에 선 인물의 시각도 균형 있게 제시함.&lt;br /&gt;
&lt;br /&gt;
&lt;br /&gt;
- 동쥬👻&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inds.or.kr/mediawiki/index.php?title=1._%EC%9D%B8%EA%B0%84_%EC%8B%A4%EC%A1%B4%EC%9D%98_%ED%98%95%EC%8B%9D:_%ED%99%98%EB%A9%B8%EA%B3%BC_%EC%B4%88%EC%9B%94&amp;diff=220</id>
		<title>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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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22: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 &amp;lt;주생전&amp;gt; ===&lt;br /&gt;
영웅소설에서 전쟁은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통해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기회지만, 애정소설에서 전쟁은 세계의 횡포일 뿐임.&lt;br /&gt;
&lt;br /&gt;
권필의 &amp;lt;주생전&amp;gt;은 비극적 애정전기 계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임.&lt;br /&gt;
&lt;br /&gt;
* 전기소설: 중국 당대 성립, 이후 고유의 장르 관습을 계승, 변용하며 성장을 거듭한 ‘한문문언체 단편소설’. &lt;br /&gt;
&lt;br /&gt;
14~16세기 전반 사이 중국의 &amp;lt;전등신화&amp;gt;, 한국의 &amp;lt;금오신화&amp;gt;, 베트남의 &amp;lt;전기만록&amp;gt;이 창작된 것과 같이 전기소설은 중세 동아시아 한문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성장 발전하였던 역사적 문학 장르임.&lt;br /&gt;
&lt;br /&gt;
* 당대 전기를 신괴, 염정, 호협의 세 유형으로 나누는데, 17세기 초까지의 우리 소설사에는 ‘염정’에 해당하는 애정전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음.&lt;br /&gt;
&lt;br /&gt;
-&amp;gt; 나말여초의 &amp;lt;최치원&amp;gt;에서 시작해 &amp;lt;금오신화&amp;gt;속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amp;lt;주생전&amp;gt;, &amp;lt;운영전&amp;gt;에까지 이름. 이 작품들은 비극적 결말을 취하고 있어 상당한 문제 환기력을 지님.&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amp;lt;최치원&amp;gt; 이래 이어져 온 한국 애정전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몇 가지 혁신을 시도하였음&lt;br /&gt;
&lt;br /&gt;
1.     작품의 배경이 중국임.&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주생전의 주인공인 ‘주회’가 명나라 선비이고, 그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보니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가 됨. &amp;lt;최치원&amp;gt;이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였던 전례가 있지만, 금오신화를 비롯한 15~16세기 소설 작품을 보면 우리 애정전기의 전통은 배경을 외국으로 설정하는 일이 거의 없음. 따라서 &amp;lt;주생전&amp;gt;의 배경 설정은 이례적인 일. &lt;br /&gt;
&lt;br /&gt;
이러한 배경설정은 작자가 현실에서 우연한 만남을 한 뒤 작품을 구성하였기 때문으로 보임.&lt;br /&gt;
&lt;br /&gt;
권필은 작품의 마무리 대목에서 1593년 봄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대파하고 경상도까지 내려갔을때 주생이 중병으로 군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고 개성에 있었다고 서술한 뒤 에필로그를 붙여 &amp;lt;주생전&amp;gt;의 창작 배경을 밝힘. 이를 보면 작자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선비를 우연히 만나 그가 겪은 일을 듣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amp;lt;주생전&amp;gt;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lt;br /&gt;
&lt;br /&gt;
당시 주생은 27세였고, 대대로 중국 강남의 항주에 살던 선비로 어렸을 때부터 시재가 뛰어났음. 18세에 태학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자부심이 높았고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었음. 그러나 몇 년동안 연거푸 과거에 낙방하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배를 한 척 사서 장사에 나섰음. 어느 날 호남성의 악양성에서 술에 취해 배를 띄운 채 잠들었다 깨보니 고향 항주에 와있었음.&lt;br /&gt;
&lt;br /&gt;
“안개에 싸인 절에서 종소리가 들려왔고 달은 서편에 걸려있었다. (…) 32쪽“&lt;br /&gt;
&lt;br /&gt;
몽환적인 이국 풍경이 서정적으로 묘사되었음.&lt;br /&gt;
&lt;br /&gt;
이후 주생은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기녀 배도를 찾아갔고, 배도는 주생의 문재에 반하여 주생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준다며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였음. 주생도 배도를 사랑하게 되었음. 이후 주생과 배도는 사를 이어 지우로 사랑을 나누었음.&lt;br /&gt;
&lt;br /&gt;
“길 잃고 봉래도에 들어왔다가&lt;br /&gt;
&lt;br /&gt;
누가 알았으리, 두목이&lt;br /&gt;
&lt;br /&gt;
방초를 찾게 될 줄을?&lt;br /&gt;
&lt;br /&gt;
잠 깨어 문득 새소리 들리는데&lt;br /&gt;
&lt;br /&gt;
비췻빛 주렴에 그림자 없고 붉은 난간에 새벽빛이 비치네.“&lt;br /&gt;
&lt;br /&gt;
시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교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 애정전기 특유의 연애담이 전개됨. 위는 주생이 배도를 만난 기쁨을 표현한 노랫말. 신선이 산다는 곳인 ‘봉래도’는 항주, 당의 시인인 ‘두목’은 주생 자신, ‘방초’는 배도를 가리킴.&lt;br /&gt;
&lt;br /&gt;
이날 밤 주생이 배도와의 잠자리를 원하자 배도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하며 주생과 평생을 함께하고자 하는 소망을 말함. 또 주생이 벼슬에 올라 자신을 기적에서 빼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말함. 주생은 배도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다 약속을 하고 그녀를 안심시킴.&lt;br /&gt;
&lt;br /&gt;
전형적인 애정전기(당나라의 &amp;lt;이와전&amp;gt;, 우리나라의 &amp;lt;옥소선&amp;gt;)라면 이후의 행복한 세계상이 전개되겠지만, &amp;lt;주생전&amp;gt;에서는 이 시점부터 미묘한 균열이 감지됨.&lt;br /&gt;
&lt;br /&gt;
“서방님께선 이익과 곽소옥의 일을 모르십니까?“&lt;br /&gt;
&lt;br /&gt;
이익과 곽소옥은 당나라의 전기소설 &amp;lt;곽소옥전&amp;gt;의 주인공들인데, 이익이 곽소옥을 배시하자 곽소옥은 원망을 품고 죽었다는 내용, 배도는 주생을 믿지 않고 이런 말을 하였는데, 이는 애정전기의 특징이자 미덕이었던 남녀 주인공의 ‘상호 독점적 애정 관계‘가 의심되고 있는 것임. 결국 주생은 배도를 위해 맹세의 글을 써주었지만, 남녀주인공의 애정 관계가 출발부터 견고하지 않았음.&lt;br /&gt;
&lt;br /&gt;
그러나 이 날밤에는 이러한 문제가 아직 뚜렷히 들어나지 않았음.&lt;br /&gt;
&lt;br /&gt;
“그날 밤 두 사람이 &amp;lt;고당부&amp;gt;를 노래하니 짝을 찾은 두사람의 기쁨은 김생과 취취, 위랑과 빙빙보다 더했다.”&lt;br /&gt;
&lt;br /&gt;
&amp;lt;고당부&amp;gt;는 전국시대의 문인 송옥이 지은 부로, 초나라 회왕과 무산 신녀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임. “&amp;lt;고당부&amp;gt;를 노래하다.”라는 것은 두 남녀가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임. 또, 당대 이래로 애정전기에서 두루 애용되는 것이었음. 또 김생과 취취는 전등신화 &amp;lt;취취전&amp;gt;의 남녀 주인공을 말하고, 위랑과 빙빙은 &amp;lt;전등여화&amp;gt;에 실린 &amp;lt;가운화환혼기&amp;gt;의 남녀주인공을 말함.&lt;br /&gt;
&lt;br /&gt;
-&amp;gt; 당나라의 유명 전기와 명나라의 전기소설집인 &amp;lt;전등신화&amp;gt;와 &amp;lt;전등여화&amp;gt;등을 이미 앍고 있는 식자층을 주요 독자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그날 이후 주생은 배도에게 빠져 온종일 배도와 함께 비파를 타고 술을 마시며 웃고 즐겼다, 그러나 머지 않아 노승상의 외동딸 ‘선화‘로 인해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이상 기류가 발생하게 됨.&lt;br /&gt;
&lt;br /&gt;
배도는 승상 댁 잔치에 불려갔고, 주생은 배도의 뒤를 밟아 노승상의 집 안에 들어갔음. 배도를 찾던 주생은 승상 부인의 곁에 앉은 선화를 보았는데,&lt;br /&gt;
&lt;br /&gt;
“부인과 소녀의 사이에 앉은 배도의 모습은 봉황에 곁에 선 올빼미만도, 진주 곁에 놓인 조약돌만도 못해보였다. (…) 미친듯이 소리 지르며 방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일어났다.”&lt;br /&gt;
&lt;br /&gt;
주생은 새로운 사랑을 찾은 기쁨에 취했지만, 속마음을 감추고 배도를 대함. 그러나&lt;br /&gt;
&lt;br /&gt;
“주생은 선화를 본 뒤로 배도를 향한 마음이 이미 식어 버렸다. 말을 주고받을 때에도 억지로 웃음 지으며 기뻐하는 척만 할 뿐 마음속엔 온통 선화 생각뿐이었다.”&lt;br /&gt;
&lt;br /&gt;
주생과 배도의 사랑은 이렇게 파탄이 나게됨. 주생은 독점적 애정관계를 구축하는 애정전기의 전통에서 벗어나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신의를 버리고 욕망을 추구한 최초의 주인공이 되었음.&lt;br /&gt;
&lt;br /&gt;
서사적 흥미의 차원에서 보면 이 시점부터 &amp;lt;주생전&amp;gt;의 재미가 더해짐. 배도를 저버리고 선화를 얻기 위한 주생의 계략과 행동, 주생의 변심을 눈치 챈 배도의 분노가 서사를 움직이고, 주생을 사이에 둔 두 여인의 질투와 미묘한 심리, 어느쪽도 택하지 못하는 주생의 내면 갈등이 서사에 살을 붙임. 삼각관계라는 새로운 갈등 구조 속에서 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 것이 소설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됨.&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문체와 전고 활용에 있어서 동시기 어떤 소설보다 애정전기의 전통이 강하지만, ‘욕망’을 택함으로써 기존의 애정전기와는 전혀 다른 지향의 작품이 되었음.&lt;br /&gt;
&lt;br /&gt;
선화를 보고 첫눈에 반한 주생은 선화의 남동생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선화의 집에 머물게 되고, 배도는 주생이 승상댁 장서를 통해 과거 공부를 하겠다는 말에 속아 흔쾌히 허락함. 주생은 선화를 만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늦은 밤 선화의 방 앞에 숨어들었음. 선화는 노랫말을 짓고 있었고, 주생은 노랫말을 이어지으며 선화의 앞에 나타남. 선화는 주생을 애정상대로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뜻밖에도 쉽게 이루어짐. 이튿날 밤에도 주생은 선화를 다시 찾음.&lt;br /&gt;
&lt;br /&gt;
“ ”서방님, 겁내지 마세요! 앵앵이 여기 있어요.“&lt;br /&gt;
&lt;br /&gt;
주생은 그제야 선화에게 속은 줄 알고 일어나 선화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lt;br /&gt;
&lt;br /&gt;
주생과 선화의 밀회 장면. 선화가 말한 ‘앵앵’은 당 원진이 지은 전기소설 &amp;lt;앵앵전&amp;gt;의 여주인공. &amp;lt;앵앵전&amp;gt;은 애정전기의 명편으로 뽑힘. 앵앵과 장생의 밀회 장면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amp;lt;앵앵전&amp;gt;을 읽은 독자라면 전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대목.&lt;br /&gt;
&lt;br /&gt;
-&amp;gt; &amp;lt;주생전&amp;gt;에서는 남녀의 사랑과 관계된 대목에서 애정전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전고가 자연스럽게 활용됨.&lt;br /&gt;
&lt;br /&gt;
이후 둘은 밤마다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는데, 선화와 주생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는 2가지가 남았음.&lt;br /&gt;
&lt;br /&gt;
1.     배도의 존재&lt;br /&gt;
&lt;br /&gt;
2.     규범에 위배되는 사통을 범한 잘못 (근본적으로는 승상 댁 사위가 되기는 지체가 낮은 주생의 처지)&lt;br /&gt;
&lt;br /&gt;
주생과 선화의 관계가 배도에게 발각된 것은 선화의 질투심 때문인데,&lt;br /&gt;
&lt;br /&gt;
“선화는 밤에 주생의 방에 와서 몰래 주생의 가방을 뒤지다가 배도가 주생에게 준 시 몇 편을 발견했다. 선화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그러고는 &amp;lt;안아미&amp;gt;한 편을 새로 지은 다음 비취색 비단에 써서 주생의 가방안에 넣어두고 방을 나왔다.”&lt;br /&gt;
&lt;br /&gt;
긍정적인 여주인공의 질투심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은 &amp;lt;주생전&amp;gt;이외에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주목을 요하는 부분.&lt;br /&gt;
&lt;br /&gt;
노승상 집을 방문한 배도가 주생의 방에 묵다가 이 노랫말을 발견하면서 관계가 밝혀지게 됨.&lt;br /&gt;
&lt;br /&gt;
배도는 주생과 선화의 사통을 승상 부인에게 고발하겠다고 협박했고, 주생은 다른 핑계를 대고 배도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음. 이로써 우리 고전소설사 초유의 삼각관계가 아름답지 못한 형태로 일단락 되었음. 그러나 작자는 삼각관계를 형성한 인물들에게 윤리적 판단을 하며 비판의 시선을 던지 않음. 사랑이라는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 면죄부를 얻게 된 것은 갈등을 초래한 주생임.&lt;br /&gt;
&lt;br /&gt;
그 뒤 배도는 주생에게 속았던 일이 분해 마음의 병을 얻었고, 주생은 선화가 그리워 마음의 병을, 선화 역시 주생이 그리워 중병을 얻었음. 배도는 돌연 병에 걸려 죽으면서 선화를 아내로 맞이라하는 유언을 남김. 배도의 돌연한 죽음으로 삼각관계의 갈등 구조가 극단까지 전개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되게 됨. (이점은 약점)&lt;br /&gt;
&lt;br /&gt;
배도의 죽음 뒤에 선화와 다시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선화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국영이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에 수단이 없었음. 주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항주로 떠나야 했음.&lt;br /&gt;
&lt;br /&gt;
이후 주생은 멀리 떠나 친척 장씨 노인의 집에 의탁하였고, 1592년 장씨는 주생의 고민을 듣고 처가가 노승상 일가라며 주생과 선화의 혼인을 중매해주기로 함. 승상 부인도 선화의 병 원인을 알고 있던 차라 승낙하며 그해 9월로 혼례 날짜를 잡음.&lt;br /&gt;
&lt;br /&gt;
혼례가 결정된 이후 선화와 주생의 편지를 보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남녀의 간절한 마음이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음. 배도가 사라진 뒤 &amp;lt;주생전&amp;gt;은 다시 애정전기 특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되찾게 됨. 그러나 주생이 답장을 쓰고 아직 보내지 못했을 때 새로운 장애가 발생하게 됨.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파견하면서 주생이 조선으로 가게 된 것.&lt;br /&gt;
&lt;br /&gt;
작자는 개성에서 우연히 주생을 만나 그 사정을 듣고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하였음. 이후의 주생의 사연은 알 수 없고,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되지만 결말부의 분위기는 비극적임.&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전대의 소설과 비교할 때 새로운 특징과 미덕을 지님.&lt;br /&gt;
&lt;br /&gt;
1.     앞선 시기의 단편 소설보다 분량이 늘어남.&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16세기 후반까지의 대다수 작품은 &amp;lt;원생몽유록&amp;gt;이 1600자, &amp;lt;이생규장전&amp;gt;이 3500자(가장 긴 편에 속함.) 정도로 원고지 30~40매 안팎의 분량을 유지함. 17세기 이후에도 대다수의 한문 단편소설은 이 분량을 크게 넘어서지 않음. 그러나 &amp;lt;주생전&amp;gt;은 5800자로 &amp;lt;이생규장전&amp;gt;의 2배임.&lt;br /&gt;
&lt;br /&gt;
그 뒤를 이어 &amp;lt;달천몽유록&amp;gt;은 7400자, &amp;lt;최척전&amp;gt;은 8300자, &amp;lt;강로전&amp;gt;은 9000자, &amp;lt;운영전&amp;gt;은 130000자에 이르렀음. (전기소설의 중편화 현상)&lt;br /&gt;
&lt;br /&gt;
-&amp;gt; &amp;lt;주생전&amp;gt;의 분량 확대는 전반부 주생과 배도의 사랑, 후반부 주생과 선화의 사랑이 결합된 결과로 보여짐. 이후 &amp;lt;최척전&amp;gt;, &amp;lt;운영전&amp;gt;으로 가면 길이가 늘어나며 세부 묘사가 강화되고,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화, 보조인물의 등장 등 질적 변모가 이뤄진다. &amp;lt;주생전&amp;gt;은 그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함.&lt;br /&gt;
&lt;br /&gt;
2.     당의 &amp;lt;앵앵전&amp;gt;, &amp;lt;곽소옥전&amp;gt;, 명의 &amp;lt;전등신화&amp;gt;, &amp;lt;전등여화&amp;gt; 등 애정전기의 명편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애정전기의 전고를 자유자재로 구사함.&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이 점이 &amp;lt;주생전&amp;gt;이 애정전기의 주류 계보에 놓이는 중요한 이유. &amp;lt;주생전&amp;gt;의 전고 구사 능력은 애정전기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속함. 시사가 적절히 삽입되고,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장을 사용하고 있어서 애정 전기 전통을 훌륭하게 발전, 계승시킨 점이 돋보임.&lt;br /&gt;
&lt;br /&gt;
3.     남녀의 삼각관계를 스토리 전개의 주요한 계기로 삼고 있음.&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남녀의 삼각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 일대일 남녀관계라는 우리 전기소설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서사 지평을 만들어 냄. 절개보다 욕망을 추구하는 남자주인공은 이전의 우리 애정소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인간형.&lt;br /&gt;
&lt;br /&gt;
삼각관계 속의 주인공들 모두 ‘욕망’이 긍정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 밖에 있으며, 배도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선화와 주생을 이어주고자 한 점은 부당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욕망을 긍정한 결과임.&lt;br /&gt;
&lt;br /&gt;
è 즉, &amp;lt;주생전&amp;gt;은 욕망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의미있는 소설 작품이고,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이고 고차원적인 문제로 시선을 확대한 &amp;lt;운영전&amp;gt;의 앞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욕망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인간(주생)이 전쟁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보는 한 시각을 대변한다. 주생에게 전쟁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폭압’임. 주생에게 전쟁은 연인과의 이별을 뜻할 뿐임. (애정전기의 주인공들에게 애정 상대와의 신의, 애정 이외에 더 중요한 가치가 없듯이, 주생에게도 애정 성취 이외의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 전쟁에 참전한 주인공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낭만적 열망’만이 존재함.&lt;br /&gt;
&lt;br /&gt;
이는 주생의 세계가 &amp;lt;달천몽유록&amp;gt;, &amp;lt;임진록&amp;gt;에 등장하는 전쟁영웅의 세계와는 다른 평범한 인물의 세계이기 때문. (주생에게 전쟁은 애정에 대한 고난과 시련, 참전해야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것임.) 그리고 작자가 이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전쟁이 평범한 개인에게 패배와 상처만을 남기는 무의미한 행위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음.&lt;br /&gt;
&lt;br /&gt;
=== &amp;lt;남궁선생전&amp;gt; ===&lt;br /&gt;
허균의 &amp;lt;남궁선생전&amp;gt;은 전계소설과 전기소설의 특징을 아울러지니면서 전쟁 이후의 환멸과 도피 지향을 일정하게 드러낸 작품임. &amp;lt;주생전&amp;gt;, &amp;lt;최척전&amp;gt;처럼 주인공에게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한 소설. 작중 허균은 남궁두를 1608년에 만났다고 하였음.&lt;br /&gt;
&lt;br /&gt;
허균은 1607년 공주목사가 되었다가, 이듬에 8월 파직 당하고 전라북도 부안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었음. 남궁두는 선조, 광해군 때 호남의 유명한 도인으로, 그 행적에 관한 신비한 전설이 &amp;lt;어우야담&amp;gt;, &amp;lt;지봉유설&amp;gt; 등에 실려 있음.&lt;br /&gt;
&lt;br /&gt;
&lt;br /&gt;
- 윤바오🐼&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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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부 전쟁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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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2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1장 전쟁과 사회|1. 전쟁과 사회]]&lt;br /&gt;
&lt;br /&gt;
[[2장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2.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lt;br /&gt;
&lt;br /&gt;
[[3장 '문제적 개인'의 등장과 새로운 전망|3. '문제적 개인'의 등장과 새로운 전망]]&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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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장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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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19: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0.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0)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lt;br /&gt;
&lt;br /&gt;
[[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lt;br /&gt;
&lt;br /&gt;
[[2. 현실 비판의 형식: 희망 없는 비판|2) 현실 비판의 형식: 희망 없는 비판]]&lt;br /&gt;
&lt;br /&gt;
[[3. 현실 극복의 형식: 정신승리법|3) 현실 극복의 형식: 정신승리법]]&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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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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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18: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17세기 전반의 한국 고전소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상흔 속에서 시작됨.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전쟁을 보는 시선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뉨.  1.     전쟁의 시대에 던져진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세계에 대한 환멸을 작품 저변에 둠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애정 전기류 &amp;lt;주생전&amp;gt;, &amp;lt;운영전&amp;gt;, &amp;lt;최척전&amp;gt; / 신선전의 영향을 수용한 전계소설 &amp;lt;남궁선생전&amp;gt;, &amp;lt;장생전&amp;gt;  2.     ‘...&lt;/p&gt;
&lt;hr /&gt;
&lt;div&gt;17세기 전반의 한국 고전소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상흔 속에서 시작됨.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전쟁을 보는 시선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뉨.&lt;br /&gt;
&lt;br /&gt;
1.     전쟁의 시대에 던져진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세계에 대한 환멸을 작품 저변에 둠&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애정 전기류 &amp;lt;주생전&amp;gt;, &amp;lt;운영전&amp;gt;, &amp;lt;최척전&amp;gt; / 신선전의 영향을 수용한 전계소설 &amp;lt;남궁선생전&amp;gt;, &amp;lt;장생전&amp;gt;&lt;br /&gt;
&lt;br /&gt;
2.     ‘실패한 전쟁’의 책임 소재를 따지면서도 조선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작품.&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amp;lt;달천몽유록&amp;gt;, &amp;lt;강도몽류록&amp;gt; 등&lt;br /&gt;
&lt;br /&gt;
3.     전쟁을 ‘승리의 역사’로 만들어 패배의식을 걷어내고자 한 작품&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amp;lt;임진록&amp;gt; 및 그 후대적 계승인 한글소설들&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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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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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18: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 &amp;lt;주생전&amp;gt; ===&lt;br /&gt;
영웅소설에서 전쟁은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통해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기회지만, 애정소설에서 전쟁은 세계의 횡포일 뿐임.&lt;br /&gt;
&lt;br /&gt;
권필의 &amp;lt;주생전&amp;gt;은 비극적 애정전기 계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임.&lt;br /&gt;
&lt;br /&gt;
* 전기소설: 중국 당대 성립, 이후 고유의 장르 관습을 계승, 변용하며 성장을 거듭한 ‘한문문언체 단편소설’. &lt;br /&gt;
&lt;br /&gt;
14~16세기 전반 사이 중국의 &amp;lt;전등신화&amp;gt;, 한국의 &amp;lt;금오신화&amp;gt;, 베트남의 &amp;lt;전기만록&amp;gt;이 창작된 것과 같이 전기소설은 중세 동아시아 한문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성장 발전하였던 역사적 문학 장르임.&lt;br /&gt;
&lt;br /&gt;
* 당대 전기를 신괴, 염정, 호협의 세 유형으로 나누는데, 17세기 초까지의 우리 소설사에는 ‘염정’에 해당하는 애정전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음.&lt;br /&gt;
&lt;br /&gt;
-&amp;gt; 나말여초의 &amp;lt;최치원&amp;gt;에서 시작해 &amp;lt;금오신화&amp;gt;속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amp;lt;주생전&amp;gt;, &amp;lt;운영전&amp;gt;에까지 이름. 이 작품들은 비극적 결말을 취하고 있어 상당한 문제 환기력을 지님.&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amp;lt;최치원&amp;gt; 이래 이어져 온 한국 애정전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몇 가지 혁신을 시도하였음&lt;br /&gt;
&lt;br /&gt;
1.     작품의 배경이 중국임.&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주생전의 주인공인 ‘주회’가 명나라 선비이고, 그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보니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가 됨. &amp;lt;최치원&amp;gt;이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였던 전례가 있지만, 금오신화를 비롯한 15~16세기 소설 작품을 보면 우리 애정전기의 전통은 배경을 외국으로 설정하는 일이 거의 없음. 따라서 &amp;lt;주생전&amp;gt;의 배경 설정은 이례적인 일. &lt;br /&gt;
&lt;br /&gt;
이러한 배경설정은 작자가 현실에서 우연한 만남을 한 뒤 작품을 구성하였기 때문으로 보임.&lt;br /&gt;
&lt;br /&gt;
권필은 작품의 마무리 대목에서 1593년 봄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대파하고 경상도까지 내려갔을때 주생이 중병으로 군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고 개성에 있었다고 서술한 뒤 에필로그를 붙여 &amp;lt;주생전&amp;gt;의 창작 배경을 밝힘. 이를 보면 작자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선비를 우연히 만나 그가 겪은 일을 듣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amp;lt;주생전&amp;gt;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lt;br /&gt;
&lt;br /&gt;
당시 주생은 27세였고, 대대로 중국 강남의 항주에 살던 선비로 어렸을 때부터 시재가 뛰어났음. 18세에 태학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자부심이 높았고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었음. 그러나 몇 년동안 연거푸 과거에 낙방하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배를 한 척 사서 장사에 나섰음. 어느 날 호남성의 악양성에서 술에 취해 배를 띄운 채 잠들었다 깨보니 고향 항주에 와있었음.&lt;br /&gt;
&lt;br /&gt;
“안개에 싸인 절에서 종소리가 들려왔고 달은 서편에 걸려있었다. (…) 32쪽“&lt;br /&gt;
&lt;br /&gt;
몽환적인 이국 풍경이 서정적으로 묘사되었음.&lt;br /&gt;
&lt;br /&gt;
이후 주생은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기녀 배도를 찾아갔고, 배도는 주생의 문재에 반하여 주생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준다며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였음. 주생도 배도를 사랑하게 되었음. 이후 주생과 배도는 사를 이어 지우로 사랑을 나누었음.&lt;br /&gt;
&lt;br /&gt;
“길 잃고 봉래도에 들어왔다가&lt;br /&gt;
&lt;br /&gt;
누가 알았으리, 두목이&lt;br /&gt;
&lt;br /&gt;
방초를 찾게 될 줄을?&lt;br /&gt;
&lt;br /&gt;
잠 깨어 문득 새소리 들리는데&lt;br /&gt;
&lt;br /&gt;
비췻빛 주렴에 그림자 없고 붉은 난간에 새벽빛이 비치네.“&lt;br /&gt;
&lt;br /&gt;
시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교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 애정전기 특유의 연애담이 전개됨. 위는 주생이 배도를 만난 기쁨을 표현한 노랫말. 신선이 산다는 곳인 ‘봉래도’는 항주, 당의 시인인 ‘두목’은 주생 자신, ‘방초’는 배도를 가리킴.&lt;br /&gt;
&lt;br /&gt;
이날 밤 주생이 배도와의 잠자리를 원하자 배도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하며 주생과 평생을 함께하고자 하는 소망을 말함. 또 주생이 벼슬에 올라 자신을 기적에서 빼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말함. 주생은 배도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다 약속을 하고 그녀를 안심시킴.&lt;br /&gt;
&lt;br /&gt;
전형적인 애정전기(당나라의 &amp;lt;이와전&amp;gt;, 우리나라의 &amp;lt;옥소선&amp;gt;)라면 이후의 행복한 세계상이 전개되겠지만, &amp;lt;주생전&amp;gt;에서는 이 시점부터 미묘한 균열이 감지됨.&lt;br /&gt;
&lt;br /&gt;
“서방님께선 이익과 곽소옥의 일을 모르십니까?“&lt;br /&gt;
&lt;br /&gt;
이익과 곽소옥은 당나라의 전기소설 &amp;lt;곽소옥전&amp;gt;의 주인공들인데, 이익이 곽소옥을 배시하자 곽소옥은 원망을 품고 죽었다는 내용, 배도는 주생을 믿지 않고 이런 말을 하였는데, 이는 애정전기의 특징이자 미덕이었던 남녀 주인공의 ‘상호 독점적 애정 관계‘가 의심되고 있는 것임. 결국 주생은 배도를 위해 맹세의 글을 써주었지만, 남녀주인공의 애정 관계가 출발부터 견고하지 않았음.&lt;br /&gt;
&lt;br /&gt;
그러나 이 날밤에는 이러한 문제가 아직 뚜렷히 들어나지 않았음.&lt;br /&gt;
&lt;br /&gt;
“그날 밤 두 사람이 &amp;lt;고당부&amp;gt;를 노래하니 짝을 찾은 두사람의 기쁨은 김생과 취취, 위랑과 빙빙보다 더했다.”&lt;br /&gt;
&lt;br /&gt;
&amp;lt;고당부&amp;gt;는 전국시대의 문인 송옥이 지은 부로, 초나라 회왕과 무산 신녀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임. “&amp;lt;고당부&amp;gt;를 노래하다.”라는 것은 두 남녀가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임. 또, 당대 이래로 애정전기에서 두루 애용되는 것이었음. 또 김생과 취취는 전등신화 &amp;lt;취취전&amp;gt;의 남녀 주인공을 말하고, 위랑과 빙빙은 &amp;lt;전등여화&amp;gt;에 실린 &amp;lt;가운화환혼기&amp;gt;의 남녀주인공을 말함.&lt;br /&gt;
&lt;br /&gt;
-&amp;gt; 당나라의 유명 전기와 명나라의 전기소설집인 &amp;lt;전등신화&amp;gt;와 &amp;lt;전등여화&amp;gt;등을 이미 앍고 있는 식자층을 주요 독자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그날 이후 주생은 배도에게 빠져 온종일 배도와 함께 비파를 타고 술을 마시며 웃고 즐겼다, 그러나 머지 않아 노승상의 외동딸 ‘선화‘로 인해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이상 기류가 발생하게 됨.&lt;br /&gt;
&lt;br /&gt;
배도는 승상 댁 잔치에 불려갔고, 주생은 배도의 뒤를 밟아 노승상의 집 안에 들어갔음. 배도를 찾던 주생은 승상 부인의 곁에 앉은 선화를 보았는데,&lt;br /&gt;
&lt;br /&gt;
“부인과 소녀의 사이에 앉은 배도의 모습은 봉황에 곁에 선 올빼미만도, 진주 곁에 놓인 조약돌만도 못해보였다. (…) 미친듯이 소리 지르며 방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일어났다.”&lt;br /&gt;
&lt;br /&gt;
주생은 새로운 사랑을 찾은 기쁨에 취했지만, 속마음을 감추고 배도를 대함. 그러나&lt;br /&gt;
&lt;br /&gt;
“주생은 선화를 본 뒤로 배도를 향한 마음이 이미 식어 버렸다. 말을 주고받을 때에도 억지로 웃음 지으며 기뻐하는 척만 할 뿐 마음속엔 온통 선화 생각뿐이었다.”&lt;br /&gt;
&lt;br /&gt;
주생과 배도의 사랑은 이렇게 파탄이 나게됨. 주생은 독점적 애정관계를 구축하는 애정전기의 전통에서 벗어나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신의를 버리고 욕망을 추구한 최초의 주인공이 되었음.&lt;br /&gt;
&lt;br /&gt;
서사적 흥미의 차원에서 보면 이 시점부터 &amp;lt;주생전&amp;gt;의 재미가 더해짐. 배도를 저버리고 선화를 얻기 위한 주생의 계략과 행동, 주생의 변심을 눈치 챈 배도의 분노가 서사를 움직이고, 주생을 사이에 둔 두 여인의 질투와 미묘한 심리, 어느쪽도 택하지 못하는 주생의 내면 갈등이 서사에 살을 붙임. 삼각관계라는 새로운 갈등 구조 속에서 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 것이 소설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됨.&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문체와 전고 활용에 있어서 동시기 어떤 소설보다 애정전기의 전통이 강하지만, ‘욕망’을 택함으로써 기존의 애정전기와는 전혀 다른 지향의 작품이 되었음.&lt;br /&gt;
&lt;br /&gt;
선화를 보고 첫눈에 반한 주생은 선화의 남동생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선화의 집에 머물게 되고, 배도는 주생이 승상댁 장서를 통해 과거 공부를 하겠다는 말에 속아 흔쾌히 허락함. 주생은 선화를 만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늦은 밤 선화의 방 앞에 숨어들었음. 선화는 노랫말을 짓고 있었고, 주생은 노랫말을 이어지으며 선화의 앞에 나타남. 선화는 주생을 애정상대로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뜻밖에도 쉽게 이루어짐. 이튿날 밤에도 주생은 선화를 다시 찾음.&lt;br /&gt;
&lt;br /&gt;
“ ”서방님, 겁내지 마세요! 앵앵이 여기 있어요.“&lt;br /&gt;
&lt;br /&gt;
주생은 그제야 선화에게 속은 줄 알고 일어나 선화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lt;br /&gt;
&lt;br /&gt;
주생과 선화의 밀회 장면. 선화가 말한 ‘앵앵’은 당 원진이 지은 전기소설 &amp;lt;앵앵전&amp;gt;의 여주인공. &amp;lt;앵앵전&amp;gt;은 애정전기의 명편으로 뽑힘. 앵앵과 장생의 밀회 장면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amp;lt;앵앵전&amp;gt;을 읽은 독자라면 전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대목.&lt;br /&gt;
&lt;br /&gt;
-&amp;gt; &amp;lt;주생전&amp;gt;에서는 남녀의 사랑과 관계된 대목에서 애정전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전고가 자연스럽게 활용됨.&lt;br /&gt;
&lt;br /&gt;
이후 둘은 밤마다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는데, 선화와 주생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는 2가지가 남았음.&lt;br /&gt;
&lt;br /&gt;
1.     배도의 존재&lt;br /&gt;
&lt;br /&gt;
2.     규범에 위배되는 사통을 범한 잘못 (근본적으로는 승상 댁 사위가 되기는 지체가 낮은 주생의 처지)&lt;br /&gt;
&lt;br /&gt;
주생과 선화의 관계가 배도에게 발각된 것은 선화의 질투심 때문인데,&lt;br /&gt;
&lt;br /&gt;
“선화는 밤에 주생의 방에 와서 몰래 주생의 가방을 뒤지다가 배도가 주생에게 준 시 몇 편을 발견했다. 선화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그러고는 &amp;lt;안아미&amp;gt;한 편을 새로 지은 다음 비취색 비단에 써서 주생의 가방안에 넣어두고 방을 나왔다.”&lt;br /&gt;
&lt;br /&gt;
긍정적인 여주인공의 질투심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은 &amp;lt;주생전&amp;gt;이외에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주목을 요하는 부분.&lt;br /&gt;
&lt;br /&gt;
노승상 집을 방문한 배도가 주생의 방에 묵다가 이 노랫말을 발견하면서 관계가 밝혀지게 됨.&lt;br /&gt;
&lt;br /&gt;
배도는 주생과 선화의 사통을 승상 부인에게 고발하겠다고 협박했고, 주생은 다른 핑계를 대고 배도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음. 이로써 우리 고전소설사 초유의 삼각관계가 아름답지 못한 형태로 일단락 되었음. 그러나 작자는 삼각관계를 형성한 인물들에게 윤리적 판단을 하며 비판의 시선을 던지 않음. 사랑이라는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 면죄부를 얻게 된 것은 갈등을 초래한 주생임.&lt;br /&gt;
&lt;br /&gt;
그 뒤 배도는 주생에게 속았던 일이 분해 마음의 병을 얻었고, 주생은 선화가 그리워 마음의 병을, 선화 역시 주생이 그리워 중병을 얻었음. 배도는 돌연 병에 걸려 죽으면서 선화를 아내로 맞이라하는 유언을 남김. 배도의 돌연한 죽음으로 삼각관계의 갈등 구조가 극단까지 전개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되게 됨. (이점은 약점)&lt;br /&gt;
&lt;br /&gt;
배도의 죽음 뒤에 선화와 다시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선화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국영이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에 수단이 없었음. 주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항주로 떠나야 했음.&lt;br /&gt;
&lt;br /&gt;
이후 주생은 멀리 떠나 친척 장씨 노인의 집에 의탁하였고, 1592년 장씨는 주생의 고민을 듣고 처가가 노승상 일가라며 주생과 선화의 혼인을 중매해주기로 함. 승상 부인도 선화의 병 원인을 알고 있던 차라 승낙하며 그해 9월로 혼례 날짜를 잡음.&lt;br /&gt;
&lt;br /&gt;
혼례가 결정된 이후 선화와 주생의 편지를 보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남녀의 간절한 마음이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음. 배도가 사라진 뒤 &amp;lt;주생전&amp;gt;은 다시 애정전기 특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되찾게 됨. 그러나 주생이 답장을 쓰고 아직 보내지 못했을 때 새로운 장애가 발생하게 됨.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파견하면서 주생이 조선으로 가게 된 것.&lt;br /&gt;
&lt;br /&gt;
작자는 개성에서 우연히 주생을 만나 그 사정을 듣고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하였음. 이후의 주생의 사연은 알 수 없고,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되지만 결말부의 분위기는 비극적임.&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전대의 소설과 비교할 때 새로운 특징과 미덕을 지님.&lt;br /&gt;
&lt;br /&gt;
1.     앞선 시기의 단편 소설보다 분량이 늘어남.&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16세기 후반까지의 대다수 작품은 &amp;lt;원생몽유록&amp;gt;이 1600자, &amp;lt;이생규장전&amp;gt;이 3500자(가장 긴 편에 속함.) 정도로 원고지 30~40매 안팎의 분량을 유지함. 17세기 이후에도 대다수의 한문 단편소설은 이 분량을 크게 넘어서지 않음. 그러나 &amp;lt;주생전&amp;gt;은 5800자로 &amp;lt;이생규장전&amp;gt;의 2배임.&lt;br /&gt;
&lt;br /&gt;
그 뒤를 이어 &amp;lt;달천몽유록&amp;gt;은 7400자, &amp;lt;최척전&amp;gt;은 8300자, &amp;lt;강로전&amp;gt;은 9000자, &amp;lt;운영전&amp;gt;은 130000자에 이르렀음. (전기소설의 중편화 현상)&lt;br /&gt;
&lt;br /&gt;
-&amp;gt; &amp;lt;주생전&amp;gt;의 분량 확대는 전반부 주생과 배도의 사랑, 후반부 주생과 선화의 사랑이 결합된 결과로 보여짐. 이후 &amp;lt;최척전&amp;gt;, &amp;lt;운영전&amp;gt;으로 가면 길이가 늘어나며 세부 묘사가 강화되고,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화, 보조인물의 등장 등 질적 변모가 이뤄진다. &amp;lt;주생전&amp;gt;은 그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함.&lt;br /&gt;
&lt;br /&gt;
2.     당의 &amp;lt;앵앵전&amp;gt;, &amp;lt;곽소옥전&amp;gt;, 명의 &amp;lt;전등신화&amp;gt;, &amp;lt;전등여화&amp;gt; 등 애정전기의 명편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애정전기의 전고를 자유자재로 구사함.&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이 점이 &amp;lt;주생전&amp;gt;이 애정전기의 주류 계보에 놓이는 중요한 이유. &amp;lt;주생전&amp;gt;의 전고 구사 능력은 애정전기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속함. 시사가 적절히 삽입되고,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장을 사용하고 있어서 애정 전기 전통을 훌륭하게 발전, 계승시킨 점이 돋보임.&lt;br /&gt;
&lt;br /&gt;
3.     남녀의 삼각관계를 스토리 전개의 주요한 계기로 삼고 있음.&lt;br /&gt;
&lt;br /&gt;
&amp;lt;nowiki&amp;gt;:&amp;lt;/nowiki&amp;gt;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남녀의 삼각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 일대일 남녀관계라는 우리 전기소설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서사 지평을 만들어 냄. 절개보다 욕망을 추구하는 남자주인공은 이전의 우리 애정소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인간형.&lt;br /&gt;
&lt;br /&gt;
삼각관계 속의 주인공들 모두 ‘욕망’이 긍정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 밖에 있으며, 배도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선화와 주생을 이어주고자 한 점은 부당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욕망을 긍정한 결과임.&lt;br /&gt;
&lt;br /&gt;
è 즉, &amp;lt;주생전&amp;gt;은 욕망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의미있는 소설 작품이고,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이고 고차원적인 문제로 시선을 확대한 &amp;lt;운영전&amp;gt;의 앞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주생전&amp;gt;은 욕망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인간(주생)이 전쟁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보는 한 시각을 대변한다. 주생에게 전쟁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폭압’임. 주생에게 전쟁은 연인과의 이별을 뜻할 뿐임. (애정전기의 주인공들에게 애정 상대와의 신의, 애정 이외에 더 중요한 가치가 없듯이, 주생에게도 애정 성취 이외의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 전쟁에 참전한 주인공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낭만적 열망’만이 존재함.&lt;br /&gt;
&lt;br /&gt;
이는 주생의 세계가 &amp;lt;달천몽유록&amp;gt;, &amp;lt;임진록&amp;gt;에 등장하는 전쟁영웅의 세계와는 다른 평범한 인물의 세계이기 때문. (주생에게 전쟁은 애정에 대한 고난과 시련, 참전해야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것임.) 그리고 작자가 이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전쟁이 평범한 개인에게 패배와 상처만을 남기는 무의미한 행위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음.&lt;br /&gt;
&lt;br /&gt;
=== &amp;lt;남궁선생전&amp;gt; ===&lt;br /&gt;
허균의 &amp;lt;남궁선생전&amp;gt;은 전계소설과 전기소설의 특징을 아울러지니면서 전쟁 이후의 환멸과 도피 지향을 일정하게 드러낸 작품임. &amp;lt;주생전&amp;gt;, &amp;lt;최척전&amp;gt;처럼 주인공에게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한 소설. 작중 허균은 남궁두를 1608년에 만났다고 하였음.&lt;br /&gt;
&lt;br /&gt;
허균은 1607년 공주목사가 되었다가, 이듬에 8월 파직 당하고 전라북도 부안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었음. 남궁두는 선조, 광해군 때 호남의 유명한 도인으로, 그 행적에 관한 신비한 전설이 &amp;lt;어우야담&amp;gt;, &amp;lt;지봉유설&amp;gt; 등에 실려 있음.&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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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장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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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9:17: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0.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lt;br /&gt;
&lt;br /&gt;
[[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lt;br /&gt;
&lt;br /&gt;
[[2. 현실 비판의 형식: 희망 없는 비판]]&lt;br /&gt;
&lt;br /&gt;
[[3. 현실 극복의 형식: 정신승리법]]&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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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현실 비판의 형식: 희망 없는 비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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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8T07:26: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몽유록  -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뒤 전쟁 수행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 작가들이 재발견한 형식 중 하나  - '꿈에 노닌 기록'인 몽유록은 전기소설의 진화 과정에서 파생된 독특한 소설 형식  - 김시습의 「남염부주지」, 「조신전」이 형식적 연원  - 이를 확장하여 전쟁 체험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포폄과 의론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lt;/p&gt;
&lt;hr /&gt;
&lt;div&gt;몽유록&lt;br /&gt;
&lt;br /&gt;
-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뒤 전쟁 수행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 작가들이 재발견한 형식 중 하나&lt;br /&gt;
&lt;br /&gt;
- '꿈에 노닌 기록'인 몽유록은 전기소설의 진화 과정에서 파생된 독특한 소설 형식&lt;br /&gt;
&lt;br /&gt;
- 김시습의 「남염부주지」, 「조신전」이 형식적 연원&lt;br /&gt;
&lt;br /&gt;
- 이를 확장하여 전쟁 체험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포폄과 의론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형식으로 진화시킨 작품이 「달천몽유록」, 「강도몽유록」&lt;br /&gt;
&lt;br /&gt;
&lt;br /&gt;
「달천몽유록」은 임진왜란 직후 윤계선이 지은 작품&lt;br /&gt;
&lt;br /&gt;
작품의 현실 공간 묘사가 대단히 음울하며 임진왜란 초기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달천 전투 현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혼령들의 기운 담아 지은 시, '책략 없는 장군'이 수록되어 있음.&lt;br /&gt;
&lt;br /&gt;
달천 전투의 지휘관 신립 장군이 전투를 그르쳐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 동안 임금인 선조가 의주로 피난 떠난 일에 대한 비판이 신랄함.&lt;br /&gt;
&lt;br /&gt;
윤계선이 황해도 옹진의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몽유'가 시작됨.&lt;br /&gt;
&lt;br /&gt;
나비를 따라가는 것이 꿈의 시작으로 도착한 곳에는 전사한 1만 명의 유령들이 존재하고 처참한 모습의 병사들의 형상으로 임진왜란의 참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냄.&lt;br /&gt;
&lt;br /&gt;
죽은 병사들은 전쟁으로 아들이나 남편을 잃은 가족의 처지를 걱정하다가 파담자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자신들을 위한 시를 써준 사실에 고마워함.&lt;br /&gt;
&lt;br /&gt;
유령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달라고 하였고, 파담자는 여타 몽유록처럼 유령들의 좌담회에 참관함.&lt;br /&gt;
&lt;br /&gt;
먼저, 무명의 병사가 신립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하자 신립의 유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변명을 함.&lt;br /&gt;
&lt;br /&gt;
신립은 패배를 자신이 아닌, 명령에 따르지 않은 병사들의 비겁함을 질책하며 전쟁의 패배는 사람의 힘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함. 작자는 신립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원한을 풀어주고자 함.&lt;br /&gt;
&lt;br /&gt;
다음으로 병사들을 물러가게 한 후 이순신과 임진왜란의 영웅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소회를 펼침.&lt;br /&gt;
&lt;br /&gt;
무공을 세운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 사연을 토로하게 하고, 논란이 있는 인물은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발언을 하게 함.&lt;br /&gt;
&lt;br /&gt;
「달천몽유록」은 잘못에 대해 따가운 질책을 하기보다는 하소연을 들어 주며 원혼을 위로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반대되는 입장에 선 인물의 시각도 균형 있게 제시함.&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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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lt;br /&gt;
&lt;br /&gt;
[[2. 현실 비판의 형식: 희망 없는 비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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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8강 국문소설 및 장편소설의 형성과 전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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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10:1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 조선 후기 소설을 보는 시각 - 한문소설과 국문소설 ===&lt;br /&gt;
17세기 이전에는 국문소설이나 장편소설이 창작된 적이 없음, 우리 문학사에서 국문소설 및 장편소설의 창작이 이루어진 것은 17세기.&lt;br /&gt;
&lt;br /&gt;
다만 16세기에 국문소설이 창작되지는 않았어도 채수의 &amp;lt;설공찬전&amp;gt;과 같이 국문으로 변역되어 유포된 소설은 존재하였음. 완전히 국문으로 창작된 소설은 17세기에 처음 나타났고, 조선 후기에는 국문소설이 소설의 시대를 이끌며 대단히 성행했음.&lt;br /&gt;
&lt;br /&gt;
국문소설의 등장으로 한문소설은 이전의 독점적 지위를 잃었고 주도권을 국문소설에 넘겨주었음. 그러나 한문소설은 통속적 국문소설과 다른 지향과 문제의식, 국문소설이 가지 못한 문제의식을 담지함으로써 계속 주요한 역할을 하였음. 그렇지만 표기 문자가 한문이기 때문에 독자층은 주로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소수의 지배층 남성에 국한되었다는 한계가 있음. (국문소설은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 여성과 서민을 주된 독자로 삼았음. 여성독자는 국문소설의 형성과 전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침.)&lt;br /&gt;
&lt;br /&gt;
한문소설과 국문소설은 독자층의 차이가 있지만, 서로 교섭하며 함께 발전 하였음. 한문 소설이 국문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일도 있었음. (ex) &amp;lt;구운몽&amp;gt;, &amp;lt;창선감의록&amp;gt;)&lt;br /&gt;
&lt;br /&gt;
또한 표기는 한문이나 그 지향과 문제의식이 국문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도 존재함. (ex) &amp;lt;옥루몽&amp;gt;, &amp;lt;옥수기&amp;gt;)&lt;br /&gt;
&lt;br /&gt;
è 이러한 작품들의 경우 표기 문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됨.&lt;br /&gt;
&lt;br /&gt;
=== &amp;lt;홍길동전&amp;gt; ===&lt;br /&gt;
작자에 대한 이론이 많지만 택당 이식의 &amp;lt;택당집&amp;gt;의 잡저 &amp;lt;산록&amp;gt; 속 “허균이 &amp;lt;홍길동전&amp;gt;을 지어 &amp;lt;수호전&amp;gt;에 견주었다.“는 말을 근거로 허균이 창작한 소설인 것으로 짐작됨. 현존하는 &amp;lt;홍길동전&amp;gt;은 국문소설이기 때문에 허균이 최초의 국문소설인 &amp;lt;홍길동전&amp;gt;&amp;gt;을 지은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식은 &amp;lt;홍길동전&amp;gt;을 허균이 ‘국문소설’로 지었다고는 하지 않았고, 허균은 &amp;lt;홍길동전&amp;gt; 이외에 &amp;lt;남궁선생전&amp;gt;, &amp;lt;장생전&amp;gt; 등을 한문으로 짓기도 하였음. 따라서 허균이 지은 &amp;lt;홍길동전&amp;gt;도 한문소설로 보아야 할듯.&lt;br /&gt;
&lt;br /&gt;
&amp;lt;홍길동전&amp;gt;은 영웅소설로 간주되지만, 영웅소설과는 취미나 지향이 다름. 특히 적서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영웅소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문제의식. 국문소설 &amp;lt;홍길동전&amp;gt;은 허균의 &amp;lt;홍길동전&amp;gt;과 내용 등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그  문제의식과 지향은 허균의 &amp;lt;홍길동전&amp;gt;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됨.&lt;br /&gt;
&lt;br /&gt;
현존하는 &amp;lt;홍길동전&amp;gt;은 18세기 무렵~19세기 무렵에 누군가가 허균의 원작을 윤색해 국문소설로 바꾼 것으로 여겨짐. 즉,  국문소설 &amp;lt;홍길동전&amp;gt;을 완전히 허균의 창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이 허균의 원작에서 유래했음을 부정할 수 없음. 또한 &amp;lt;홍길동전&amp;gt;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이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음.&lt;br /&gt;
&lt;br /&gt;
=== &amp;lt;천군기&amp;gt; ===&lt;br /&gt;
&amp;lt;천군기&amp;gt;는 황중윤이 1620년 후반부터 1630년 초반 사이에 쓴 한문 단편소설임. 황중윤은 인조반정 때 후금과의 화친을 주장한 주화론자로 몰려 유배 갔다가 10년 후인 1633년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1648년 세상을 하직함. 이 작품은 유배 중에 창작되었음.&lt;br /&gt;
&lt;br /&gt;
‘천군‘은 ’마음‘을 의미하고, ’천군기‘는 ’천군 이야기‘라는 뜻. 즉, &amp;lt;천군기&amp;gt;는 마음을 의인화한 알레고리 소설임.&lt;br /&gt;
&lt;br /&gt;
16세기 조선 성리학은 이론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고, 특히 성리학적 심성론에 대한 심화된 이해가 이루어졌음. &amp;lt;천군기&amp;gt;는 조선 성리학의 높은 성취를 바탕으로 성립되었고, 성리학적 심성론을 서사화한 소설은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음. 이러한 점에서 &amp;lt;천군기&amp;gt;의 소설적 창안은 우리 문학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학사에서도 주목되는 일이라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천군기&amp;gt;는 욕망 때문에 잃어버린 본심을 우여곡절 끝에 되찾는다는 이야기임. 이 과정에서 ‘욕망‘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는데, ’욕망‘이란 끈질기며 완전히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임. 인간 욕망의 면모를 핍진하게 그리고 있으며, 욕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하는 작품은 우리 문학사 상 &amp;lt;천군기&amp;gt;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이루어짐.&lt;br /&gt;
&lt;br /&gt;
욕망은 몸과 불가분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황중윤은 &amp;lt;황정경&amp;gt; 과 같은 도교 경전의 상상력을 차용함. 즉, 성리학적 심성론을 근간으로 하되, 몸에 대한 도교의 상상력을 일부 끌어드리고 있는 것.&lt;br /&gt;
&lt;br /&gt;
è 이 때문에 &amp;lt;천군기&amp;gt; 성리학적 심성론을 서사화하고 있으면서도 성리학과 달리 욕망을 단순화하지 않고 실제와 방불하게 그려낼 수 있었음. &amp;lt;천군기&amp;gt;의 주목할만한 성취.&lt;br /&gt;
&lt;br /&gt;
&amp;lt;천군기&amp;gt; 이외에도 임제의 &amp;lt;수성지&amp;gt;(소설), 김우옹의 &amp;lt;천군전&amp;gt;(1566, 전의 형식을 취한 철리 산문, 소설 아님.) 등 천군에 대한 서사는 이전에도 있었음. 그러나 욕망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보여주지는 않음.&lt;br /&gt;
&lt;br /&gt;
황중윤은 우리 문학사에 존재하는 ‘천군 서사‘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쳔, &amp;lt;삼국지연의&amp;gt;와 같은 중국 장편소설의 창작 수법을 사용해 완전히 다른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음.&lt;br /&gt;
&lt;br /&gt;
&amp;lt;천군기&amp;gt;는 우리 문학사 상 최초의 ‘장회소설’이기도 함. 총 31개의 장회로 구성됨.&lt;br /&gt;
&lt;br /&gt;
* 장회소설: 여러 개의 장이나 회로 구성된 소설, &amp;lt;삼국지연의&amp;gt;, &amp;lt;수호전&amp;gt;의 형식. 매 장회마다 흥미로운 제목이 붙어있고, 끝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장회를 보시라’는 취지의 말이 나와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함.&lt;br /&gt;
&lt;br /&gt;
&amp;lt;천군기&amp;gt;는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군담 모티프를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함. 이후 군담 모티프는 우리 소설에서 가장 주요한 모티프의 하나로 자리잡게됨.&lt;br /&gt;
&lt;br /&gt;
황중윤은 젊은 시절 성리학을 공부하였는데, 마음에 대한 성찰과 치도에 대한 우의를 담는 것이 &amp;lt;천군기&amp;gt;의 창작의도로 보임. 따라서 &amp;lt;천군기&amp;gt; 속에는 ‘군주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우의가 담겨있음.&lt;br /&gt;
&lt;br /&gt;
황중윤보다 한 세대쯤 뒤의 인물인 정태제는 &amp;lt;천군기&amp;gt;를 약간 개작해 &amp;lt;천군연의&amp;gt;라고 명명하였음. 그러나 &amp;lt;천군기&amp;gt;에 비해 &amp;lt;천군연의&amp;gt;는 문제의식이 약화되었고, 문장 표현을 보수적으로 고쳐놓아 원작보다 작품성이 떨어짐.&lt;br /&gt;
&lt;br /&gt;
이후 천군소설의 전통은 19세기 전반 유치구의 &amp;lt;천군실록&amp;gt;, 정기화의 &amp;lt;천군본기&amp;gt; 등으로 계승되었지만 &amp;lt;천군기&amp;gt;의 성취를 넘어서지는 못했음.&lt;br /&gt;
&lt;br /&gt;
&amp;lt;천군기&amp;gt;가 장편소설의 서막을 연 작품이고, 몇 십 년쯤 후 &amp;lt;구운몽&amp;gt;, &amp;lt;창선감의록&amp;gt; 등의 장편소설이 창작되게 됨.&lt;br /&gt;
&lt;br /&gt;
=== &amp;lt;사씨남정기&amp;gt;, &amp;lt;구운몽&amp;gt; ===&lt;br /&gt;
17세기 후반 김만중이 창작한 소설, 김만중은 인조 15년에 태어나 숙종 18년에 사망. 벌열집안 출신으로 지배층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 당색은 노론이었음. 지배층이면서도 소설의 가치를 인정하고 국문 문학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한 인물이었음.&lt;br /&gt;
&lt;br /&gt;
김만중의 종손인 김춘택은 &amp;lt;북헌집&amp;gt;에 수록된 &amp;lt;시문을 논하다&amp;gt;라는 글에서&lt;br /&gt;
&lt;br /&gt;
“서포는 자못 대부분 국문으로 소설을 지었다. 그중에 이른바 &amp;lt;남정기&amp;gt;라는 것은 범상한 작품들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한문으로 번역하였다.”&lt;br /&gt;
&lt;br /&gt;
라는 기록을 남김. 이를 통해 김만중이 &amp;lt;사씨남정기&amp;gt;를 국문으로 창작하였음을 알 수 있고, 김만중이 대부분의 소설을 국문으로 창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사씨남정기&amp;gt;는 사씨가 남쪽으로 간 이야기라는 뜻임. 조선 후기 대부분의 국문소설이그렇듯 명나라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 주요인물은 한림학사 유연수와 그 처인 사씨, 첩 교씨임.&lt;br /&gt;
&lt;br /&gt;
&amp;lt;사씨남정기&amp;gt;는 심각한 처첩간의 갈등을 보여줌. 처첩갈등은 17세기 후반에 창작된 소설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사대부 집안 내부의 가부장제의 모순을 보여줌. 이후 국문소설, 특히 장편 국문소설의 필수적 모티프가 됨.&lt;br /&gt;
&lt;br /&gt;
19세기 문인인 이규경의 &amp;lt;오주연문장전산고&amp;gt;의 &amp;lt;소설변증설&amp;gt;이라는 글에&lt;br /&gt;
&lt;br /&gt;
“&amp;lt;남정기&amp;gt;는 북헌 김춘택이 지은 것이다. (…) 북헌은 숙종 때 인현왕후가 폐비되었기에 숙종으로 하여금 그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지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라는 기록이 있음, &amp;lt;남정기&amp;gt;를 김춘택의 작이라고 한 것과 같이 여러 착오가 있는 기록이지만 (김춘택이 남정기를 한역하였기 때문에 착오가 생긴듯.) &amp;lt;사씨남정기&amp;gt;의 창작 의도를 알 수 있는 기록임.&lt;br /&gt;
&lt;br /&gt;
è  &amp;lt;사씨남정기&amp;gt;의 창작의도: 인현왕후를 폐비한 일을 풍간하기 위해.&lt;br /&gt;
&lt;br /&gt;
인현왕후는 숙종 15년 폐위됐다가 5년 뒤에 복위되었음. 이 사건은 세자 책봉을 둘러싼 남인과 서인의 갈등에서 기인하였기 때문에 &amp;lt;사씨남정기&amp;gt;의 창작은 숙종 연간의 당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음. 이러한 점에서 &amp;lt;사씨남정기&amp;lt;는 정치와 소설의 내적 연관을 보여주는 작품임. (당쟁이 소설의 내적 형식과 결구를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에)&lt;br /&gt;
&lt;br /&gt;
&amp;lt;사씨남정기&amp;gt;는 168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임. 또한 &amp;lt;구운몽&amp;gt; 역시 이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김만중이 1692년 사망하였으므로 &amp;lt;남정기&amp;gt;와 &amp;lt;구운몽&amp;gt;은 모두 김만중의 만년에 집필된 것.&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은 선계에서 현실계로, 현실계에서 다시 선계로 넘어가는 순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환몽 구조와 결부되어 있음. 환몽 구조라는 점에서 문학사 적으로 &amp;lt;조신전&amp;gt;과 연결되는 작품인데, &amp;lt;조신전&amp;gt;은 비참한 민중의 현실을 구현하였고, &amp;lt;구운몽&amp;gt;은 부귀영화가 구현되는 귀족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생에 대한 감각이나 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대조적임.&lt;br /&gt;
&lt;br /&gt;
&amp;lt;조신전&amp;gt;의 꿈 속 삶은 ‘고해‘로 귀결되지만, &amp;lt;구운몽&amp;gt;의 꿈 속 삶은 ’낙해(쾌락의 세계)‘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amp;lt;구운몽&amp;gt;은 귀족적 이상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김만중은 장희빈 일가를 비판하다가 숙종 13년 9월 유배형을 받았고, 평안도 선천에서 1년즈음 유배 생활을 하였음. 김만중 후손이 창작한 &amp;lt;서포연보&amp;gt; 속&lt;br /&gt;
&lt;br /&gt;
“부군께서는 또 모친께 책을 지어 보내어 소일거리로 삼게 하셨는데, 그 뜻은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꿈속의 환상이라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라는 기록을 통해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어머니 윤씨를 위로하기 위해 &amp;lt;구운몽&amp;gt;을 창작하였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의 서두에는 양소유의 아버지 양처사가 양소유 12살 때 집을 떠나 봉래산의 선계로 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보이는데, 이는 아버지 없이 자란 김만중의 개인사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임. 김만중이 지극한 효심을 가졌다는 점을 보면 &amp;lt;서포연보&amp;gt;의 기록은 사실로 보임. 그러나 &amp;lt;서포연보&amp;gt;의 기록처럼 단순히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amp;lt;구운몽&amp;gt;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면모도 있었으리라고 보임.&lt;br /&gt;
&lt;br /&gt;
김만중은 전대의 지배적 소설 양식이었던 전기소설의 성과와 서사 문법을 잘 활용해 &amp;lt;구운몽&amp;gt;을 창작하였기 때문에 문체가 아정하고 예술적 성취가 뛰어남. &amp;lt;구운몽&amp;gt;은 후대의 국문소설, 특히 귀족적 성향의 가문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음.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많이 읽혔고, 장편소설의 작자들에게 일종의 ‘교본’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함.&lt;br /&gt;
&lt;br /&gt;
(Ex) 19세기 남영로의 &amp;lt;옥루몽&amp;gt;은 구운몽의 영향을 짙게 받은 소설)&lt;br /&gt;
&lt;br /&gt;
양소유의 2처 6첩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화락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점이 특별함. 이를 통해 &amp;lt;구운몽&amp;gt;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긍정되고 있으며, 당대 상층 사대부 남성의 판타지를 그려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은 초기 국문 장편소설로, 소설 양식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으며, 이후 창작될 국문 장편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음. 그러나 중화주의와 화의론적 세계관을 후대의 소설에게까지 답습하게 한 책임이 있음.&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과 &amp;lt;사씨남정기&amp;gt; 모두 중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외국을 배경으로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 작가의 상상력을 펼치기에 유리한 면도 있지만, 시공간을 주체적으로 전유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함. 국문소설이 시공간을 주체적으로 전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선적 정취’룰 미적으로 전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자국의 역사, 지리, 문화, 습속에 대한 이해 결부로 이어짐. 이러한 이해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시공간 설정은 작은 문제가 아니게 됨.&lt;br /&gt;
&lt;br /&gt;
=== &amp;lt;창선감의록&amp;gt; ===&lt;br /&gt;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소설이 시작되기 전 서술자의 말이 나오고, 소설이 끝난 후에 다시 서술자의 말이 나오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lt;br /&gt;
&lt;br /&gt;
작품 초두 서술자의 말을 통해 한문으로 창작된 소설임을 알 수 있음. “병중에 부녀자들이 낭송하는 국문소설 &amp;lt;원감록&amp;gt;을 듣고 이를 창작하였음.“ -&amp;gt; 원감록의 단순 한역이 아니라, 원감록을 토대로 삼아 재창작함.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선을 드러내고 의에 감화되는 이야기’라는 뜻인데, 제목을 통해 도덕적 주제화를 뚜렷이 하는 방향으로 재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작품 중 &amp;lt;시경&amp;gt;, &amp;lt;예기&amp;gt; 등의 유교경전이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식이 높은 사람이 썼으리라고 보임. 또한 작품 중 시가 여러 편 나오고, 편지가 빈번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전기소설에서 유래하는 수법임.&lt;br /&gt;
&lt;br /&gt;
중국 명나라 가정제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당대의 권신인 엄숭 등 실존 인물을 여럿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재하고 있음.&lt;br /&gt;
&lt;br /&gt;
è 실제의 역사적 사실에 기대어 허구적 상상력을 펼치는 수법. 연의소설에서 유래한 기법.&lt;br /&gt;
&lt;br /&gt;
즉,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중국 전기소설과 연의소설을 많이 읽은 문인의 필치를 보여줌. 그 작자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은데, 이전에는 졸수재 조성기를 작자로 보았으나, &amp;lt;창선감의록&amp;gt; 속에는 불교와 도가 역시 받아들이는 입장이 나타나있기 때문에 성리학자인 조성기와 그 필치가 일치하지 않아 미상으로 보아야한다는 견해가 힘을 받고 있음.&lt;br /&gt;
&lt;br /&gt;
&amp;lt;창선감의록&amp;gt;의 주인공인 화진은 도덕군자로, 지극한 효를 실천하는 인물임. 효와 충을 행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amp;lt;구운몽&amp;gt;의 양소유와는 차이가 있음. 또한 여주인공인 윤옥화와 남채봉도 도덕적 규범에 충실한 인물들임.&lt;br /&gt;
&lt;br /&gt;
작품의 주제는 ‘권선징악’으로 표방되어 있는데, 신분에 따라 권선징악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이 주목할만 함. 악인이더라도 하층에 속한 인물만 징벌됨.&lt;br /&gt;
&lt;br /&gt;
Ex) 간신 엄숭 – 작품 말미에 용서됨, 심부인, 화춘 – 개과천선, 조녀, 범한, 장평 – 엄혹한 징벌.&lt;br /&gt;
&lt;br /&gt;
이러한 점에서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사대부 본위의 신분적 차별주의가 관철되고 있다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è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사대부적 도덕 감정과 사대부적 이상주의가 구현되어 있으며, 작품은 해피앤딩으로 끝나지만, 가부장제의 모순이 해소되지는 않음.&lt;br /&gt;
&lt;br /&gt;
작자는 ‘인간의 본성은 궁극적으로 선하다’라는 도덕적 낙관주의에 기초하여 소설을 썼으나, 작품의 주제와 반대로 소설에서는 심각한 모순에 처해있는 현실을 보여줌.&lt;br /&gt;
&lt;br /&gt;
또,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가문 내부의 다양한 갈등을 통해 서사가 전개되고 있음. (처첩갈등, 이복형제간의 갈등, 부자 갈등, 계모와 전처소생의 갈등, 부부갈등, 동서 갈등 등) 그리고 가문 내부의 갈등과 조정 내부의 군자/소인 간의 갈등이 서로 얽혀 있음. 이러한 요소들은 가문소설의 기본 문법에 해당함. 그러나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주인공 1대의 이야기에 해당하고 이 이후의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가문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음.&lt;br /&gt;
&lt;br /&gt;
è &amp;lt;창선감의록&amp;gt;은 가문소설의 기본 문법이 나타나고, 화부, 윤부, 남부, 진부 가문 간의 얽힘이 서사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문소설과 연접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음.&lt;br /&gt;
&lt;br /&gt;
소설의 뒷부분에서는 영웅소설적인 요소가 나타남.&lt;br /&gt;
&lt;br /&gt;
(주인공 화진이 신인 곽선공을 만나 무술을 습득하고 대원수가 되어 남방을 평정한 다음 크게 무공을 세우고 돌아오는 부분) -&amp;gt; 영웅소설의 “주인공이 이인을 만나 무술과 병법을 습득한 다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원수로 출전해 공을 세우고 돌아와 부귀공명을 누림.“이라는 서사 패턴과 일치함.&lt;br /&gt;
&lt;br /&gt;
영웅소설이 18세기에 성립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amp;lt;창선감의록&amp;gt; 뒷부분에 나타나는 이러한 서술을 강화하고 확장함으로써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lt;br /&gt;
&lt;br /&gt;
=== &amp;lt;소현성록&amp;gt; ===&lt;br /&gt;
&amp;lt;소현성록&amp;gt;은 17세기 후반에 국문으로 창작되었으며 작자 미상임,&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 &amp;lt;창선감의록&amp;gt;, &amp;lt;소현성록&amp;gt;은 모두 17세기에 창작되었으며 성립기의 장편소설이라 할 수 있음. (창작 선후관계는 알 수 없음.)&lt;br /&gt;
&lt;br /&gt;
소현성록은 ‘소현성 이야기’라는 뜻. 국문소설 중 ‘~록’은 대개 사대부적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가문소설에 많고, ‘~전’이라는 제목의 국문소설은 영웅소설에 많음. 영웅소설과 달리 가문소설은 언어가 점잖고 품위있는데, 제목에서부터 신분적 연관이 발견된다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과 동일하게 &amp;lt;소현성록&amp;gt;도 상층 사대부 부녀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소설임. 또한 &amp;lt;소현성록&amp;gt;은 우리 문학사 최초의 가문소설이기도 함. (&amp;lt;남정기&amp;gt;, &amp;lt;창선감의록&amp;gt;, &amp;lt;구운몽&amp;gt; 등은 &amp;lt;소현성록&amp;gt;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가문소설은 아님.)&lt;br /&gt;
&lt;br /&gt;
* 가문소설: 한 가문은 여러 대에 걸친 이야기, 몇몇 가문이 결혼을 통해서 서로 얽히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함. 그래서 ‘~삼대록(3대의 이야기)‘, ’~양문록(두 가문의 이야기)‘와 같은 제목이 종종 있음.&lt;br /&gt;
&lt;br /&gt;
&amp;lt;소현성록&amp;gt;은 본전(소현성의 일대기)과 &amp;lt;소씨삼대록&amp;gt;(소현성과 그의 자식들, 손자들의이야기) 둘로 구성되어 있음. 본전이 먼저 창작되고 이후에 &amp;lt;소씨삼대록&amp;gt;이 창작된 것으로 보임. 작자는 같을 수도 있고, 두 사람이 썼을 수도 있음.&lt;br /&gt;
&lt;br /&gt;
가문소설에는 속편이나 파생작이 많음.&lt;br /&gt;
&lt;br /&gt;
*  속편: 전작에 이어지는 후속 세대의 이야기가 서술된 소설&lt;br /&gt;
*  파생작: 전작의 주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이야기함.&lt;br /&gt;
&lt;br /&gt;
&amp;lt;소현성록&amp;gt; 본전은 제 1대 주인공인 소현성의 이야기. 소현성은 9대독자인데다 유복자인데, 지극한 효심을 타고난 인물임. 소현성의 어머니인 양부인은 소현성과 함께 소씨 집안의 번영을 이루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짐.&lt;br /&gt;
&lt;br /&gt;
소현성에게는 화부인, 석부인, 여부인 3명의 부인이 있는데, 화부인은 질투심이 약간 있는 여인, 석부인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이상적인 부인, 여부인은 질투심이 심한 악녀로 그려짐. 여부인은 질투로 인해 화부인과 석부인, 그 자식들까지 해치려고 하고, 소현성은 여부인을 친정으로 쫓아버림. 이러한 ‘악녀’의 질투심은 일부다처제에서 기인한 것이고, ‘악녀’는 곧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창조물이라 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본전에서 소현성은 소년급제하여 젊은 나이에 승상이 되고 많은 자식을 낳아 가문을 번성케한 군자로 그려짐.&lt;br /&gt;
&lt;br /&gt;
&amp;lt;소씨삼대록&amp;gt;에서는 소현성과 그 아들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말미에 손자들의 이야기가 나옴. 소현성의 10남 5녀 중 장남 소운경, 셋째 아들 소운성, 여덟째 아들 소운명, 넷째 딸 소수빙, 다섯째 딸 소주주가 2세대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함. 서사 방식은 한 사람의 이야기 이후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나열적 서사’로 진행됨. 따라서 독자는 긴 내용의 소설이어도 이야기를 따라가며 몰입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2대 주인공 중 핵심 주인공은 소운성인데, 소운성도 소현성과 마찬가지로 소년 급제하여 병부상서를 거쳐 승상의 지위에 오르게 됨. 아내 형씨 부인이 있지만, 황제의 강요로 명현 공주와 늑혼을 하게 됨. 명현공주는 질투가 심한 악녀로 묘사됨. 형씨 부인을 죽이려 하고 남편을 저주하고, 시어머니를 능멸하기까지 한 명현공주는 결국 유폐되어 생을 마감하게 됨. &amp;lt;소씨삼대록&amp;gt;에 등장하는 수많은 일화 중 명현공주에 관한 서사 부분이 가장 파란과 곡절이 많음.&lt;br /&gt;
&lt;br /&gt;
&amp;lt;소현성록&amp;gt;에서 소현성의 자식과 손자는 130여명이고, 아들 열 명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였고, 셋째 아들 소운성, 첫째 아들은 소운경은 승상이 되기도 함. 다섯째딸 소주주는 황후가 됨.&lt;br /&gt;
&lt;br /&gt;
&amp;lt;소현성록&amp;gt;은 18세기 이래 성향한 가문소설의 근원이 되는 작품.&lt;br /&gt;
&lt;br /&gt;
작품에서 제일의적으로 옹호되는 것은 사대부 가문의 질서와 법도인데, 이는 ‘가부장’에 의해 유지되고 규율됨. 상하의 위계와 남녀 차등은 선험적(경험 초월적?)인것으로 간주됨. 여성의 질투는 죄악시되고, 정숙하여야 하며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함. 그래서 일부다처제가 정당화됨. 가문소설의 ‘가문적 번영’의 기저에는 가부장제와 일부다처제가 자리잡고 있음.&lt;br /&gt;
&lt;br /&gt;
이러한 사대부 가문의 질서와 법도는 17세기 소설인 &amp;lt;남정기&amp;gt;, &amp;lt;구운몽&amp;gt;, &amp;lt;창선감의록&amp;gt;에서도 추구되고 있음. 그러나 &amp;lt;소현성록&amp;gt;은 이를 ‘가문’을 통해 3대에 걸쳐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짐.&lt;br /&gt;
&lt;br /&gt;
&amp;lt;소현성록&amp;gt;은 사대부 가문의 질서와 법도가 갖는 가치를 소씨 가문과 왕실의 대결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음.&lt;br /&gt;
&lt;br /&gt;
&lt;br /&gt;
- 윤바오★&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inds.or.kr/mediawiki/index.php?title=1%EC%9E%A5_%EC%A0%84%EC%9F%81%EA%B3%BC_%EC%82%AC%ED%9A%8C&amp;diff=202</id>
		<title>1장 전쟁과 사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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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9:24: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격변기를 집약한 역사적 사건.&lt;br /&gt;
&lt;br /&gt;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1598년 11월 19일 왜군의 철수까지, 6년 8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임.&lt;br /&gt;
&lt;br /&gt;
일본의 군대는 100년 가까이 벌어진 내전으로 축적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대표되는 화력을 가지고 있어 전쟁 초기에는 승승장구함.&lt;br /&gt;
&lt;br /&gt;
이 초기 전쟁의 분수령은 '달천 전투'였음. 신립이 이끌던 조선 군대가 충주 달천강 탄금대에서 전멸하고, 그 직후 선조가 개성에서 평양으로 피신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개월 만에 의주에까지 다다름.&lt;br /&gt;
&lt;br /&gt;
전쟁 초기의 무방비한 상태와 장수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일방적 패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 당시 정황을 반영한 작품이 「달천몽유록」.&lt;br /&gt;
&lt;br /&gt;
이러한 상황을 전환한 계기가 이순신의 남해 장악, 의병의 활약, 명나라의 참전임.&lt;br /&gt;
&lt;br /&gt;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중국 침략으로 설정함. 이 때문에 명나라 역시 참전했고, 명의 장군과 왜의 장군이 강화 회담을 벌임. 조선에서 발발한 전쟁이나 조선은 배제된 채 명과 왜가 회담의 파트너가 됨. 이는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크게 바뀌지 않음. 회담이 결렬되고 명은 10만 이상의 군을 투입함.&lt;br /&gt;
&lt;br /&gt;
명의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 활동이 벌어짐.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평양을 되찾았으나 서울은 되찾지 못하고 개성으로 물러남. 이후 명과 왜의 협상을 통해 일본은 한강 남쪽에서 철수하여 동남 해안에 주둔함.&lt;br /&gt;
&lt;br /&gt;
조선군이 서울에 입성한 것은 왜군이 철수한 직후인 1593년 4월 20일이지만, 선조는 서울로 돌아오길 주저해 5개월 후인 10월 4일에 돌아옴. 선조보다 한 달 미리 서울에 다녀온 대사헌 김응남의 보고에 따르면, 전란에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쳐 상황이 처참했음.&lt;br /&gt;
&lt;br /&gt;
사헌부의 보고 내용은 민중들의 절망과 분노, 이를 접한 지식인들의 분노와 환멸이 담겨있음. &lt;br /&gt;
&lt;br /&gt;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임진록」, 「달천몽유록」에 표출된 분노와 「주생전」, 「운영전」의 환멸은 당대를 반영함.&lt;br /&gt;
&lt;br /&gt;
&lt;br /&gt;
- 동쥬&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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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장 전쟁과 사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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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9:18: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격변기를 집약한 역사적 사건.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1598년 11월 19일 왜군의 철수까지, 6년 8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임.  일본의 군대는 100년 가까이 벌어진 내전으로 축적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대표되는 화력을 가지고 있어 전쟁 초기에는 승승장구함.  이 초기 전쟁의 분수령은 '달천 전투'였...&lt;/p&gt;
&lt;hr /&gt;
&lt;div&gt;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격변기를 집약한 역사적 사건.&lt;br /&gt;
&lt;br /&gt;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1598년 11월 19일 왜군의 철수까지, 6년 8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임.&lt;br /&gt;
&lt;br /&gt;
일본의 군대는 100년 가까이 벌어진 내전으로 축적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대표되는 화력을 가지고 있어 전쟁 초기에는 승승장구함.&lt;br /&gt;
&lt;br /&gt;
이 초기 전쟁의 분수령은 '달천 전투'였음. 신립이 이끌던 조선 군대가 충주 달천강 탄금대에서 전멸하고, 그 직후 선조가 개성에서 평양으로 피신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개월 만에 의주에까지 다다름.&lt;br /&gt;
&lt;br /&gt;
전쟁 초기의 무방비한 상태와 장수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일방적 패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 당시 정황을 반영한 작품이 「달천몽유록」.&lt;br /&gt;
&lt;br /&gt;
이러한 상황을 전환한 계기가 이순신의 남해 장악, 의병의 활약, 명나라의 참전임.&lt;br /&gt;
&lt;br /&gt;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중국 침략으로 설정함. 이 때문에 명나라 역시 참전했고, 명의 장군과 왜의 장군이 강화 회담을 벌임. 조선에서 발발한 전쟁이나 조선은 배제된 채 명과 왜가 회담의 파트너가 됨. 이는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크게 바뀌지 않음. 회담이 결렬되고 명은 10만 이상의 군을 투입함.&lt;br /&gt;
&lt;br /&gt;
명의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 활동이 벌어짐.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평양을 되찾았으나 서울은 되찾지 못하고 개성으로 물러남. 이후 명과 왜의 협상을 통해 일본은 한강 남쪽에서 철수하여 동남 해안에 주둔함.&lt;br /&gt;
&lt;br /&gt;
조선군이 서울에 입성한 것은 왜군이 철수한 직후인 1593년 4월 20일이지만, 선조는 서울로 돌아오길 주저해 5개월 후인 10월 4일에 돌아옴. 선조보다 한 달 미리 서울에 다녀온 대사헌 김응남의 보고에 따르면, 전란에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쳐 상황이 처참했음.&lt;br /&gt;
&lt;br /&gt;
사헌부의 보고 내용은 민중들의 절망과 분노, 이를 접한 지식인들의 분노와 환멸이 담겨있음. &lt;br /&gt;
&lt;br /&gt;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임진록」, 「달천몽유록」에 표출된 분노와 「주생전」, 「운영전」의 환멸은 당대를 반영함.&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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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부 이념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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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6:33: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1장 사회 재편의 두 갈래 길과 소설의 재발견  2장 사대부 중심의 통합 논리  3장 배타적인 사족중심주의  4장 선민의식과 가문중심주의&lt;/p&gt;
&lt;hr /&gt;
&lt;div&gt;[[1장 사회 재편의 두 갈래 길과 소설의 재발견]]&lt;br /&gt;
&lt;br /&gt;
[[2장 사대부 중심의 통합 논리]]&lt;br /&gt;
&lt;br /&gt;
[[3장 배타적인 사족중심주의]]&lt;br /&gt;
&lt;br /&gt;
[[4장 선민의식과 가문중심주의]]&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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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부 전쟁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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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6:32: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1장 전쟁과 사회  2장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  3장 '문제적 개인'의 등장과 새로운 전망&lt;/p&gt;
&lt;hr /&gt;
&lt;div&gt;[[1장 전쟁과 사회]]&lt;br /&gt;
&lt;br /&gt;
[[2장 전쟁을 보는 세 개의 시선]]&lt;br /&gt;
&lt;br /&gt;
[[3장 '문제적 개인'의 등장과 새로운 전망]]&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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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세기 한국 소설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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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6:30: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1부 전쟁의 시대  2부 이념의 시대&lt;/p&gt;
&lt;hr /&gt;
&lt;div&gt;[[1부 전쟁의 시대]]&lt;br /&gt;
&lt;br /&gt;
[[2부 이념의 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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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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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6:29: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 한국고전문학사 위키 */&lt;/p&gt;
&lt;hr /&gt;
&lt;div&gt;= DH in DS =&lt;br /&gt;
Digital Humanities in Duksung&amp;lt;br&amp;gt;&lt;br /&gt;
덕성여자대학교 디지털 인문학 연구실 위키 페이지입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디지털 한국어문학 =&lt;br /&gt;
* [[한국고전소설 디지털 모델링]]&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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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문학사 연표]]&lt;br /&gt;
* [[한국고전장편소설의 형성 과정 발제]]&lt;br /&gt;
* [[17세기 한국 소설사]]&lt;br /&gt;
&lt;br /&gt;
= 위키 문법 =&lt;br /&gt;
&lt;br /&gt;
위키 문법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요.&amp;lt;br&amp;gt;&lt;br /&gt;
[http://dh.aks.ac.kr/~jisun/edu/index.php/%EC%9C%84%ED%82%A4_%EB%AC%B8%EB%B2%95 위키 문법]&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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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21T06:28: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 한국고전문학사 위키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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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한국 소설사&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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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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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jisun/edu/index.php/%EC%9C%84%ED%82%A4_%EB%AC%B8%EB%B2%95 위키 문법]&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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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화경제사적 배경: 독자층 형성의 토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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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3-26T07:28: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 '''장편소설 성립 이전의 독자''' ===&lt;br /&gt;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에서 장편소설이 널리 읽혔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함.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교양과 기본적인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임.&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이 등장하기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전기소설 중심의 소설사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불필요함. 전기소설의 작자와 독자는 대부분이 사대부였기 때문임. 이들은 개별적으로 소설을 입수하고 필사하여 소수의 인원끼리만 돌려보았을 것으로 추측됨.&lt;br /&gt;
&lt;br /&gt;
좀더 적극적인 향유자들은 비슷한 성격의 단편소설을 모아 소설집을 여러 종 만들어내기도 함; &amp;lt;신독재전기집&amp;gt;, &amp;lt;화몽집&amp;gt; 등&lt;br /&gt;
&lt;br /&gt;
전기소설집 및 문언소설집이 16세기 후반에 간행되며 독자층이 확대됨. 이들이 전기소설의 유행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 &amp;lt;전등신화&amp;gt;, &amp;lt;전등신화구해&amp;gt;, &amp;lt;금오신화&amp;gt;, &amp;lt;전등여화&amp;gt;, &amp;lt;화영집&amp;gt;&lt;br /&gt;
&lt;br /&gt;
소설을 애독하던 상층 독자가 지방의 수령으로 있는 동안 휘하의 인력을 동원해 소설을 간행하는 것이 흔했음. &amp;lt;전등신화구해&amp;gt;가 원주 등지에서 재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존재. &amp;lt;오륜전전&amp;gt;, &amp;lt;왕십붕기우기&amp;gt; 등 16세기에 중국 희곡이 여럿 들어와 그중 일부는 한문문언소설로 개작 번역되며, 중국 소설의 유입이 가속화됨.&lt;br /&gt;
&lt;br /&gt;
이때까지 소설의 독자는 대부분 한문에 능한 상층 사대부와 한문 및 백화에 능한 일부 중인층(역관)이었음. 16세기 상층 사회에서 유행한 소설은 일부 하층 사회로까지 파급됨. 일부 한문 소설과 희곡이 국문으로 번역되어 읽히기도 함; &amp;lt;오륜전전&amp;gt; 서문 “여항의 무식한 이들이 언문을 익혀 노인들이 전하는 말을 베껴 적어서는 밤낮으로 이야기”&lt;br /&gt;
&lt;br /&gt;
16세기의 국문 번역은 후대의 번역과 달리 한문소설 혹은 중국 희곡의 줄거리가 구연되어 이를 다시 국문으로 옮겨 적는 방식으로 번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음; &amp;lt;오륜전전&amp;gt; 서문, &amp;lt;왕시봉전&amp;gt; 문체, &amp;lt;설공찬전&amp;gt;의 국문 번역 제목 ‘설공찬이’&lt;br /&gt;
&lt;br /&gt;
구비적 성격으로 인해 문체가 세련되지 못하고 서사 전개상 여러 착종이 보인다는 점에서 당대 국문소설의 수준은 높지 않음. 그러나 초기 국문소설의 존재가 당시 상층 여성과 일부 하층 사이에서 소설 수요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줌.&lt;br /&gt;
&lt;br /&gt;
중국 희곡을 개작 번역한 국문소설이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함. 16세기 초까지 거의 유일한 소설 형식이었던 전기소설은 문인 지식층 외에는 온전히 향유하기 어려운 형태임. 따라서 '''국문으로 번역되어도 전기소설 형식 자체가 갖는 ‘배타성’은 남아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함.&lt;br /&gt;
&lt;br /&gt;
새로운 독자층의 소설 수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전기소설의 본원적 형식과 새로운 독자층의 요구 사이의 괴리로 중국 희곡에 관심이 생김. 악인의 음모와 선인의 고난이 그려지는 권선징악의 구도, 남녀 주인공이 겪는 혼사 장애 등 극적인 흥미 요소가 다분한 장편희곡을 단편소설로 바꿈으로써 새로운 소설 형식을 만들어내는데에 기반이 됨; &amp;lt;형차기&amp;gt;&lt;br /&gt;
&lt;br /&gt;
새로운 독자층이 다음 시기 ‘초기 장편소설’의 독자층으로 이어져야 함. 그러나 다음 시기 독자들이 애독하는 소설의 성격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문제가 발생. 가장 큰 차이는 작품의 분량임. 초기 장편소설 중 가장 짧은 &amp;lt;구운몽&amp;gt;도 통상적인 단편소설의 10배에서 20배 분량에 해당함. 이는 초기 국문소설을 향유하던 것처럼 여럿이 모여 한자리에서 읽거나 들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님.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설 읽기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짐; &amp;lt;소현성록&amp;gt;, &amp;lt;삼국지연의&amp;gt;, &amp;lt;봉신연의&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17세기 후반의 사회 경제 상황''' ===&lt;br /&gt;
17세기에 유통된 국내외 장편소설의 주된 독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상층 사대부와 사대부가의 여성이었음.&lt;br /&gt;
김만중의 언급에 따르면 &amp;lt;삼국지연의&amp;gt;는 사대부 청년층 사이에서 역사서 대용으로 읽혔음.&lt;br /&gt;
&lt;br /&gt;
17세기 소설 향유에 관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상층 사대부의 문집 속에 들어가 전해진 것은 대부분 상층 사대부들의 모친이 소설의 애독자였기 때문임; 김만중, 조성기, 조태억, 권섭의 모친.&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의 독자층이 모든 연령층의 사대부와 중년층 이상의 사대부가 여성으로 넓어졌으나 이는 서울 중심의 현상이었음. 최남선이 &amp;lt;매일신보&amp;gt;에 남긴 기록에 의하면 세책가가 본래 서울에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이 극성기에 도달했던 18세기 후반 이후에도 상업적인 세책가가 서울에만 존재했다면, 17세기 후반에 서울 외의 지역에서 장편소설이 읽히기는 어려움. 따라서 장편소설 향유의 사회적 토대에 대한 접근은 서울의 상층 사대부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마땅함.&lt;br /&gt;
&lt;br /&gt;
서울의 인구 변화를 보면,17세기 중반까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여파로 인구가 줄고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음. 그러나 1669년 약 10년 사이에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함. 인구 증가의 원인으로는 서울 인근 지역이 서울로 편입된 점과 전란 후의 복구 사업이 마무리되며 출생 증가 혹은 대규모 인구 유입이 있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은 초기 장편소설 중 창작 연대가 뚜렷한 작품으로, 1687년에서 1688년 사이에 창작되었음. 명말청초에 유행한 통속염정소설과 재자가인소설을 의식하고 지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서울에서 소설이 1669년부터 1688년 사이에 대중적 독서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음; 인선왕후 장씨와 숙명공주가 &amp;lt;수호전&amp;gt;을 돌려읽은 시기, 조성기가 모친을 위해 소설을 창작한 시기, 조태억의 모친 남원 윤씨가 &amp;lt;서주연의&amp;gt;를 필사한 시기가 겹침.&lt;br /&gt;
&lt;br /&gt;
앞서 1669년 비약적인 인구 성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amp;lt;조선왕조실록&amp;gt;에는 당대의 궁핍한 민생에 관한 기록이 많음. 기근과 역병으로 전국 인구의 1/5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상황이 처참했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그러나 당대의 실록에서 궁가와 벌열가를 중심으로 한 상층의 사치 풍조에 관한 기록 역시 많음. 서울로 논의의 범위를 한정지어보면 상층이 누렸던 부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임.&lt;br /&gt;
&lt;br /&gt;
즉, 17세기 후반 조선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대다수의 하층민은 전란 이후 정체 혹은 심화되는 반면 소수 상층의 부는 늘어나는, 대비된 모습을 보임.&lt;br /&gt;
&lt;br /&gt;
&lt;br /&gt;
=== '''경화세족의 재산 축적 양상''' ===&lt;br /&gt;
&lt;br /&gt;
부를 축적한 상층 중 궁가는 17세기 내내 급속하게 궁방전이 확대되는 현상을 보였음. 법률적으로는 주인 없는 땅이 맞으나 실질적으로는 농민의 소유였던 땅을 합법적으로 탈취하면서 궁방전은 면세, 면역의 혜택까지 받았음.&lt;br /&gt;
&lt;br /&gt;
1623년 궁방전 하나의 규모가 수백 결이었으나 1695년 궁방전 하나의 규모가 7천여 결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확장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궁가에서는 토지뿐만 아니라 어염, 목장, 시장, 취철소의 이익까지도 독점하여 해당업에 종사하던 하층민을 고달프게 하였음. 이러한 과정에서 상하층 간의 극심한 갈등이 발생했을 것임.&lt;br /&gt;
&lt;br /&gt;
궁가뿐만 아니라 사대부가에서도 토지 수탈이 자행되었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사대부들이 노비보다는 토지를 통해 재산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강화됨.&lt;br /&gt;
&lt;br /&gt;
재지사족(= 지방 거주 사대부) 역시 중앙 관계와 꾸준히 연관을 맺으며 재산을 늘려갔음. 17세기의 고문서를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를 보면 이 시기 사대부들이 얼마나 재산 유지 및 증가에 관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경화세족(= 서울 거주 최상층 사대부)도 예외는 아님. 사관의 말에 의하면, 현직 고관인 최상층 사대부가 국가 재산을 자본으로 삼아 상인과 결탁하여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이 말의 신빙성이 확실치는 않으나 당대 최상층 사대부의 재산 축적 양상을 가늠해보기에는 충분함.&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상층 사대부가 노비들을 이용해 상업에 나서거나 은화를 사들여 시세 차익을 꾀하는 등 온갖 재산 축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일반화된 현상으로 여겨짐.&lt;br /&gt;
&lt;br /&gt;
윤선도가 자식들에게 엄격히 장사를 금지하도록 명한 것을 보면 사대부가에서 상업에 참여하여 이익을 꾀하는 일이 당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lt;br /&gt;
더 큰 규모의 이익은 청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개무역을 통해 얻었음.&lt;br /&gt;
&lt;br /&gt;
대사간 이원정의 상소에 따르면, 연행 사절을 따라간 조선 상인의 수레 행렬이 수십리에 걸쳐있었다는 것에서 당대 대청 무역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또, 중국에서 산 물건을 왜관에 되팔았다는 데서 조선 상인이 중개무역을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했음을, 아문에서 이자를 얻기 위한 물건의 대금을 못 받고 있다는 데서 광청에서 상인의 무역 자본을 대고 그 이익을 나눠 가졌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이원정은 이렇게 무역 규모가 급팽창하게 된 것에는 팔포(= 중국에 가는 사신 일행이 여비로 바꾸어 쓰기 위해 가져가는 8개의 인삼 꾸러미, 곧 홍삼 80근)법이 문란해진 것이라고 주장함.&lt;br /&gt;
&lt;br /&gt;
사신 일행은 홍삼을 가져가서 중국 물건을 샀으므로 이를 ‘팔포무역’이라고 함.&lt;br /&gt;
&lt;br /&gt;
현·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팔포무역에 홍삼 대신 은화를 가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은화는 2,000냥에서 3,000냥(당상관)으로 허용되었고, 정식 사행원에 대해서만 팔포무역의 특권이 주어졌음.&lt;br /&gt;
&lt;br /&gt;
그러나 팔포법이 문란해지면서 무역 특권의 허용 범위와 액수 제한이 통제되지 않았음.&lt;br /&gt;
&lt;br /&gt;
역관들은 관청(상의원, 내의원, 호조,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총융청, 수어청 등)의 물품 수입을 대행하기도 했음.&lt;br /&gt;
&lt;br /&gt;
호조 보고서에 기록된 무역 비용을 보면 공식적으로 큰 규모의 무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게다가 역관이나 상인은 관청의 묵인 아래 나라의 공금을 동원하는 편법을 사용함.&lt;br /&gt;
&lt;br /&gt;
역관을 중심으로 한 사행원이 관청에서 은화를 빌려 중국의 백사를 수입해다가 왜관에 팔고 왜은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중개무역이 공식·비공식적으로 행해짐. 무역으로 얻는 순이익이 자본금의 2배 가까이 되었음.&lt;br /&gt;
&lt;br /&gt;
이런 중개무역은 18세기 중반 이후 왜관 무역이 쇠퇴할 때까지 지속되며 조선의 국부 축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함. 이 과정에서 무역에 관여했던 담당 관리와 역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앞서 언급된 김만중, 조성기, 조태억, 권섭 집안은 모두 최상층 사대부에 속하므로 온갖 경제적 이익의 수혜자였음.&lt;br /&gt;
&lt;br /&gt;
=== ''''문화 사치품'으로서의 장편소설''' ===&lt;br /&gt;
정리하자면, 17세기 후반 서울의 풍요와 사치는 내부적으로는 전국 각지의 하층민에 대한 수탈, 외부적으로는 청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개무역의 이익 독점으로 인해 가능했음.&lt;br /&gt;
&lt;br /&gt;
이러한 부의 축적으로 인해 서울의 상층 사대부가는 물론 그 수하의 노비들, 역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중인가에서 물질적 사치를 누리게 되었을 것임.&lt;br /&gt;
&lt;br /&gt;
물질적인 풍요를 맛보면 정신적 포만감을 원하게 되는 법.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층 중에서도 상층 여성들이 여가를 보낼 유흥물을 필요로 했음. 소설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음.&lt;br /&gt;
&lt;br /&gt;
1603년 선조가 『포공연의』를 부마에게 준다는 편지를 통해 소설 읽기는 17세기 초를 전후로 이미 왕실에서는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병자호란 직후의 기록을 보면 청나라 사신이 원하는 책을 교서관 관원이 잘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초 서울에서 중국 장편소설이 광범위하게 유행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왕실 친인척을 중심으로 한 최상층 내에서 주로 향유되었음.&lt;br /&gt;
&lt;br /&gt;
유행이라는 것이 상층의 배타적인 취향에서 비롯되어 전 계층으로 확산된다고 하면, 소설 읽기는 일반적인 유행의 확산 과정과 흡사함.&lt;br /&gt;
&lt;br /&gt;
왕실을 중심으로 한 소수 상층의 사치품이었던 소설이 서울 상층 사대부가가 급격한 부의 축적을 이루면서 서울 전역으로까지 소비 대상을 넓혔을 것임.&lt;br /&gt;
&lt;br /&gt;
최상층 사대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주로 그 모친들이 소설의 애독자였던 것을 알 수 있으나 독자가 중년 혹은 노년으로 한정되지는 않음.&lt;br /&gt;
&lt;br /&gt;
중인층 여성으로 추측되는 ‘여항의 아낙’이 빌려 보기도 하고, 소년이었던 임영이 누이들에게 읽어달라고 하기도 했음.&lt;br /&gt;
&lt;br /&gt;
이 시기 소설 독자의 범위는 상층 여성 대다수와 일부 중인 여성, 상층의 젊은 남성까지도 포괄함.&lt;br /&gt;
&lt;br /&gt;
김성최의 기록에 의하면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젊은 사대부도 ‘부녀’들과 함께 소설을 즐겼음.&lt;br /&gt;
&lt;br /&gt;
즉, 17세기 후반의 서울에서는 상층 사대부가 여성을 중심으로 장편 소설 읽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크게 유행을 했고, 일부 사대부가에서는 연령 및 성별 무관하게 온 가족이 함께 어울려 소설을 향유하는 것이 하나의 여가 문화를 이루었음.&lt;br /&gt;
&lt;br /&gt;
새로운 읽을거리에 대한 욕망이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커다란 유행을 형성함.&lt;br /&gt;
&lt;br /&gt;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사신이 소설을 구해줄 것을 요구하면 즉시 응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 상층부에서는 장편소설이 널리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은 17세기 후반 서울 상층을 주요 소비 대상으로 삼은 일종의 문화 사치품으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음.&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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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선감의록』의 형성 경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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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3-23T00:50: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 '''=== *『창선감의록』: 정치적인 대립, 가정 내 갈등, 애정 장애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  『창선감의록』의 형성 경로 #역사상의 정치적 대립: 작품의 큰 배경을 이룸. 중국의 역사서 및 정치적 대립을 담은 ‘역사소설’이 영향을 미침. #복합적인 결연의 장애: 작품 내부. ‘재자가인소설’이 영향을 미침. :※ 인물 설정과 애정관계 형성, 정치적 대...&lt;/p&gt;
&lt;hr /&gt;
&lt;div&gt;===''' '''===&lt;br /&gt;
*『창선감의록』: 정치적인 대립, 가정 내 갈등, 애정 장애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lt;br /&gt;
&lt;br /&gt;
『창선감의록』의 형성 경로&lt;br /&gt;
#역사상의 정치적 대립: 작품의 큰 배경을 이룸. 중국의 역사서 및 정치적 대립을 담은 ‘역사소설’이 영향을 미침.&lt;br /&gt;
#복합적인 결연의 장애: 작품 내부. ‘재자가인소설’이 영향을 미침.&lt;br /&gt;
:※ 인물 설정과 애정관계 형성, 정치적 대립과 가정 갈등 및 결연 장애를 연관 짓는 방식 등은 동시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구운몽』, 『남정기』와의 관계가 해명되어야 할 것.&lt;br /&gt;
&lt;br /&gt;
==='''역사의 허구화'''===&lt;br /&gt;
조선 후기 소설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사 허구와’의 문제임.&lt;br /&gt;
장편소설의 대다수는 중국의 실제 역사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아 서사 전개의 토대를 마련함.&lt;br /&gt;
&lt;br /&gt;
*『구운몽』은 당대 현종 이후의 언젠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기는 하나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서사 전개 사이의 관계는 느슨함.&lt;br /&gt;
*『소현성록』은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 주변 인물로 등장하고 드물게나마 역사적 사건이 서사 전개와 맞물리기도 하여 어느 정도의 연관을 맺고 있음.&lt;br /&gt;
*『창선감의록』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 대거 등장하여 작품의 서사 전개와 실제 역사적 배경이 대단히 밀접한 관련을 가짐.&lt;br /&gt;
&lt;br /&gt;
후대의 장편소설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대개 『창선감의록』이 역사상의 한 시기를 작품 배경으로 설정하고 허구적 인물의 활동 반경에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적절히 포치하는 방식을 채택함. 이는 『창선감의록』의 ‘역사 허구화’가 장편소설의 형성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님을 나타냄.&lt;br /&gt;
&lt;br /&gt;
&lt;br /&gt;
연의소설(= 정사의 의미를 부연하여 만든 소설; 일종의 역사소설)&lt;br /&gt;
:※역사적 실존 인물을 내세워 충신과 간신의 정치적 대립을 다룬 정치소설도 역사소설의 범주에서 논의해야 함. 정치소설도 실제 역사적 사건에 기반하여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따르되 주요 등장인물에 허구적 성격을 부여하여 ‘허구화된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임.&lt;br /&gt;
&lt;br /&gt;
&lt;br /&gt;
신생 형식은 기존 형식의 권위를 빌려 존재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속성을 지님.(ex. 단편소설이 정통 문체인 ‘전’이나 ‘기’를 표방)&lt;br /&gt;
&lt;br /&gt;
→ 장편소설은 단편소설의 좁은 편폭과 ‘일면성’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형식.&lt;br /&gt;
&lt;br /&gt;
→ ‘전면적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장구한 서사 시간과 다수의 등장인물이 필수적임.&lt;br /&gt;
&lt;br /&gt;
→ 서사의 시공간을 충분히 확대하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낸 형식은 역사서가 유일함. 역사서는 ‘전면적 진실성’에 가장 근접해 있는 권위 있는 기록물임.&lt;br /&gt;
&lt;br /&gt;
⇒ 장편소설이 역사를 배경으로 삼음.&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창선감의록』과 연의소설 비교&lt;br /&gt;
|-&lt;br /&gt;
!  !! 『창선감의록』 !! 연의소설&lt;br /&gt;
|-&lt;br /&gt;
| 공통점 ||&lt;br /&gt;
* 역사적 실존 인물이 대거 등장함&lt;br /&gt;
* 연대기적 기술 방식을 이용하여 정교한 ‘허구적 역사’를 만듦.&lt;br /&gt;
|-&lt;br /&gt;
|  || 역사적 실존 인물이 조역. 주역에 해당하는 인물은 모두 허구적 존재이되 역사상 유명 인물의 후예 || 역사적 실존 인물이 주역.&lt;br /&gt;
|-&lt;br /&gt;
| 차이점 || 역사적 시공간을 무대로 하되 실제의 역사 전개는 배경을 이루면서 대부분의 서사 내용은 순전한 허구로 짜임. || 주역을 맡은 실존 인물에 대해 작자가 나름의 해석을 가하여 성격을 부여함.&lt;br /&gt;
실제의 역사 전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허구를 가미함.&lt;br /&gt;
|-&lt;br /&gt;
|  || 연의소설과 허구의 중간 지점(허구성이 한층 강화됨) || 역사와 허구의 중간 지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대기적 서술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서술하는 방식에서도 『창선감의록』과 연의소설은 차이를 보임.&lt;br /&gt;
&lt;br /&gt;
『창선감의록』 작품 서두의 인물 소개 대목에서 명나라 연호로 연대를 표시한 대목은 전대 역사소설의 방식을 그대로 따른 예에 해당함.&lt;br /&gt;
&lt;br /&gt;
그러나 주요 사건을 전개하기 전에 등장인물의 나이를 통해 연대를 알려주는 방식은 「숙향전」 이래 국문소설에서 상용하던 수법임. 『창선감의록』이 이러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운용 방식은 국문소설처럼 단순하지 않음.&lt;br /&gt;
&lt;br /&gt;
실제의 ‘역사적 시간’과 허구적 존재인 주인공 ‘개인의 시간’을 정교하게 결합함. ⇒ 허구적 인물이 실제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효과를 창출함.&lt;br /&gt;
&lt;br /&gt;
『창선감의록』은 허구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존의 역사소설을 더욱 허구화하고, 그 허구성을 상쇄하기 위해 작품 전체를 정교한 시간축 위에 구축함.&lt;br /&gt;
&lt;br /&gt;
&lt;br /&gt;
==='''재자가인소설과의 관계'''===&lt;br /&gt;
===''''예언구도'와 숙명론의 연원'''===&lt;br /&gt;
==='''『구운몽』·『남정기』와의 관계'''===&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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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전장편소설 형성의 의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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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3-18T18:35: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장편소설 형식의 성립 #소설과 '지배 이념'의 결합&lt;/p&gt;
&lt;hr /&gt;
&lt;div&gt;#[[장편소설 형식의 성립]]&lt;br /&gt;
#[[소설과 '지배 이념'의 결합]]&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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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세기 장편소설의 장편화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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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3-18T18:35: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구운몽』의 장편화 방법 #『창선감의록』의 장편화 방법 #『소현성록』의 장편화 방법&lt;/p&gt;
&lt;hr /&gt;
&lt;div&gt;#[[『구운몽』의 장편화 방법]]&lt;br /&gt;
#[[『창선감의록』의 장편화 방법]]&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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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세기 장편소설의 형성 경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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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구운몽』의 형성 경로 #『창선감의록』의 형성 경로 #『소현성록』의 형성 경로&lt;/p&gt;
&lt;hr /&gt;
&lt;div&gt;#[[『구운몽』의 형성 경로]]&lt;br /&gt;
#[[『창선감의록』의 형성 경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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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고전장편소설의 형성 과정 발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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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3-18T18:32: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 [[고전장편소설의 범주와 연구과제]]&lt;br /&gt;
# [[17세기 장편소설의 형성 배경]]&lt;br /&gt;
# [[17세기 장편소설의 형성 경로]]&lt;br /&gt;
# [[17세기 장편소설의 장편화 방법]]&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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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고전장편소설의 형성 과정 발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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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lt;/p&gt;
&lt;hr /&gt;
&lt;div&gt;# [[고전장편소설의 범주와 연구과제]]&lt;br /&gt;
# [[17세기 장편소설의 형성 배경]]&lt;br /&gt;
# 17세기 장편소설의 형성 경로&lt;br /&gt;
# 17세기 장편소설의 장편화 방법&lt;br /&gt;
# 고전장편소설 형성의 의의&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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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화경제사적 배경: 독자층 형성의 토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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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3-12T16:25: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pdj200619: 새 문서: === '''장편소설 성립 이전의 독자''' ===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에서 장편소설이 널리 읽혔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함.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교양과 기본적인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임.  장편소설이 등장하기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전기소설 중심의 소설사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불필요함. 전기소설의 작자와 독자는 대부...&lt;/p&gt;
&lt;hr /&gt;
&lt;div&gt;=== '''장편소설 성립 이전의 독자''' ===&lt;br /&gt;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에서 장편소설이 널리 읽혔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함.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교양과 기본적인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임.&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이 등장하기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전기소설 중심의 소설사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불필요함. 전기소설의 작자와 독자는 대부분이 사대부였기 때문임. 이들은 개별적으로 소설을 입수하고 필사하여 소수의 인원끼리만 돌려보았을 것으로 추측됨.&lt;br /&gt;
&lt;br /&gt;
좀더 적극적인 향유자들은 비슷한 성격의 단편소설을 모아 소설집을 여러 종 만들어내기도 함; &amp;lt;신독재전기집&amp;gt;, &amp;lt;화몽집&amp;gt; 등&lt;br /&gt;
&lt;br /&gt;
전기소설집 및 문언소설집이 16세기 후반에 간행되며 독자층이 확대됨. 이들이 전기소설의 유행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 &amp;lt;전등신화&amp;gt;, &amp;lt;전등신화구해&amp;gt;, &amp;lt;금오신화&amp;gt;, &amp;lt;전등여화&amp;gt;, &amp;lt;화영집&amp;gt;&lt;br /&gt;
&lt;br /&gt;
소설을 애독하던 상층 독자가 지방의 수령으로 있는 동안 휘하의 인력을 동원해 소설을 간행하는 것이 흔했음. &amp;lt;전등신화구해&amp;gt;가 원주 등지에서 재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존재. &amp;lt;오륜전전&amp;gt;, &amp;lt;왕십붕기우기&amp;gt; 등 16세기에 중국 희곡이 여럿 들어와 그중 일부는 한문문언소설로 개작 번역되며, 중국 소설의 유입이 가속화됨.&lt;br /&gt;
&lt;br /&gt;
이때까지 소설의 독자는 대부분 한문에 능한 상층 사대부와 한문 및 백화에 능한 일부 중인층(역관)이었음. 16세기 상층 사회에서 유행한 소설은 일부 하층 사회로까지 파급됨. 일부 한문 소설과 희곡이 국문으로 번역되어 읽히기도 함; &amp;lt;오륜전전&amp;gt; 서문 “여항의 무식한 이들이 언문을 익혀 노인들이 전하는 말을 베껴 적어서는 밤낮으로 이야기”&lt;br /&gt;
&lt;br /&gt;
16세기의 국문 번역은 후대의 번역과 달리 한문소설 혹은 중국 희곡의 줄거리가 구연되어 이를 다시 국문으로 옮겨 적는 방식으로 번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음; &amp;lt;오륜전전&amp;gt; 서문, &amp;lt;왕시봉전&amp;gt; 문체, &amp;lt;설공찬전&amp;gt;의 국문 번역 제목 ‘설공찬이’&lt;br /&gt;
&lt;br /&gt;
구비적 성격으로 인해 문체가 세련되지 못하고 서사 전개상 여러 착종이 보인다는 점에서 당대 국문소설의 수준은 높지 않음. 그러나 초기 국문소설의 존재가 당시 상층 여성과 일부 하층 사이에서 소설 수요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줌.&lt;br /&gt;
&lt;br /&gt;
중국 희곡을 개작 번역한 국문소설이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함. 16세기 초까지 거의 유일한 소설 형식이었던 전기소설은 문인 지식층 외에는 온전히 향유하기 어려운 형태임. 따라서 '''국문으로 번역되어도 전기소설 형식 자체가 갖는 ‘배타성’은 남아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함.&lt;br /&gt;
&lt;br /&gt;
새로운 독자층의 소설 수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전기소설의 본원적 형식과 새로운 독자층의 요구 사이의 괴리로 중국 희곡에 관심이 생김. 악인의 음모와 선인의 고난이 그려지는 권선징악의 구도, 남녀 주인공이 겪는 혼사 장애 등 극적인 흥미 요소가 다분한 장편희곡을 단편소설로 바꿈으로써 새로운 소설 형식을 만들어내는데에 기반이 됨; &amp;lt;형차기&amp;gt;&lt;br /&gt;
&lt;br /&gt;
새로운 독자층이 다음 시기 ‘초기 장편소설’의 독자층으로 이어져야 함. 그러나 다음 시기 독자들이 애독하는 소설의 성격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문제가 발생. 가장 큰 차이는 작품의 분량임. 초기 장편소설 중 가장 짧은 &amp;lt;구운몽&amp;gt;도 통상적인 단편소설의 10배에서 20배 분량에 해당함. 이는 초기 국문소설을 향유하던 것처럼 여럿이 모여 한자리에서 읽거나 들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님.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설 읽기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짐; &amp;lt;소현성록&amp;gt;, &amp;lt;삼국지연의&amp;gt;, &amp;lt;봉신연의&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17세기 후반의 사회 경제 상황''' ===&lt;br /&gt;
17세기에 유통된 국내외 장편소설의 주된 독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상층 사대부와 사대부가의 여성이었음.&lt;br /&gt;
김만중의 언급에 따르면 &amp;lt;삼국지연의&amp;gt;는 사대부 청년층 사이에서 역사서 대용으로 읽혔음.&lt;br /&gt;
&lt;br /&gt;
17세기 소설 향유에 관한 기록이 부족하지만 상층 사대부의 문집 속에 들어가 전해진 것은 대부분 상층 사대부들의 모친이 소설의 애독자였기 때문임; 김만중, 조성기, 조태억, 권섭의 모친.&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의 독자층이 모든 연령층의 사대부와 중년층 이상의 사대부가 여성으로 넓어졌으나 이는 서울 중심의 현상이었음. 최남선이 &amp;lt;매일신보&amp;gt;에 남긴 기록에 의하면 세책가가 본래 서울에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lt;br /&gt;
&lt;br /&gt;
장편소설이 극성기에 도달했던 18세기 후반 이후에도 상업적인 세책가가 서울에만 존재했다면, 17세기 후반에 서울 외의 지역에서 장편소설이 읽히기는 어려움. 따라서 장편소설 향유의 사회적 토대에 대한 접근은 서울의 상층 사대부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마땅함.&lt;br /&gt;
&lt;br /&gt;
서울의 인구 변화를 보면,17세기 중반까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여파로 인구가 줄고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음. 그러나 1669년 약 10년 사이에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함. 인구 증가의 원인으로는 서울 인근 지역이 서울로 편입된 점과 전란 후의 복구 사업이 마무리되며 출생 증가 혹은 대규모 인구 유입이 있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amp;lt;구운몽&amp;gt;은 초기 장편소설 중 창작 연대가 뚜렷한 작품으로, 1687년에서 1688년 사이에 창작되었음. 명말청초에 유행한 통속염정소설과 재자가인소설을 의식하고 지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서울에서 소설이 1669년부터 1688년 사이에 대중적 독서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음; 인선왕후 장씨와 숙명공주가 &amp;lt;수호전&amp;gt;을 돌려읽은 시기, 조성기가 모친을 위해 소설을 창작한 시기, 조태억의 모친 남원 윤씨가 &amp;lt;서주연의&amp;gt;를 필사한 시기가 겹침.&lt;br /&gt;
&lt;br /&gt;
앞서 1669년 비약적인 인구 성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amp;lt;조선왕조실록&amp;gt;에는 당대의 궁핍한 민생에 관한 기록이 많음. 기근과 역병으로 전국 인구의 1/5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상황이 처참했음을 알 수 있음.&lt;br /&gt;
&lt;br /&gt;
그러나 당대의 실록에서 궁가와 벌열가를 중심으로 한 상층의 사치 풍조에 관한 기록 역시 많음. 서울로 논의의 범위를 한정지어보면 상층이 누렸던 부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임.&lt;br /&gt;
&lt;br /&gt;
즉, 17세기 후반 조선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대다수의 하층민은 전란 이후 정체 혹은 심화되는 반면 소수 상층의 부는 늘어나는, 대비된 모습을 보임.&lt;br /&gt;
&lt;br /&gt;
&lt;br /&gt;
=== '''경화세족의 재산 축적 양상''' ===&lt;br /&gt;
&lt;br /&gt;
&lt;br /&gt;
=== ''''문화 사치품'으로서의 장편소설''' ===&lt;/div&gt;</summary>
		<author><name>Lpdj200619</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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