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우리말 사랑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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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강 우리말 사랑의 노래들 == 고려속요 대부분은 사랑을 노래하고 있음. 고려속요의 사랑에는 남녀간의 사랑, 임금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 등이 있음. 고려 속요는 사랑을 노래하는 방식이 다양함을 보여줌. 대부분은 사랑의 노래지만, <청산별곡>처럼 사랑의 노래가 아닌 것도 존재함. === 고려속요/속악가사라는 용어 === ‘속요(俗謠)’라는 말에서 ‘속’은 속되다라는 뜻임, 즉, ‘속요’는 속된 노래로 풀이 할 수 있음. 그러나 지배층의 관점에 따라 나뉜 기준인 ‘雅/俗’의 의미론적 대립을 고려한다면 고려속요의 ‘속’을 속되다가 아닌 ‘時俗’의 속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속요’는 시속의 노래라는 뜻이 되어 시대와 풍속이 좀 더 부각되는 효과를 가지게 됨. 즉, ‘고려속요’라는 용어의 ‘속’을 속되다, 비속하다라는 뜻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속’ 속에는 우리말과 민간이라는 언어와 공간에 대한 의식이 내포되어 있는 것임. 이 점에서 ‘속’은 ‘향(鄕)’이라는 개념과 일정하게 통한다 할 수 있음. 고려속요는 ‘속악가사’라고도 하는데, 속악의 가사라는 의미임. 고려시대 궁중 음악에는 1. 아악(雅樂): 송나라에서 들여온 대성악(大晟樂) 2. 당악(唐樂): 신라 시대부터 당나라에서 받아들인 음악, 대개 중국 궁정의 속악에 해당. -> 아악과 당악은 가사가 모두 한자임. 3. 속악(俗樂): 궁중 속악으로 쓰인 고려속요, 경기체가, 불가, 무가 등 -> 가사가 우리말임 이 있었음. 고려속요가 궁중 속악으로 쓰였기 때문에 고려속요를 속악가사라고도 부르지만, 속악가사에는 고려속요 외에 경기체가, 불가, 무가 등도 있었기 때문에 고려속요가 곧 속악가사는 아님. 고려속요가 속악가사로 사용되었다는 것에서 고려속요가 궁중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음. === 고려속요에 대한 개괄적 이해 === 고려속요는 대체로 민요가 궁중에 수용되어 변개, 재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사모곡>, <상저가> 처럼 민요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한 것도 있지만, <정과정>처럼 개인이 창작한 노래, 遊女와 같은 시정의 특정인이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노래도 있기 때문에 재고가 필요함. 고려속요는 하나의 연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여러 연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음. * 하나의 연: <정과정>, <이상곡>, <사모곡>, <처용가>, <상저가>, <유구곡>, <정읍사> * 여러 연: <가시리>, <서경별곡>, <정석가>, <쌍화점>, <만전춘별사>, <동동>, <청산별곡> 고려속요가 민요, 혹은 민간의 노래가 궁중에 수용되어 변개, 재편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대부분 여러 연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근거로 하고 있음. 따라서 여러 연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음. 이러한 노래들은 두 개 이상의 노래들을 섞어서 편집한 것 같은 느낌을 줌. 이를테면 한 작품의 어떤 연이 고려속요의 여러 곡에 보이는 경우가 있음. ex) <정과정>과 <만전춘별사>: 넋이라도 님은 한데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정과정) 넋이라도 님을 한데 녀닛 여겼더니 넋이라도 님을 한데 녀닛 여겼더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니시잇가 (만전춘별사) <서경별곡>과 <정석가>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 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년을 홀로 산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서경별곡)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 년을 홀로 산들 천 년을 홀로 산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정석가 6연) 이처럼 이 노래 저 노래의 어떤 부분을 가져와 편집한 결과 한 작품 속에 이질성이 존재하게 됨. <서경별곡>의 경우 세 연으로 구성된 부분이 각각 세 개의 노랫말이 합성된 것으로 볼 수 있음. ex) 서경별곡의 1연은 순종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3연은 떠나간 님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보여줌. 따라서 세 연을 유기적 통일성이 있는 것처럼 해석하면 해석에 무리가 생김. <만전춘별사>의 경우도 이러한 모습이 보임. 1연에서는 ‘정’이라는 한 단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말인데, 2연은 한자어가 많고, 1연과 언어적 지향이 다름. 특히 ‘경경(耿耿)’, ‘소춘풍(笑春風)’, ‘고침(孤枕)’과 같은 하층민이 알기 어려운 말, ‘서창(西窓)’, ‘도화(桃花)’, ‘발(發)하도다’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민중이 2연을 창작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 -> 모든 고려속요가 민요에서 왔다고 보기에 어려움이 있는 이유. <만전춘별사>의 제1연과 달리 제2연은 규원시를 떠올리게 하며, 상당한 지식이 있는 식자가 아니면 짓기 어려운 노랫말로 보임. <서경별곡>, <만전춘별사>, <가시리>, <정석가>, <동동>, <청산별곡>의 노랫말이 모두 민요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지만, 무리가 있는 견해임. ex) <정석가> 옥(玉)으로 련(蓮)ㅅ고즐 사교이다. 옥(玉)으로 련(蓮)ㅅ고즐 사교이다. 바회 우희 졉듀(接柱)ᄒᆞ요이다. 그 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 그 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 유덕(有德)ᄒᆞ신 님 여ᄒᆡᄋᆞ와지이다 (3연) 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 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 텰슈산(鐵樹山)애 노호이다. 그 쇠 텰초(鐵草)를 머거아 그 쇠 텰초(鐵草)를 머거아 유덕(有德)ᄒᆞ신 님 여ᄒᆡᄋᆞ와지이다. (5연) 정석가 3연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나야 임과 이별하겠다는 노랫말로, 절대 임과 이별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음. 5연 역시 비유는 다르지만 말하고자 한 바는 3연과 동일함. 제3연의 옥으로 연꽃을 새긴다는 발상은 상층의 감수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며, 5연의 ‘철수산’, ‘철초’ 같은 말 역시 민중이 쓰는 말이 아님. 민요는 민중의 언어와 민중적 감수성을 담고 있기 마련인데, <정석가>의 3연과 5연은 민요에서 유래했다고 보기 어려움. 구사된 어휘나 감수성을 볼 때 특정한 개인이 창작해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로 추정됨.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라고 모두 민요는 아니며, 특정한 개인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집단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노래만이 민요라고 칭해질 수 있음. 여러 연으로 구성된 고려속요의 내용적 불통일성, 내적모순이 야기된 이유로는 1. 여러 노래를 채록해 편집했기 때문 <nowiki>:</nowiki> ex) <서경별곡> 2. 원노래의 의미와 편집된 작품에 부회(附會: 억지로 갖다 붙임)된 의미 사이의 괴리 <nowiki>:</nowiki> ex)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ᄇᆞ리고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성ᄃᆡ) 날러는 엇디 살라 ᄒᆞ고 ᄇᆞ리고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성ᄃᆡ) 잡ᄉᆞ와 두어리마ᄂᆞᄂᆞᆫ 선ᄒᆞ면 아니 올셰라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성ᄃᆡ) 셜온 님 보내ᄋᆞᆸ노니 나ᄂᆞᆫ 가시ᄂᆞᆫ ᄃᆞᆺ 도셔 오쇼셔 나ᄂᆞᆫ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성ᄃᆡ) 가시리가 속악가사로 만들어지면서 원래 없던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성ᄃᆡ)’라는 태평성대를 찬미하는 후렴구가 첨가되면서 원노래와 맞지 않는 의미 지향이 덧씌워지게 됨. 그래서 읽기에 따라서 충신연주지사로 읽을 수도 있는 부회가 생겨나게 됨. <만전춘별사> 역시 원노래는 남녀상열지사이지만, 속악가사로 만들어지면서 “아소님하 원ᄃᆡ평ᄉᆡᆼ(遠代平生)애 여힐ᄉᆞᆯ 모ᄅᆞᄋᆞᆸ새”라는 말이 덧붙여져 충신연주지사의 의미가 부회되고 있음. === <정과정>, <서경별곡>, <정석가>, <쌍화점> === 고려속요 가운데 사랑의 노래로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정과정>, <서경별곡>, <정석가>, <쌍화점>, <가시리>, <만전춘별사>, <동동> 일곱 작품임. ==== <정과정> ==== <정과정>의 작가는 정서이며, 유배지에서 지어진 작품임. 한국문학사에서 유배 문학의 효시가 되는 작품임. 이 작품은 ‘내 님믈 그리ᅀᆞ와 우니다니 山 졉도ᇰ새 난 이슷ᄒᆞ요ᅌᅵ다’로 시작하는데, 서든 스타트(sudden start: 뜸을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수법)가 주목됨. 독자는 느닷없다는 느낌과 함께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작자는 이러한 효과를 의도하였을 것. <정과정>의 첫 2행은 묘미 있는 표현이 눈에 띈다 할 수 있음. 그런데 ‘난 山 졉도ᇰ새 이슷ᄒᆞ요ᅌᅵ다’가 아닌 ‘山 졉도ᇰ새 난 이슷ᄒᆞ요ᅌᅵ다’라고 한 점에서 노래의 작자가 우리말 통사 구조에 대한 예민한 고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산 접동새라는 사물을 한층 부각시켰으며, 이를 통해 ‘늘 울고 있는 나’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음. 즉, 작자의 우리말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볼 수 있는 것. <정과정>의 서정 자아는 님에게 버림받았지만 그럼에도 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절한 사랑노래의 외관을 취하고 있음. 그러나 역사적, 전기적 맥락에서 본다면 군신의 관계가 남녀의 관계로 치환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8세기의 <원가> 역시 군신 관계를 노래하지만, 서정 화자가 여자가 아니고, 남녀 관계로 치환되어 있지도 않음. 즉, '''군신 관계가 남녀관계로 치환되어 있고, 작자가 확인되는 최초의 노래는 <정과정>'''이라 할 수 있음. 이 점에서 <정과정>이 ‘충신연주지사’의 시원됨. ==== <서경별곡> ==== 西京이 아즐가 西京이 셔울히 마르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닷곤 ᄃᆡ 아즐가 닷곤 ᄃᆡ 쇼셩경 고ᄋᆈ마른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여ᄒᆡ므론 아즐가 여ᄒᆡ므론 질삼 뵈 ᄇᆞ리시고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괴시란ᄃᆡ 아즐가 괴시란ᄃᆡ 우러곰 좃니노ᅌᅵ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구스리 아즐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긴히ᄯᆞᆫ 아즐가 긴힛ᄯᆞᆫ 그치리ᅌᅵᆺ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즈믄 ᄒᆡ를 아즐가 즈믄 ᄒᆡ를 외오곰 녀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信잇ᄃᆞᆫ 아즐가 信잇ᄃᆞᆫ 그츠리ᅌᅵᆺ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大同江 아즐가 大同江 너븐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내여 아즐가 ᄇᆡ 내여 노ᄒᆞᆫ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녈 ᄇᆡ예 아즐가 녈 ᄇᆡ예 연즌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大同江 아즐가 大同江 거넌편 고즐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타들면 아즐가 ᄇᆡ 타들면 것고리이다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은 세 개의 연이 유기적이거나 통일적이지 않고 제각각임. 1연의 화자는 서경에 사는 여인이며, 임이 나를 사랑해준다면 내 생활을 버리고서라도 님을 따르겠다는 순종적 태도를 보이고 있음. 아마도 서경이라는 도회에서 불리던 노래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추정됨. 2연에서는 끈으로 꿴 구슬의 이미지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민중적 감수성과는 거리가 멂. 이어서 제시되는 절개를 지키며 ‘천년을 외로이 살아가는 여성’의 이미지 역시 민중 세계의 감수성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임. 즉, 2연은 특정한 개인에 의해 창작된 가요일 가능성이 큼. 제3연의 여성화자는 바람기 많은 남성에 대한 불신을 노래하며 1연과 2연의 여성화자처럼 순종적이거나 교양이 있지는 않지만, 솔직하고 활달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임. <서경별곡>의 1연은 서경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3연은 대동강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음. 두 배경 모두 도회적 공간을 표상하고 있다할 수 있는데, 1, 3연을 통해 고려 여인의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읽을 수 있음. ==== <정석가> ==== 딩아 돌하 당금(當今)에 계샹이다. 딩아 돌하 당금(當今)에 계샹이다. 션왕셩ᄃᆡ(先王聖代)예 노니ᄋᆞ와지이다.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ᄂᆞᆫ[1]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ᄂᆞᆫ 구은 밤 닷 되를 심고이다.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유덕(有德)ᄒᆞ신 님믈 여ᄒᆡᄋᆞ와지이다. 옥(玉)으로 련(蓮)ㅅ고즐 사교이다. 옥(玉)으로 련(蓮)ㅅ고즐 사교이다. 바회 우희 졉듀(接柱)ᄒᆞ요이다. 그 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 그 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 유덕(有德)ᄒᆞ신 님 여ᄒᆡᄋᆞ와지이다. 므쇠로 텰릭을 ᄆᆞᆯ아 나ᄂᆞᆫ 므쇠로 텰릭을 ᄆᆞᆯ아 나ᄂᆞᆫ 텰ᄉᆞ(鐵絲)로 주롬 바고이다. 그 오시 다 헐어시아 그 오시 다 헐어시아 유덕(有德)ᄒᆞ신 님 여ᄒᆡᄋᆞ와지이다. 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 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 텰슈산(鐵樹山)[2]애 노호이다. 그 쇠 텰초(鐵草)를 머거아 그 쇠 텰초(鐵草)를 머거아 유덕(有德)ᄒᆞ신 님 여ᄒᆡᄋᆞ와지이다.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 즈믄 ᄒᆡᄅᆞᆯ 외오곰[3] 녀신ᄃᆞᆯ 즈믄 ᄒᆡᄅᆞᆯ 외오곰 녀신ᄃᆞᆯ 신(信)잇ᄃᆞᆫ 그츠리잇가. 정석가 3연과 5연에는 민중의 감수성과는 괴리되는 옥으로 연을 새긴다던가, 철수산과 철소라는 말이 나옴, 4연에서는 쇠로 철릭을 마름질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철릭은 무관의 공복임.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정석가의 3, 4, 5연의 화자는 그 감수성이나 사용하고 있는 어휘로 볼 때 교양이 있는 여성으로 추정되고, 이 여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과 헤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음. 그런데 정석가의 1연에 “션왕셩ᄃᆡ(先王聖代)예 노니ᄋᆞ와지이다.”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2, 3, 4, 5연의 끝에 공통적으로 “유덕(有德)ᄒᆞ신 님 여ᄒᆡᄋᆞ와지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석가는 충신연주시자로서의 의미 지향이 강하게 부회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음. 이는 군신 관계가 남녀관계로 치환될 수 있던 것과 관련이 있음. <정석가> 뿐만 아니라 고려속요에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이 많은 것 역시 충신연주지사로서의 부회가 가능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음. ==== <쌍화점> ==== 雙花店에 雙花 사라 가고신ᄃᆡᆫ 回回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ᆷ미 이 店뎜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 三삼藏장寺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 그 뎔 社샤主쥬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뎔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上샹座좌ㅣ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ᄃᆡᆫ 우믓 龍룡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우물 밧ᄭᅴ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드레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숨 ᄑᆞᆯ 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ᄃᆡᆫ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집 밧ᄭᅴ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싀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쌍화점>은 <고려사> 악지에 충렬왕 때 지어진 노래로 밝혀져 있음. <고려사> 열전 <오잠전>에 더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는데, “(…) 남장별대라 칭하고 새로운 노래를 가르쳤는데, 그 가사에 이르기를, '삼장사에 등불켜러 갔더니(…)’, 또 다른 가사에서는 이르기를 ‘뱀이 용의 꼬리를 물고 (…)’” '남장(男粧)에게 가르친 새로운 노래' 중 하나가 '삼장사에 등불켜러 갔더니' 운운이라고 한 것이 쌍화점의 2연과 내용이 같음. <쌍화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三삼藏장寺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부터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라는 구절(자신의 불륜행위를 말함)까지의 화자,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앞의 화자의 행위를 부러워함)의 화자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임. 문제는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의 화자가 누군지이다. # 맨 앞의 화자와 동일한 화자로 보는 견해 # 두 번째 화자와 동일한 화자로 보는 견해 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화자가 맨 앞의 화자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임. 즉, 마지막 구절은 외관상 논평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제1화자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이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된 것임.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와 “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는 모두 남장별대의 제창으로 보임. 맨 마지막 구절은 전지적 시점을 취하고 있고, 당사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임. 이렇게 본다면 <쌍화점>은 남장별대의 한 기생이 독창으로 선창을 하고, 이어서 다른 여러 기생들이 제창으로 후창을 하는 방식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음. 그리고 제창으로 불린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와 “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는 원래 민간에는 없었지만 속악가사로 재편되는 과정에 덧붙은 것으로 여겨짐. <쌍화점>은 원 간섭기 고려 사회의 풍속과 세태, 특히 도시의 풍속과 세태를 보여주는 작품임. 지배층의 타락을 풍자하는 노래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이보다는 당시의 세태를 반영하여 자유 분방하고 문란한 당시의 성 풍속을 보여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임. 민간 가요가 속악가사로 편입되면서 이러한 남녀상열지사의 면모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음. 독특한 점은 다른 고려속요와 달린 남녀관계를 군신 관계처럼 보이도록 하는 시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임. ==== <청산별곡> ====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ᄒᆞ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ᄯᅩ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ᄅᆞ래 살어리랏다 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ᄅᆞ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ᄉᆞ미 지ᇝ대예 올아셔 ᄒᆡ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ᄇᆡ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ᄆᆡ와 잡ᄉᆞ와니 내 엇디 ᄒᆞ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은 1. 민요라는 견해 2. 고려 시대의 잦은 전란으로 유망하던 사람들의 괴로운 처지를 노래한 유망민의 노래라는 견해 3. 지식인이 창작한 술 노래 4. 실연한 사람의 노래 라는 견해가 제시되어 있음. <청산별곡>의 가사를 보면 일반 백성이 지을 수 없는, 식자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노래로 여겨짐. 특별한 사연이 있는 어떤 개인의 서정을 노래하는 작품임. 그러나 작품의 2, 4, 5연을 바탕으로 봤을 때 단순히 염세적 지식인의 술 노래는 아니라고 여겨짐.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1, 2행에서는 새에게 ‘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라고 말하고, 3, 4행에서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라고 말하고 있음. 이 연의 구조와 의미는 ‘울다’라는 동사와 ‘새’라는 명사가 동일하게 등장하는 점, 우는 새와 ‘우는 나’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과정>의 1, 2행과 흡사함. 이링공 뎌링공 ᄒᆞ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ᄯᅩ 엇디 호리라 제4연에서는 왕래할 사람이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있는 서정자아를 보여줌. 남들과 단절된 채 지내야 하는 존재 여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서정 자아는 ‘돌’에 맞아서 울고 있음. ‘돌’은 사람들의 비방이나 참소를 가리킨다고 여겨지는 상징물임. 이처럼 청산별곡의 제 2, 4, 5연을 유의해보면 이 노래의 서정 자아는 억울하게 참소를 받아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비탄한 심정으로 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 보임. 또 ‘청산’이나 ‘바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서정자아가 있는 곳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임. 그렇다면 청산별곡은 먼 곳으로 유배되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문신의 노래, 즉 유배 문학일 가능성이 높음. <청산별곡>은 언어 감각이나 심정을 풀어 나가는 수법을 볼 때 문학적 재능이 있는 문인이 지은 노래로 판단됨. 어려운 말이 별로 없고, 우리 말 구사가 물 흐르듯 유려하여 궁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간결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음. 고려속요의 문학사적 의의 고려속요에는 깊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노래도 있고, 임금을 향한 사랑을 노래한 것도 있고, 불륜, 사랑의 고통과 이별의 막막함을 노래한 것도 있으며, 불같은 사랑의 욕구를 노래한 것도 있음. 이처럼 우리문학사에서 사랑과 관련한 다양한 감정을 담은 노래들의 등장은 고려속요가 처음임. 또한 우리말의 서정적 표현력을 심화하고 확장한 의의가 있음. 향가에 이어 고려 속요는 우리말의 심미적 표현 가능성을 더 높이 구현하는 것에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음. === 고려속요 밖의 고려속요들 === 고려속요를 고려 시대 시속의 노래로 정의한다면, <악학궤범> 등에 실려 전하는 작품들로만 한정할 수는 없을 것. 현재 노랫말이 전해지지 않는 다양한 속요들이 존재했으리라 여겨짐. 이러한 점에서 현존하는 고려속요만으로 고려속요의 전반적 성격을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 고려속요는 사랑의 노래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현존하는 고려속요는 대부분 속악가사이고, 속악가사는 궁중의 필요에 따라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사랑노래가 선호되었다고 보임. 하지만 <고려사> 악지 등을 통해 짐작했을 때 실제 민간에서는 <금강성>, <장생포>, <서경>, <대동강> 같은 훨씬 다양한 노래들이 불렸을 것으로 여겨짐. * l 금강성: 이민족의 침략과 관련해 나라 사람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 * l 장생포: 왜구를 물리친 것을 기뻐해 군사들이 지었다는 노래 * l 서경, 대동강: 평양의 백성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 고려 말의 문인 익재 이제현과 급암 민사평이 민속의 노래를 한역하여 실어 놓은 <소악부>가 여러 편 남아있는데, 이를 통해 현존하지 않는 고려 노래를 짐작할 수 있음. ex) 지배층의 수탈로 인한 백성의 고통을 노래한 작품, 효를 노래한 작품, 행역 나간 남편의 귀한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을 노래한 작품 등. - 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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