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해동도가와 새로운 질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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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사에서 본 16세기 === 16세기는 여러 차례의 사화가 일어나 선비들이 벼슬을 포기하고 산야에서 성리학 연구에 잠심하는 경우가 많았음. (ex) 이황, 서경덕, 조식 등) -> 이를 통해 조선 성리학이 심화, 발전됨. 한편 어떤 선비들은 현실에 불만을 품어 도가로 들어가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선풍’이 대두됨. 이때의 도가는 노장사상이 아닌 해동도가. 해동돠는 새로운 관점과 문제의식, 새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어 문학사에서도 중요함. * 해동도가: ‘내단’에 집중하는 수련 도교에 근간을 두고 선술을 추구하는 도가. 도맥이 중국 당나라 도사인 종리권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도 있고, 도맥이 단군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관점도 있음. 이를 보면 해동도가가 중국도가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대로의 독자성을 갖는 사상이라 교의라고 할 수 있음. 16~17세기 문학사의 주요한 작품과 인물들이 해동도가와 관련을 맺고 있음. 17세기 초의 문헌인 <해동전도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해동도가의 원조는 김시습. 김시습은 내단 수련과 관련한 글을 남겼고, <취유부벽정기>에서 단군을 선인으로 언급하고 있음. <해동전도록>에서 언급하기로는, 김시습이 <천진검법>, <연마진결>을 홍유손에게 전하고, <옥함기>와 <내단요법>을 정희량에게 전했으며, <참동계>와 <용호비지>를 윤군평에게 전했다고 하였음. 16세기 중엽 윤춘년이 지은 <매원당선생전>에서는, 세상에 김시습이 “환술이 ㅁ낳아 맹호를 부리고, 술을 피로 변화시키며, 기운을 토하여 무지개를 만들고, 오백 나한을 불러낸다고 하는데, 다 믿을 수 없다.”라고 언급되었음. ->이러한 언급을 보면 당시 민중 사이에서 김시습이 도교의 방술에 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음. 그러나 이러한 말들이나 <해동전도록>에 언급된 김시습이 도를 전했다~하는 말은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임. 왜냐하면 김시습은 도교의 방술에 몹시 비판적이었고, 신선이 되려는 노력을 부질 없는 일로 여겼기 때문. 그러나 단군을 선인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음. 즉, 김시습은 도교가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별 효용이 없다고 여겼지만, 양생에는 도움이 된다고 여겨 그 수련법에는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임. 조선 시대 도인들은 단군으로부터 해동도가의 도맥이 이어져 나왔고, 김시습을 이 도맥의 계승자로 여겼음. 그리고 김시습으로부터 조선의 도맥이 다시금 쭉 이어지는 것으로 상정하였음. 그러나 이는 ‘상상된 사실‘. (최치원을 도맥에 포함한 것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 민간의 도인들이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 따라서 해동도가의 담론을 살필 때 이를 주의해서 살펴야함. <해동전도록>에 따르면 김시습이 홍유손에게 도를 전했다고 하였는데, 홍유손은 세종 13년(1431)에 태어나 중종 24년(1529)에 세상을 떠났음. 원래 향리 집안 출신인데, 나중에 향리에서 풀려나 김종직의 문인이 되었고, 무오사화때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반정으로 인해 풀려났음. “단군이 제위에 오른 무진년보다 앞서 태어나 / 기준이 마한을 이름한 걸 목도했도라. / 영랑과 더불어 용궁에서 노닐다가 / 다시 봄술에 이끌려 인간 세상에 머무노라.” - <소총유고> 중 금강산에 적다. ㅡ> 시에 단군과 영랑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영랑은 신라 4선 중 한 사람. 작자가 스스로를 불사의 신선으로 여기며, 단군, 영랑과 같은 옛 선인을 소환하고 있음. 조선 때 도가는 이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음. 그러나 16세기 사상사에서 도가의 사상 공간은 각별한 주목을 요함. -> 도가의 선술을 추구한 사람들이 주변부에 속하거나, 사회적으로 불우하거나,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반/비’ 지배 사상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 성리학이 양지의 사상이라면, 도가는 음지의 사상이라 할 수 있음. 따라서 이들의 문학을 통해 주류 세계의 인물과 다른 삶을 만날 수 있고, 기존의 사상사와 문학사를 다른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함.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16세기 도가 계열의 인물로 ‘북창 정렴’과 ‘남궁두’를 뽑을 수 있음. 정렴: 연산군 12년(1506)에 태어나 명종 4년(1549)에 세상을 뜸. 정렴의 동생인 정작도 선술을 추구하였음. 정렴은 <용호비결>이라는 도가적 수련법의 요체를 적은 책을 남겼음. 이 두 사람은 유가에서 도교로 들어간 경우에 해당. 남궁두: 중종 21년(1526)에 태어나 17세기 초 광해군 연간까지 생존한 전라북도 임피 출신의 도인. 1609년 부안에 머물고 있던 허균을 찾아가 <황정경> 등 도가 경전의 심오한 뜻을 전수하고, 자신이 왜 도가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어떤 수련의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이야기 해줌. 허균은 이 때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남궁선생전>이라는 소설을 썼음. 16~17세기 도가 사상사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문헌으로는 1. <해동전도록> 2. <청학집 3. <해동이적>이 있음. 이 세 책은 모두 17세기에 저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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