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강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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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는 언제, 왜 발생했나 === 판소리는 한 명의 창자(소리꾼)가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의 북장단에 맞추어 이야기를 창과 아니리로 엮어 연극적으로 공연하는 구전 서사시에 해당함. 구전서사시는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한국의 구전 서사시는 문학, 음악, 연극이 결합되어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면모를 지님.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전라도에서 <춘향가>를 듣고 한시로 기록해 놓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는 적어도 17세기 후반~18세기 초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임. 이 기록은 판소리에 대해 확인되는 최초의 기록. 17세기 후반 이래 조선에서는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회적으로 활기가 생기는 한편 계층분화를 낳았음. 상품화폐 경제의 진전은 미의 현실 인식 확대를 낳고, 자아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 작용을 함. 따라서 이는 새로운 서사에 대한 욕구의 기반이 됨. 기존의 구전설화나 국문소설로는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웠음. l 구전설화- 이전부터 전래된 내용에 의거하고 있어 17세기 후반 이래의 달라진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함. l 국문소설- 향촌의 일반 민중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내용이 일반 민중의 체질과 달라 오락적 욕구는 충족할 수 있더라도 인식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을 것. 이 시기에 야담이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17세기 후반 야담은 기존 설화 장르와는 달리 변화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담았음. 그러나 주로 도시의 시정 공간에서 향유되던 이야기가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라 일반 민중이 향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비교적 짧은 단형 서사에 해당하는 야담은 현실의 총체성에 대한 인식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음. è 이 시기 민중은 17세기 후반 이래 조성된 새로운 현실을 인식할 수 있고, 자기 인식에도 도움이 되면서 오락적 요소도 갖춘 새로운 서사문학을 필요로 함.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판소리가 성립되었고, 따라서 초창기의 판소리는 민중적 지향이 강할 수 밖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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