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김려와 이옥, 근대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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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품, 혹은 패사소품 === 명말청초 소주, 항주와 같은 강남의 도회를 중심으로 ‘소품’이 성행함. 소품: 짧은 형식의 산문, 인간의 삶과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리면서 작가의 감정이나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냄. 우리 문학사에서 소품이 문제되는 것은 영, 정조 때. 이 시기 활동한 젊은 문신들은 대개 소품에 대한 취향이 있었음. -> 정조가 문체반정을 통해 소품을 금한 이유. 조선에서는 소품과 패사라는 말을 결합해 패사소품이라는 말을 썼는데, 소품과 달리 패사소품은 소설과도 관계가 있게됨. (소설체의 산문 -> 패사소품체) 소품이나 패사소품은 정통 고문과는 다른 글쓰기. 고문: 유교(주자학)의 가치의식과 예교를 벗어나지 않으며 질서와 규범을 지킴 <-> 소품/패사소품: 질서나 규범의 이탈을 보여주기도 함. 따라서 주자학의 회복을 원했던 정조에게 소품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고, 금지하였던 것. 정조 때 이덕무, 박제가나 박지원 등이 문체와 관련하여 정조의 견책을 받긴 하였지만, 벼슬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음. 그러나 이옥은 이들과 달리 서얼이었기 때문에 문체반정의 희생양이 되어 큰 타격을 입었음. 이옥은 소품으로 문학 공부를 시작하였고, 김려는 이옥과 절친한 벗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패사소품에 심취한 문인이었음. 소품은 산문에 국한되어 쓰이는 말이지만, ‘소품적 취향’은 산문이 아니라 시에서도 발견가능 함. 두 사람은 소품체 한시를 구사한 시인으로도 주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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