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건국신화와 광개토왕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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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의 단군기록] ==== 고려 말의 단군 신화는 조선 초로 이어진다. 조선 조에 들어와 국가에서 단군의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를 통해 단군은 명실공히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 되고, 민족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됨. 또한 조선 전기에 편찬된 관찬 역사서인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모두 단군에서부터 역사 서술이 시작됨. 조선 초 단군 기록으로 주목되는 것은 ‘권근’의 응제시(應製時)이다. 응제시(應製時): 황제의 명에 응해서 지은 시, 권근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전후 세 차례 도합 24수의 시를 지어 황제에게 바침. 권근의 귀국 이후 간행됨. 응제시 중 <태고에 개벽한 동이의 임금>이 단군을 주제로 한 시임. 시의 내용(p.47)을 살펴보면 단군이 요와 함께 즉위했다는 것은 <제왕운기>를 따랐다 할 수 있으나, 신인(神人) 단군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음. 또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는 없는 인민이 추대해 임금이 되었다는 말이 추가되었음.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인민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오른 것은 ‘유교적 방향으로의 수정’임. 고려와 달리 조선은 유교를 이념적 기반으로 건국된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초래한 것. 신화는 이처럼 이념적, 역사적 요구에 따라 수정되거나 재창조된다. 단군은 원래 고조선의 창업왕이었으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와 우리 민족의 시조신으로 재창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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