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강 조선의 문호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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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국면 ==== 박지원의 9전 중 <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과 <봉산학자전(鳳山學者傳)>은 현전하지 않음. <역학대도전>은 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 이야기라는 뜻으로 당시 선비인 체하며 권세와 이익을 구하는 자를 풍자하기 위한 작품이고, <봉산학자전>은 봉산의 학자 이야기라는 뜻으로 황해도 봉산에 사는 농민이 글은 모르지만 행실이 훌륭하므로 ‘학자’라고 높인 것. 역학대도 같은 위선자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작품. 학계에서는 박지원의 현전 7전을 모두 소설로 보았지만, 7전 중 <마장전>, <예덕선생전>, <양반전>은 허구적 요소가 많은 소설이지만 이를 제외한 작품들은 ‘전’계이거나 전형적인 ‘전’에 해당. * <민옹전>, <김신선전>, <광문자전>은 소설적 요소가 있긴 하더라도 ‘전’의 요소가 훨씬 강함. (창의적 성격의 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 * <우상전>: 소설적 요소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전’ -> 박지원의 9전에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전에 해당하는 것도 있음. (9전이 모두 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은 아니다.) <마장전>은 당대 양반 사대부의 위선적인 벗 사귐을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고, <예덕선생전>은 엄항수라는 똥을 져 날라 생활하는 비천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그 사람됨이 고결함을 칭찬하고 있음. 이를 통해 고결한 척하지만 사실은 비천한 양반 사대부의 삶을 풍자하고 있음. -> 성동격서(聲東擊西) 하층민인 엄항수에 대한 도덕적 미화가 과장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민중의 입장이 아닌 사대부의 입장에서 엄향수를 그렸기 때문. 따라서 엄향수를 통해 실제 하층민 삶의 곤고함 등은 그려지지 못함. <김신선전>, <광문자전>, <우상전>, <민옹전>도 비슷한 한계를 지님. (비렁뱅이인 광문 삶의 곤공함, 김신선, 우상이 겪은 신분차별로 인한 불우감, 소외감 역시 그려내지 못함.) -> 박지원의 초기 전은 여항의 인물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표현됐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나, 하층민의 현실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보지는 못함. <양반전>은 양반 계급을 부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음. 그러나 <양반전>에 등장하는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사려는 서민부자’를 작자가 긍정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음. <양반전>을 통해 박지원이 풍자하고자 하는 것은 ‘사고팔 대상(양반 신분)’이 아닌 가난한 처지를 견디지 못해 ‘신분을 사고 파는 주인공 양반’임. 물론 작품 내에서 양반의 횡포가 풍자되고 있다는 점은 의의로 둘 수 있지만, 그 점으로 <양반전> 전체가 양반 신분을 부정하거나 풍자하고 있다고 확대해석 해서는 안됨. 있다 할 양반이란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고단한 삶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신분인데, 이를 넘보며 사고자 했던 부자 서민의 태도 역시 잘못된 것으로 풍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 즉, <양반전>에서는 양반 신분을 팔고자 하는 양반과 이를 사고자 하는 서민 부자를 모두 풍자하고 있는 것. “명분과 절개를 힘써 닦지 않고, 문벌과 지체를 밑천 삼아 조상의 덕을 판다면 장시치와 뭐가 다를까?” <양반전>의 서문, 이를 통해 박지원이 ‘양반과 장사치는 다른 존재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박지원의 초기 전들은 그가 벗 사귐의 대상을 하층 신분의 인물로까지 확대하고자 했음을 보여줌. 학계에서는 이를 박지원의 우정론이 갖는 진보적 면모로 해석하는 관점이 있음. 그러나 박지원은 여항의 인물에게 친근감과 관심을 보였으나, 이를 넘어서서 진정한 ‘벗’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음. -> 박지원은 평생 신분제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벗어나려는 사유를 하지는 못했음. 초기 9전에서 박지원이 주로 말하고자 한 바는 ‘양반의 위선과 허위에 대한 비판과 풍자’라고 할 수 있음. 이를 풍자한 이유는 양반 사대부 계급의 맹성(猛省: 깊은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서. -> 즉, 박지원의 작업은 그 정도가 신랄하다고 해도 양반 사대부로서의 자기 비판과 성찰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음. 이 과정에서 여항의 인물에 대한 긍정이 이루어진 점은 소득이지만, 여항인이나 하층민에 대한 대상화에서 탈피하지는 못했음. -> 이 점에서 초기 9전에 담긴 비판적, 개혁적 사고는 한계를 가짐. 박지원이 초기 9전에서 한 작업은 기존 질서의 해체, 파괴가 아닌 ‘기존 질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음. (신분제의 해체가 아닌 제 기능을 하는 신분제의 재구축) 실제로 박지원이 사귄 벗은 양반, 서얼이었고, 중인이나 서민은 없었음.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박지원의 ‘우정론’은 ‘썩은 선비’가 만연한 현실에 대한 환멸과 염증을 느껴 제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음. 노론 청류 집단은 당시 탕평책으로 인해 선비들이 올곧은 지조를 잃어버리고 권력에 아첨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음. 박지원 초기 전에 보이는 ‘우도’의 강조는 노론 청류 집단의 문제의식과 유관하다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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