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추방된 자의 글쓰기-정약용과 이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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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과 슬픔을 견디기 위한 것으로서의 시 === 이학규가 유배지에서 쓴 시중에 <장난삼아 배체(해학적인 시체)를 지어 고민을 내쫒다>라는 것이 있음. ->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학규는 고민을 내쫓기 위해 시를 창작하였음. 배민을 하기 위한 시에서 이학규는 종종 우리말 속담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정약용처럼 우리말을 한문으로 바꾸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말 속담’을 한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함. -> 이러한 시에서는 사대부적 자아가 아닌 민중적 자아, 타자의 자아가 관찰됨. 이학규는 유배지에서 극도의 번뇌를 겪었고, 매일 되풀이되는 무료한 시간을 견디는 것도 힘든 일이었음. 이러한 감정을 배민하기 위해 시를 창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안과 밖의 경계가 주목됨. (내면에 있는 번뇌를 잊기 위해 바깥이 호출되고 있으므로.) “시를 짓지 않으면 이리 기나긴 나날을 어찌 버티겠는가? (…) 심회를 스스로 억제하기 어려워질 때면 이리저리 시의 재료를 찾는다네. 이는 시를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 거기에 마음을 부쳐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려 하는 거라네. (…) 이렇게 본다면 내가 유배 와서 지은 시는 참으로 시를 좋아해서가 아니요, 마음을 부치는 시를 지어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려 한 것이라네.” -<어떤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 이학규에게 시는 시간을 견뎌내는 유일무이한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음 “심회가 험궂어지면 더욱 스스로 견디기 어려워 문득 두어편의 시를 지어 어떻게든 고민을 떨칩니다. 이른바 ‘억지로 웃는 건 즐거워서가 아니며 길게 노래하는 건 통곡하는 것보다 슬프다.’는 격입니다.” -> 이학규는 자아를 잊기 위해 시를 썼기 때문에 그 시에 시인의 자아가 담기기 보다는 다른 자아, 혹은 바깥의 세계가 시 안으로 밀려들어오곤 했음. 이학규의 시에서 발견되는 민중적, 타자적 자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포착된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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