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김려와 이옥, 근대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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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 === 성균관 시절 이옥은 문예적 가치가 높은 참신한 글을 많이 썼는데, <이언> 서문인 일난(一难), 이난, 삼난 세 편이 근대적 지향을 뚜렷히 보여줌. <이언>은 우리말 노래, 조선 노래라는 뜻으로 아조(바른곡조) 17수, 염조(부염한 곡저) 18수, 탕조(방탕한 곡조) 15수, 비조(원망하는 곡조) 16수 이렇게 정조를 달리하는 66수의 시가 실려 있음. 그리고 이 시들의 앞 부분에 일난, 이난, 삼난 이라는 서문이 붙어 있는 것. 난은 힐난하다라는 뜻으로 혹자의 힐난에 대해 작자가 해명하는 방식이라 이러한 제목이 붙은 것. -> 이는 <이언>의 시가 세간의 반발과 의혹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 작자가 미리 자기 변론을 한 것으로 여겨짐. 이옥은 <시경>의 국풍을 근거로 하며 <이언>의 시를 옹호하고 있음. <일난> <nowiki>:</nowiki> 혹자는 작자가 어떤 존재인지 묻고, 이옥은 “작자란 천지 만물의 통역자”라고 말함. 즉, 작자는 세계를 표현하는 매개자라는 뜻. 또 만물의 개별성과 차이에서 ‘개성’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고 있음. “어찌하여 대청 건륜 연간에 태어나 조선 땅 한양성에 살면서 감히 짧은 목을 늘어뜨리고 가는 눈을 부릅뜨고서 망령되이 국풍, 악부, 사곡의 작자를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조선 땅에 살면 국풍, 악부, 사곡(중국 작품)이 아닌 우리 작품을 써야 한다는 주장. 이옥은 작자는 자신이 속한 시공간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시공간과 작자는 본질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고, 작자는 세계의 통역자로서 세계를 충실히 표현해야 하기 때문임. <이난> <nowiki>:</nowiki> 혹자(예교주의자)는 <이언>에서 왜 여자만 노래했는가?라고 질문하고, 이옥은 “남녀의 정만큼 진실한 것은 없으며, 이야말로 거짓되지 않고 진실한 정“이라고 답변함. <금병매>, <육포단>처럼 음탕한 문학도 남녀의 진실한 감정을 그린 것이기 떄문에 보이기 따라 긍정할 수 있다 함. <삼난> <nowiki>:</nowiki> 혹자는 <이언>이 향명(우리말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힐난하고, 이옥은 “나는 내 이름을 이름으로 하고, 내 자를 자로 하고 있다“라고 답변함. ‘나’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자, 선언. 또 한자어와 우리말은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음. 따라서 우리 말을 버리고 중국인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선언도 함. 동시대의 박제가가 우리 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쓰자는 주장을 한 것과는 상반되는 주장. 이옥은 이러한 이유로 우리말로 시를 써야 옳다고 주장함. “우리가 어찌하여 반드시 우리의 명칭을 버리고 저들의 명칭을 따라야 하겠는가? 저들은 어찌하여 그 명칭을 버리고 우리의 명칭을 따르지 않는단 말인가?” ㅡ> ‘언어성 주체성’에 대한 자각. 이옥은 중국인은 중국의 언어를, 조선인은 조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이언>의 향명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음. <삼난>은 전근대적 틀을 벗어나 근대적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음. 시공간의 개별성이나, 향명, 속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정약용, 이학규, 박지원에게서도 발견되지만, 이들과 달리 이옥은 인식을 전면적으로 이론화하여 선언하는 것까지 이르렀음. 이러한 점에서 <삼난>은 조선 문학의 새로운 창작 방법, 미증유의 새로운 노선을 천명한 비평문이라 할 수 있음. <삼난> 속 이옥의 주장이 심화되면 국문시의 창작이 정당화 됨. 즉, <삼난>의 이론적 귀결은 국문시 창작이라고 여겨짐. 하지만 국문시 창작은 실제로 실현되지는 못함. <이언>은 우리말 노래라는 뜻을 가졌지만 한시로 창작되었고, 이옥 본인도 국문시를 창작하지는 않았음. 이 점에서 <이언>은 한문학 내부의 혁신에 불과할 뿐, 한문학을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가짐. 하지만 <이언>은 국문시 창작의 문턱에 이르러있고, 근대성을 선취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음. <이언> 아조 중의 한 수 “어려서 익힌 궁체 글씨 / 이응 자가 약간 각이 져 있네. / 시부모가 글씨 보고 기뻐하시며 / 언문 여제학이라 하시네” ㅡ> 궁체, 이응, 언문 여제학은 모두 우리말. <이언>의 시들은 정치적 의식이나 사회적 의식 보다 세태적이고 풍속적임. 또한 여성의 모습이 대상화되어 있음. 이옥의 여성에 대한 의식은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음. <nowiki>*</nowiki>연객 허필의 국문시 이덕무의 <이목구심서> “어떤 사람이 관아재 조영석이 그린 동국 풍속도를 수집해서 그대로 베낀 것이 70여 첩이나 되었는데 허필이 이 그림들을 국문으로 평했다.” ㅡ> 허필은 조영성의 그림 70여점에 국문으로 제화시를 썼음. (현전하지 않음.) 이덕무는 <이목구심서>에 허필의 국문시를 한문으로 번역해서 실어놓음. 허필은 이옥과 마찬가지로 당색이 소북이었음. 이옥이 당색이 같은 허필의 국문시를 접했을 수도 있음. 마무리 이옥과 김려는 소품체를 밀고 나가 조선의 다른 작가들이 이르지 못한 경지를 보여줌. 이를 통해 근대성을 선취하고 있다고 보임. - 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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