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해동도가와 새로운 질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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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만종의 저술과 그 지향 === 홍만종은 31살 때인 1673년 <소화시평>이라는 시화집을 썼으며 49세때 다시 <시평보유>이라는 시화집을 썼음. 59세 때 옛 문헌에 수록된 시화들을 모아 <시화총림>이라는 책을 편찬하였음. ->이 책들은 홍만종의 시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민족문화유산 정리에 관심을 가졌던 홍만종의 고전학자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게 해줌. 홍만종의 36세 때 <순오지>를 썼는데, 순은 10을, 오는 5를 뜻함. 그래서 <순오지>는 15일 동안 쓴 글이라는 뜻이 됨. 여름에 장맛비가 내릴 때 홍만종이 15일만에 써낸 책임. 이 책은 4가지가 주목되는데, 1. 단군을 우리 역사의 출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nowiki>:</nowiki>24살에 집필했던 <해동이적>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던 사고임. 2. 자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적극적 긍정이 보인다는 점 3. 자국 어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게 나타난다는 점 <nowiki>:</nowiki>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조위한의 <유민탄> 등 10편의 가사를 소개하고 그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함. 또, 우리말 속담을 소중히 여겨 140여개를 기록하였음. ㅡ> 18세기 이후 민간 속담을 기록하는 문헌들이 나타나지만, 홍만종의 이 작업이 가장 이른시기의 작업으로 평가됨. 4. 유교를 절대화하는 관점에서 탈피함 <nowiki>:</nowiki> 유불도 삼교 회통이 제시되어 있으며, 특히 도가 사상이 많이 나타남. ㅡ> <순오지>는 이처럼 문학사적, 사상사적 의의가 아주 큰 책이라고 할 수 있음. 저술 연도가 미상이고, 현전하지는 않지만, <순오지> 이전에 <동국악보>라는 책을 엮기도 하였음. 이 책은 <역대가>, <권선지로가>, <만분가>, <면앙정가>, <관동별곡> 등 가사 10편을 수록하고 그에 대한 비평을 달아놓은 책으로 추정됨. 이 비평은 <순오지>에 그대로 옮겨져 있음. 홍만종의 63세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술한 <동국역대총목>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함. 이 책에서도 역시 단군이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나타나있음. 20대에 저술한 <해동이적>에서 단군을 해동선파의 신원으로 간주한 후, 이후 쓰여진<순오지>, <동국역대총목>에서도 단군이 우리 역사의 출발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음. 이외에도 민간의 웃기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소화집인 <명엽지해>, <고금소총>, <속고금소총>을 엮기도 하였음. <명엽지해>: 책력에 적은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 마을 노인이 들려준 소화를 적어놓은 것. 조선 초 강희맹의 <촌담해이>와 연결된다 할 수 있음. 또 시조 가집인 <청구영언>과 <이원신보>를 엮기도 하였음. 청구는 우리나라를, 영언은 말을 길게 한다, 즉 노래를 가리킴. 그래서 청구영언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라 할 수 있음. 청구영언이라는 명칭의 시조 가집이 1728년 가객 김천택에 의해 엮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천택은 홍만종이 처음 엮은 <청구영언>에 여항 천류의 시조와 사설시조를 보태어 곡조별로 분류하는 증보작업을 꾀한 것으로 보임. -> 따라서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 가집을 처음 편찬한 사람은 홍만종으로 보아야 옳을 듯 “입에서 나온 것이 소리가 되고, 소리를 조절한 것이 말이 되며, 말을 길게 한 것이 노래가 된다. 노래는 가슴속의 답답한 것을 쏟아 내어 마음을 형용한 것이다. 무릇 사람은 기쁘거나 화나거나 슬프거나 무료하거나 불평스런 마음을 모두 노래로 푼다. 그러니 사람의 뜻과 기운을 선양할 수 있고 정신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군자는 노래를 취한다.” -<청구영언> 서 ㅡ> 이 서문은 우리말 노래의 고유한 의의를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있어서 주목됨. 자국어 시가에 대한 정당한 의미 부여라 할 수 있음. 홍만종은 자국어와 자국 문화를 중시하여 속담을 채록하거나, 민간 설화를 채집하거나, 노래를 수집하기도 하였음. 또, 주체적인 시각으로 (단군이 역사의 시조) 자국 역사를 서술하기도 하고, 옛 문헌에 전하는 시화를 모아 편찬하기도 하였음. -> 홍만종의 이러한 작업을 뒷받침하는 사상은 ‘해동도가’ 사상이라 할 수 있음. 해동도가 사상은 민중과, 토풍과 친화적임. -> 홍만종은 다른 지식인들과 다르게 자국의 언어, 문자, 문화, 역사에 대해 긍정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자 하였음. 그러나 홍만종이 모화주의 / 화이론에서 완벽히 벗어난 것은 아님. 홍만종의 저술 중 <소화시평>을 보면 ‘小华’(작은 중화)가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말임. -> 소중화주의를 내포하고 있음. 즉, 홍만종에게 여러 진보적인 면모가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함. 그렇지만 17세기 후반에 해동도가 사상에 힘입어 홍만종이 주체적, 민중적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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