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신라의 문호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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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산비명과 최치원의 문인적 자의식 === 사산비명에서 문학사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사산비명의 여기저기에 문인으로서 최치원의 자의식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임.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과 남과는 다른 창의적인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두드러짐. Ex) <지증대사비명> <nowiki>:</nowiki> “지증대사 비문을 쓰기 위해 기존의 비문들을 검토해 보니 ‘무거무래(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 ‘불생불멸(태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와 같은 진부한 말 일색이고, 새로운 뜻이 없다.” ㅡ> 최치원은 이 비명을 쓰는 데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 과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임. 최치원은 이 글을 쓰는 데 8년이 걸렸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스스로를 문인이라고 자부하는 최치원의 문인적 자의식이 확인됨''.'' (?) <낭혜화상비명> <nowiki>:</nowiki> “중국에 유학한 것은 대사와 내가 모두 같이 하였는데, 누구는 스승이 되고, 누구는 글을 짓는가? 아마 심학자는 높고, 구학자는 수고로운 것인가. (…) 그런데 심학자는 덕을 세우고 구학자는 말을 세우니, 덕이라는 것은 혹 말에 의지해야 가히 일컬어질 수 있으며, 말이란 것은 혹 덕에 기대어야 썩지 않고 오래도록 전할 것이다. 가히 일컬어질 수 있다면 마음이 능히 멀리 뒷사람에게 보일 것이며, 썩지 않고 오래도록 전한다면 말 또한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 가히 할 만한 일을 가히 할 만할 때에 하니, 다시금 어찌 글 짓는 일을 굳게 사양하겠는가?” ㅡ> 심학자는 마음을 닦는 학자라는 뜻으로 승려를 칭함. 구학자는 언어 행위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문인을 뜻함. 승려와 문인을 대등하게 놓으며 문인의 창작 행위에 각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 =>최치원은 남과 다른 창의적인 글을 쓰겠다는 마음과, 불후의 문장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음. 훌륭한 고승들의 비문을 씀으로써 후대까지 자신을 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 이를통해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문인적 자의식을 최치원에게서 발견할 수 있음. <계원필경> <nowiki>:</nowiki> <계원필경>의 책 이름에서도 최치원의 문인적 자의식을 확인할 수 있음. ‘필경’이라는 말은 붓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뜻임. -> 최치원이 글짓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최치원보다 한 세대 뒤의 문인인 최승우는 <호본집>이라는 문집을 저술했음. ‘호본’은 생계의 바탕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글쓰기가 생계의 밑천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이름을 붙였던 것. ㅡ> 필경, 호본 등의 이름은 9세기 후반 이후 문인적 자의식이 문학사에 뚜렷히 대두됨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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