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신라의 문호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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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의 자국 인식 === 최치원은 신라가 ‘해가 뜨는 나라’라는 말을 여러 군데서 했음. 또 신라를 인역仁域, 인방仁方으로 불렀음. 인역, 인방은 동방이라는 뜻도 있지만 어진 지역이라는 뜻도 있음. 이러한 인식의 연장ㅇ선상에서 신라를 ‘군자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음. ㅡ> 최치원이 자국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지녔음을 알 수 있음. 그리고 이러한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풍류도나 신라 불교에 대한 긍정, 항악이나 설화 등 자국 문화나 풍속에 대한 애정과 연결됨, 그러나 최치원은 중국의 천하 질서를 적극 긍정하며 신라를 당의 제후국으로 인식했음. 최치원의 이른 당 유학 경험과 이러한 인식은 관련이 있다고 보임. 또, 최치원은 신라의 중국화(한화汉化)를 적극 긍정하였음. Ex) <낭혜화상비명>: 무열왕이 신라의 복식을 중국식으로 바꾼 것을 적극적으로 찬미함. <지증대사비명>: 헌강황이 “화풍으로 폐풍을 일소”한 것을 찬미함. ㅡ> 자국의 제도나 언어, 습속을 낙후되거나 열등한 것으로 여겨 이를 중국식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 최치원이 향가를 짓지 않고 한시만 지은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 김부식은 <삼국사기> 지증마립간 조 에서 “최치원은 <제왕연대력>이라는 책에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의 신라 말들을 모두 왕으로 바꾸었는데, 이런 말이 비루해서 일컫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지금 신라사를 기록할 때 신라의 말을 그대로 두어야 마땅하다.” ㅡ> 김부식은 최치원과 다르게 역사 기술에 신라어를 쓰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여김. =>최치원은 자국 문화나 풍속에 대한 긍정과 애착이 있었지만, 다른 일면에는 중국의 제도나 문화, 풍속이나 습속으로 신라의 풍속을 대체시켜야 한다고 여기는 지향이 존재하였음. 이는 일종의 모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인인 최치원 내부에 이러한 모순이 있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 그리고 후대의 문인들에게도 이러한 모순은 계속해서 관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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