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신라의 문호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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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의 은거와 그 의미 === 최치원은 은거를 택하고, 은거 이후의 종적은 묘연함. 최치원의 이러한 행위는 ‘지식인에게 은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묻게하며, 이후의 지식인의 문인의 은거. -> 이러한 독특한 동아시아적 행위 패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음. 최치원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한데,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결국 자살했을 거라는 설도 있음. 1833년 4월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서유구는 <계원필경>을 간행한 바 있는데, 이 저술에서 최치원이 충청도 홍산의 극락사라는 절 뒤에 묻혔다고 하였음. 은거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1. 가(假)은거: 가짜 은거 2. 진(真)은거: 진짜 은거. 최치원의 경우는 진은거임. 최치원의 은거는 일종의 내적 망명이라고 할 수 있음. 최치원이 남긴 시 중 어떤 스님에게 말하는 투로 되어 있는 시가 있는데, “스님아! 나는 정말 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안 나올테니 정말 두고 봐라.” 이렇게 읊고 있음. ㅡ> 최치원에게 은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선택된 비장한 은거임. 이 경우 은거는 지식인에게 있어 자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행위라 할 수 있음. 은거는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태도라 할 수 있음. (자신의 어떠한 입장을 고수하고자 지조를 지키는 행위.) 최치원의 은거는 최치원 개인의 ‘윤리적 물음’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음. 최치원이 신흥 세력들에게 붙지 않고 역사 밖으로 나와버린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다운 것이며,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것인가?’라고 하는 윤리적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음. 최치원은 역사에서 나와 자신의 재능, 희망, 욕망과 같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음. 이러한 행위는 죽음이나 다름 없는 행위이며, 이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최치원의 은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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