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강 탈중화주의와 새로운 세계관의 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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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산문답>의 의의 === 홍대용은 생애 최만년까지 사유하며 자신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유교를 넘어 평등의 존재론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낼 수 있었음. 이를 통해 허위적 자고자대의 태도와 왜곡된 자기 비하를 동시에 지양함으로써 본연의 자기의식에 도달할 수 있게 됨. 이 자기의식은 대단히 반성적인 정신에 근거하며 견고한 논리에 의해 지지되고 있어 전근대 조선 사상사 내지 정신사에서 최고의 의식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됨. 중화주의, 화의사상은 몇 천년간 동아시아를 규율해온 세계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사람은 있었으나, 18세기에 홍대용이 이론적으로 이 사상의 잘못을 따지는 작업을 해냄. <의산문답>은 사상을 논한 텍스트이지만, 실옹과 허자의 성격 창조가 뚜렷하고, 작품의 구조가 견고하고 잘 짜여 있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으로써도 문제적이고 훌륭하다 할 수 있음. 또 문학과 사상의 밀접한 연관을 보여주면서 사상과 연관된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해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음. ‘중국만이 주체가 아니라 일본 역시 동등한 주체다’라고 주장한 동시대 일본지식인들이 있었으나 홍대용은 이론적 사유를 통해 주체의 평등성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중화주의를 해체하는 작업을 해냄. 이러한 방식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음. 이러한 방식은 홍대용의 만년 학문적 모토인 ‘공관병수’에서 찾아볼 수 있음. <의산문답>은 유교 내부에 머무르지 않아서 중화주의와 화이론의 해체가 가능했던 것임. 그러나 이는 유교를 부정하고 있다는 말은 아님. 유교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유하고 있다는 의미. 또한 홍대용이 학문의 본령이 참된 의리의 추구에 있다는 관점을 만년까지 견지한 것 역시 <의산문답>이 의론적인 성향을 띠게 하는 것에 작용했다 할 수 있음. 즉, 홍대용은 주자학을 벗어나서도 주자학의 맥락과는 다른 ‘의리지학’을 추구했다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홍대용이 거대 담론적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을 적 배웠던 주자학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거대 담론적인 지향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임. -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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