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강 탈놀이와 민족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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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변 === ==== -탈놀이가 탈을 쓰고 놀이를 하는 이유 ==== <nowiki>:</nowiki> 동아시에서 탈은 원래 역신이나 귀신의 퇴치를 위한 주술적 목적으로 쓴 것으로 보임. (ex) 중국 ‘장상시‘의 탈: 큰 탈을 쓰고 역귀를 퇴치하는 일을 함. 최치원의 <향악잡영> 1편 대면: 황금빛 가면을 쓴 사람이 (…) 귀신을 부린다. 사람들은 탈에 주술적인 벽사의 권능이 있다고 믿었고, 탈은 의식, 의례와 관련을 가지게 됨.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려말 탈은 유희의 측면을 가지게 되었고, 조선시대에 이 변화는 더욱 심해짐. -> 탈이 의례와 오락 두가지의 용도가 됨. 18세기 본산대놀이는 탈이 가지고 있던 두 가지 기능을 계승하고 있어 벽사적, 오락적 요소가 모두 나타남. 그러나 오락적 요소가 압도적으로 강하다 할 수 있음. 나례희.산대희의 탈춤과 달리 도시 탈놀이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마다 탈이 다름. (탈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므로, 탈을 통해 인물의 정형화가 이루어짐.) -> 탈이 역할의 의미를 가지게 됨. 탈마다 정형화된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에 극적 갈등의 연출이 쉬워짐. 탈은 이러한 장점도 있지만, 인물의 내면 표현을 차단한다는 문제점이 있기도 함. -> 이점에서 탈놀이의 연극적 발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 ==== 본산대놀이가 서울에서 사라진 이유 ==== <nowiki>:</nowiki> 본산대놀이는 1900년대까지도 연희되었고, 1910년대에도 변화에 적응하려 하였으나, 결국 소멸된 것으로 보임. 본산대놀이가 서울에서 소멸된 것에는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이 있음. 1. 내적요인 <nowiki>:</nowiki> 탈놀이의 탈은 정형화 되어 있어 새로운 대본을 만들기 힘듦. 또한 탈놀이의 언어는 거칠기 때문에 근대 시민 계급의 환영을 받기 어려웠음. 2. 외적요인 <nowiki>:</nowiki> 19세기 말 개화기에 이르러 자본주의 문명이 형성되며 공연 문화도 바뀌게 됨. 노천의 가설 연희장에서 하던 공연이 옥내 극장 공연으로 바뀌었고, 탈놀이는 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음. (재담, 판소리, 민요는 닫힌 구조에서도 공연이 가능하지만, 탈놀이는 열린 구조가 아니면 공연하기 어렵기 때문.) ð 서울은 근대화의 속도가 빨라 적응하지 못한 본산대놀이가 소멸된 것으로 보이고, 지방은 근대화의 속도가 느려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음. 그 결과 1930년대 이래 대본들이 채록될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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