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신라의 문호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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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 이외의 신라 시대 문인들 === 월명사와 충담사 -> 향가만을 남겼고, 한시문은 없음. 강수: 7세기에 활동한 문인. <삼국사기> 열전 강수전의 언급을 보면 삼국 각축기 때 강수가 주로 신라의 외교 문자를 맡아 지었다고 함. 한문학을 하였음. 강수는 원래 임나가야 출신인데, 임나가야가 신라에게 복속된 뒤로 신라를 위해 일하게 됨. <삼국사기> 강수전의 말미에는 “문장은 강수, 제문, 수진, 양도, 풍훈, 골포다.”라는 신라 고기의 말이 인용되어 있음. 이들은 최치원 이전의 문인들로 보이는데, 현전하는 문헌이 없어 어떤 글을 썼는지 알 수 없음. 김대문: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에 활동함. 진골 신분으로, 한산주 도독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음. <삼국사기>에는 그가 지은 <화랑세기>, <계림잡전>, <악본>, <한산기>, <고승전>과 전기 몇 권이 현전한다고 언급되어 있음. <악본>은 신라의 음악에 대한 글로 보이고, <한산기>는 한산주 도독 시절 남긴 한산에 대한 인문지리학적인 책으로 보임. ㅡ> 김대문은 지적 관시이 폭 넓은 저술가였던 것으로 보임. <삼국사기> 김대문전의 말미에는 박인범, 원걸, 왕거인, 김운경, 김수훈 등의 문인이 거론되어 있지만, 사적이 망실되어 열전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덧붙어 있음. 이들도 신라 시대의 주목할 만한 문인이었던 것으로 보임. 이중 김운경은 신라인 중 빈공과에 처음으로 합격한 사람임. 박인범은 최치원과 동시대의 인물인데, 빈공과에 급제한 후 귀국하여 한림학사가 되었음. 특히 시를 잘써쓰며, 불교에도 조예가 있었던 인물. (<동문선>에 칠언율시 10수와 산문 2편이 실려서 현전하고 있음.) 최광유: 최치원과 동시대의 인물. 최치원, 최승우, 박인범과 함께 신라 십현의 한 사람으로 꼽힘. 당에 유학 갔지만 빈공과에 급제는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임. <동문선>에 칠언율시 10수가 실려 전하는데, 이방인의 외롭고 힘든 삶을 노래한 것이 많음. - 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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