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건국신화와 광개토왕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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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적 변이] === 신화는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이야기 이기에 특정 집단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신화가 전승될 경우 구전 과정에서 전이는 크게 일어나기 어려움, 그러나 특정 집단이 붕괴하거나 사라질 때는 변이가 일어나기 쉬워짐. 이러한 경우 신화는 단일하지는 않으나 주요한 신화소는 공유되게 됨. 문학에서의 변이는 구전이 각각 다르게 정착되어서 자신이 들은 것을 기록하다가 생기는 변화(소극적 기록), 그리고 기록자의 의도나 관점이 개입된 개전(적극적 기록)으로 나뉨. 적극적 기록의 경우 기록자는 여러 전승 가운데 의도적으로 어떤 것을 택하던가. 전승에 수정이나 변형을 가할 수 있다. 기록자의 의식이나 의념, 이데올로기적 지향이 작용하는 것. Ex) 이승휴의 “요임금과 단군이 같은 시기에 나라를 건국했다.”, 조선 초의 “인민이 원해서~ 유가적 이데올로기 적용”, 20세기 초 대종교(大倧敎) ”단군에 역사적 계보 부여”(만세일계를 말하는 일본의 신국 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신화적 변의는 신화를 나르는 집단의 정체성 변화로 인해 야기될 수도 있음. ex) 동명왕 텍스트 속 해모수의 비중 구<삼국사>: 해모수의 비중이 높음 <삼국사기/유사>: 해모수의 비중이 낮음 광개토왕 비문: 해모수가 아예 등장하지 않음. 해모수는 본디 북부여 신화에 등장하는 북부여 시조신임. 주몽은 원래 북부여 사람으로서 해씨인데, 고구려를 창건하게 됨. 따라서 고구려 건국 신화에 북부여 신화가 많이 들어오게 된 것. 구<삼국사>의 동명왕 신화는 비교적 성립 초기 신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 고구려 5대왕까지는 해씨를 사용했으나, 6대왕부터는 고씨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음, 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의 비문 속 동명왕 신화에 해모수가 소거된 것은 북부여 신화의 자취를 지워버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됨. 즉, 북부여와의 관련성을 끊고 고구려의 독자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시조인 주몽과 북부여의 관계성을 끊은 것. (이 무렵 지배계층의 인식은 건국 초기 지배 집단의 정체성과는 다르다고 보아야함. -> 광개토왕 비문속 동부여 정벌 내용) -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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