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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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선생전> === 허균의 <남궁선생전>은 전계소설과 전기소설의 특징을 아울러지니면서 전쟁 이후의 환멸과 도피 지향을 일정하게 드러낸 작품임. <주생전>, <최척전>처럼 주인공에게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한 소설. 작중 허균은 남궁두를 1608년에 만났다고 하였음. 허균은 1607년 공주목사가 되었다가, 이듬에 8월 파직 당하고 전라북도 부안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었음. 남궁두는 선조, 광해군 때 호남의 유명한 도인으로, 그 행적에 관한 신비한 전설이 <어우야담>, <지봉유설> 등에 실려 있음. 허균은 명문가의 자제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지만 청년기 불운한 개인사를 가짐. 20세에 허봉이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 허난설헌도 세상을 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피난하던 도중 첫아들을 얻었지만 피난길에 아내와 아들이 모두 목숨을 잃음. 허균이 남궁두를 만났을 때는 공주목사에서 파직당한 직후였는데, 남궁두의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도가적 상상을 펼치며 울울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임. <남궁선생전>의 서두에는 입전 인물에 관한 신상정보를 자세히 기술하는 전형적인 전의 서술 방식을 취함.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서술은 일반적인 전이나 전계소설과는 달리 모든 에피소드가 연쇄적으로 이어짐. (전이나 전계소설의 경우 에피소드가 서로 간의 연계없이 나열되는 구조.) <주생전>과 같은 애정전기와 달리 <남궁선생전>은 화려한 수식 없이 대상을 정확하게 담고 있음. 사건 서술에서는 사건의 핵심만을 밀도 있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등 수준 높은 서사 문체의 한 전형을 보여줌. 선사가 남궁두에게 장생불사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한 뒤 남궁두가 도술을 익히는 과정의 서사전개는 박진감있게 진행됨. 1차 과제는 잠들지 않는 것이며, 2차 과제는 도가의 경전인 <주역참동계>와 <황정경>을 읽는 것, 3차 과제는 곡기를 끊는 일이었음. 남궁두가 하나의 과정을 마칠 때마다 선사가 몹시 기뻐하는 모습에서 독자 역시 함께 몰입하며 쾌감을 느끼도록 함. 수련 과정에서의 서술은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지배적. 이후 9년의 수련을 거쳐 ‘왕자교(중국 고대 전설 속의 신선)‘의 경지에 이름. 최후의 단계를 앞두고 선사는 “욕망이 동하더라도 결단코 참아야 하네. 식과 색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도 일체의 망상이 모두 진에 해로우니 모름지기 모든 유를 비우고 고요히 단련하도록 하게.” 라는 말을 남김. <주생전>과 같은 동시대의 애정소설이 사랑이라는 욕망의 분출과 좌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에 비해 <남궁선생전>의 선사는 일체의 욕망과 망상을 비우는 것을 진리라고 말함. 남궁두는 최종 관문에서 욕망을 막지 못해 신선이 되지 못함. 선사는 이후 자신이 500살이 넘었으며, 신선이라는 정체를 밝힘. 남궁두의 요청으로 선사는 조선 삼남 지방의 신을 통솔하는 신선으로서 여러 신들에게 조회 받는 광경을 보여주게 됨. 이 장면은 이전의 간결한 문체와는 다르게 기교 있는 화려한 문체로 이루어짐. “문득 대 위의 향나무 두 그루에 각각 알록달록한 꽃등이 걸리더니, 이윽고 골짜기 가득 수천수만 그루의 나무마다 모두 꽃등이 걸리면서 붉은 불꽃이 하늘에 뻗쳐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 이후 도교의 신들이 하나하나 호명되며 화려한 조회장면이 이어짐. 도가문학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장관. 화려한 수식이 돋보이는 대목. 신선이 되는 것에 실패한 남궁두는 속세로 돌아갔고, 신선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절제하여 800년의 수를 누리는 지상선이 될 수 있었음. 그러나 허균을 만난 남궁두는 “(…) 게다가 가는 곳마다 젊은 것들이 내 늙고 추한 모습을 업신여기니 인간 세상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어졌어. 사람이 장수하고 싶어 하는 건 원래 즐거움을 위해서인데, 나는 쓸쓸해서 즐거움이라곤 전혀 없이니 오래 살아 봐야 뭐하겠나? 그래서 이젠 속인들이 먹는 음식을 금하지 않고, 아들도 안아 보고 손자 재롱도 보며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 하늘이 내린 이치를 순순히 따르려하네.“ 라고 말하며 장수를 버리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택한 이유를 설명함. 허균은 <남궁선생전>을 통해 도가적 초월을 꿈꾸다 좌절한 불행한 인간의 삶을 다루었음. 남궁두의 속세에서의 고난은 암울하게 서술되었지만, 연단 과정의 서술과 도교 신들의 조화 과정은 활기차고 화려하게 서술되었음. 이후 마무리 대목에서는 불로장생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속세의 평범한 삶을 택하는 남궁두를 조명함. 부질없음을 보여주는듯 하지만,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도가적 초월을 보여주는 대목. <남궁선생전>의 연단 과정은 당 전기 <두자춘>의 연단 과정과 비교할 수 있음. <두자춘>에서는 말하지 말라는 금기를 지켜야 신선이 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금기를 지키기 위해 온갖 외부의 위협을 인내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냄. 그러나 <남궁선생전>에서는 연단 과정 자체를 자세히 기술하며 욕망을 참는 과정에 초점을 둠. 또, <두자춘>에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연단을 실패했지만, 남궁두는 빨리 이루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신선이 되지 못함. <두자춘> 이래로 명대의 <비검기>까지 도가의 연단 과정을 작품화한 예가 이어지지만, <남궁선생전>(조회 장면)은 그 중에서도 도가적 상상력을 한 껏 발휘한 작품임. 이러한 점에서 우리 고전소설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도가문학사에서도 이채를 발하는 작품. <남궁선생전>을 통해 허균은 도가적 지향을 화려하게 나타내고,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 하였음. 이는 허균의 불운한 개인사 등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하였을 것. 또한 전란 이후의 상황에 쓰여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남궁두의 운명은 더욱 큰 반향을 준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여 돌아와 보니 행복했던 과거 삶의 자취마저 지워져버린 남궁두의 운명은 전란 이후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 던져진 당대 조선인의 정서와 맞닿아 있음. 또한 모든 것을 잃고 세상을 초월하고자 했던 남궁두의 의지는 삶에 염중을 느끼고 현실 밖의 신비한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함. 즉, 이 작품의 근저에는 전쟁 이후 세계에 대한 불안, 공포, 환멸 속에서 초월적 상상을 통해 현실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던 초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임. 그러나 <남궁선생전> 속 임진왜란에 대한 특이한 생각은 주목할 필요가 있음. 조회 장면에서 선사가 조선의 액운을 예견하며 구제할 방책을 묻자 세 신군은 “삼한의 백성들이 간교하여 속임수를 잘 쓰고, 미혹되고 흉포하며, 복을 아끼지 않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 삼한의 백성 열 사람 중 대여섯의 목숨을 빼앗아 경각심을 일깨우려 합니다. 저희들은 삼도제군의 이 말을 듣고 모두 가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하늘의 큰 운수에 관계되는 일이니 어찌 해볼 도리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함. 임진왜란의 발생이 숙명이었다고 말하며, 전쟁의 책임을 조선 백성의 간교함에 떠넘기는 왜곡된 시각이 나타남. 당대 지배계급의 자기 반성과는 거리가 먼 태도. - 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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