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강 생사를 건 인정투쟁―이언진의 등장과 『호동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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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진 사후의 일들 === 이덕무는 성대중을 통해 이언진의 문학적 재능을 알게되었음. 이덕무는 이언진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서울에 떠도는 이언진에 대한 소문이나 성대중에게 얻어 들은 말 따위를 <이목구심서>에 기록해 놓았음. “나는 우상의 얼굴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 대해 익히 말하고 자주 논하며, 또한 나의 잡기 중에 그의 시문을 옮겨 적어 둔다. 혹자가 이를 두고 내가 일 벌이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마땅히 조금도 그만두지 않으련다.” => 이덕무가 이언진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몹시 아꼈음을 알 수 있음. 이덕무는 생전 이언진과 친분이 없었음에도 그 집에 찾아가 동생을 만나 생전의 일을 물어보기도 함. 이덕무나 성대중은 이언진의 신분이 낮았음에도 그의 뛰어난 재능을 존중하였음. 이용휴(이언진의 스승)은 이언진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몹시 아꼈음. 이언진이 사망하자 만시(挽诗)를 열 수나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음. 박지원은 이언진 사후에 <우상전>을 지어 그의 요절을 애석해 했고, 김조순은 <이언진전>을 짓기도 함. 이언진 사후 백여년이 되어 가는 철종 11년에 이상적, 김석준과 같은 후배 역관 시인들이 그를 기리며 중국에서 유고집 <송목관집>을 간행하였고, 이 유고집에 이상적이 쓴 <이우상선생전>이 실려있음. 이언진의 집안에서도 같은 해 유고집 <송목관신여고>를 간행하였음. 신여고는 타다 남은 원고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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