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강 삼국 다시 읽기와 토풍의 소환―『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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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의 찬술동기 === 일연이 몽골 항쟁기를 살았으며, 원 간섭기에 <삼국유사>를 집필하였다는 사실은 <삼국유사>의 찬술동기를 살펴볼 때 매우 중요함. 대장경 조판 사업에 참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연은 호국(護國)의 뜻이 있었음. <삼국유사> 기이 편의 고조선 조에는 단군신화가 나옴. 단군의 내력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이 책이 처음임. 왕력 편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을 ‘단군지자(檀君之子)’라고 하며 단군과 고구려를 연결시켜 놓음. 단군과 고구려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연의 이러한 서술은 단군과 고구려를 연결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연속성과 유구성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음. -> 그렇다면 이러한 서술은 자국의 고유한 유래를 강조하여 내적결속을 다짐으로써 원의 압제에 대한 ‘정신적 대응’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음. 일연은 <삼국유사> 곳곳에서 호국불교를 긍정하고 있음. 그는 승려로써 호국불교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오랜 전통을 삼국의 역사에서 확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임. <삼국유사> 속 불교관련 서사에는 국가의 안위, 국가 수호가 빈번하게 문제되고 있음. 즉, 국가와 불교는 불가분한 관계라고 본 것. ->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몽골의 침입과 압제에 대한 정식적, 이념적 맞섬'''이 <삼국유사> 찬술의 중요한 하나의 동기라고 볼 수 있음. 한편으로는 삼국시대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가 또 다른 찬술 동기가 되고 있기도 함.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반하여 편찬되었지만, <삼국유사>는 불교적 신비주의 사관에 의거해 편찬되었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서술되었지만, 일연이 <삼국사기>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님. <삼국사기>에 대한 불만으로 <삼국유사>를 썼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여러 난점이 있음. <삼국유사>의 곳곳에는 <삼국사기>의 인용이 있음. 대개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서 <삼국사기>를 인용하거나 거론하고 있음.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일연이 <삼국사기>를 부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움. 또한 <삼국유사> 속 동명왕에 대한 서술은 <삼국사기> 속 서술과 거의 동일한데, 일연은 구<삼국사>가 아닌 <삼국유사> 속 서술을 취한 것임. 이러한 예를 통해 일연이 <삼국사기>를 존중했음을 알 수 있음. '''즉,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없는 이야기를 엮어 <삼국사기>를 보완하고 삼국의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자국의 고유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음. -> 요컨대 일연은 <삼국사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책으로 <삼국유사>를 기획한 것으로 보임. 다른 관점을 통해 삼국을 다시 바라보았으므로 <삼국사기>와는 다른 의미망이 구축될 수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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