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경제사적 배경: 독자층 형성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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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사치품'으로서의 장편소설''' === 정리하자면, 17세기 후반 서울의 풍요와 사치는 내부적으로는 전국 각지의 하층민에 대한 수탈, 외부적으로는 청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개무역의 이익 독점으로 인해 가능했음. 이러한 부의 축적으로 인해 서울의 상층 사대부가는 물론 그 수하의 노비들, 역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중인가에서 물질적 사치를 누리게 되었을 것임. 물질적인 풍요를 맛보면 정신적 포만감을 원하게 되는 법.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층 중에서도 상층 여성들이 여가를 보낼 유흥물을 필요로 했음. 소설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음. 1603년 선조가 『포공연의』를 부마에게 준다는 편지를 통해 소설 읽기는 17세기 초를 전후로 이미 왕실에서는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병자호란 직후의 기록을 보면 청나라 사신이 원하는 책을 교서관 관원이 잘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초 서울에서 중국 장편소설이 광범위하게 유행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왕실 친인척을 중심으로 한 최상층 내에서 주로 향유되었음. 유행이라는 것이 상층의 배타적인 취향에서 비롯되어 전 계층으로 확산된다고 하면, 소설 읽기는 일반적인 유행의 확산 과정과 흡사함. 왕실을 중심으로 한 소수 상층의 사치품이었던 소설이 서울 상층 사대부가가 급격한 부의 축적을 이루면서 서울 전역으로까지 소비 대상을 넓혔을 것임. 최상층 사대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주로 그 모친들이 소설의 애독자였던 것을 알 수 있으나 독자가 중년 혹은 노년으로 한정되지는 않음. 중인층 여성으로 추측되는 ‘여항의 아낙’이 빌려 보기도 하고, 소년이었던 임영이 누이들에게 읽어달라고 하기도 했음. 이 시기 소설 독자의 범위는 상층 여성 대다수와 일부 중인 여성, 상층의 젊은 남성까지도 포괄함. 김성최의 기록에 의하면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젊은 사대부도 ‘부녀’들과 함께 소설을 즐겼음. 즉, 17세기 후반의 서울에서는 상층 사대부가 여성을 중심으로 장편 소설 읽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크게 유행을 했고, 일부 사대부가에서는 연령 및 성별 무관하게 온 가족이 함께 어울려 소설을 향유하는 것이 하나의 여가 문화를 이루었음. 새로운 읽을거리에 대한 욕망이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커다란 유행을 형성함.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사신이 소설을 구해줄 것을 요구하면 즉시 응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 상층부에서는 장편소설이 널리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음. 장편소설은 17세기 후반 서울 상층을 주요 소비 대상으로 삼은 일종의 문화 사치품으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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