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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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생전> === 성로는 명종 5년에 태어나 광해군 7년에 세상을 떠남. 정철의 문인이었는데, 벼슬을 하지 않고 자유방달하게 살았음. 당시의 정(正)한 사대부들은 예교를 따르지 않고 거리낌 없는 성로를 광객으로 여겼음. 세계와 화합하지 못하고, 당대 지배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컸다는 점에서 경계인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음. 성로는 아내를 일찍 여의고 혼자 살았는데, 아들은 없고 딸이 둘 있었으나 양자를 들이지 않았음. 서울의 인왕산 아래에 살 때 임진왜란을 만나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했으며, 강화도가 불안해지자 전라도 군산으로 가 거기서 6년을 보냄.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군산이 위험해지자 다시 강화도로 이동해 5년 정도 우거하였음. 1602년 겨울에서 1603년 봄 사이, 성로는 양화도 부근의 작은 산 밑에서 은거했는데, 이 때 기생 설죽과 시를 주고받으며 깊이 교유하였음. 이 무렵 <위생전>과 <운영전>을 창작했을 것으로 여겨짐. 이전에는 <위생전>을 권필이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하였지만, 성로의 문집인 <석전유고>와 <위생전>, <운영전>을 대조하고 작품의 미적 지향과 성로의 생에 대한 지향을 맞춰 보면 <위생전>을 성로가 썼음을 알 수 있음. <주생전>과는 그 생에 대한 지향과 가치 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임. 작품의 주인공인 위생은 중국 금릉(지금의 남경) 사람임. 임진년(1592년)에 친구와 악양에 가서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밤에 술이 깨어 혼자 배에서 내려 어느 곳으로 갔는데, 그곳은 소상국(소재상)의 집이었음. 우연히 딸 소숙방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됨. 그런데 이해에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위생은 조선으로 떠나게 됨. <주생전>에서의 주생도, 위생도 서기의 임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임. 위생은 조선에서 병이 들어 군막에서 숨을 거두고, 시신은 소숙방이 있는 악양으로 운구됨. 소숙방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목을 매어 자결함. 이 작품은 플롯이 비교적 간단하고, <주생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기 때문에 유사한 부분이 많음. 성로는 권필과 절친했고, 따라서 권필의 소설 창작에 자극 받아 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 그러나 <위생전>과 <주생전>의 생에 대한 전망이나 가치 지향은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음. è <주생전>과 달리 <위생전>에서는 남녀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키고, 사랑 때문에 죽게 됨. <nowiki>:</nowiki> 이러한 점에서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와 연결됨. 실제로 <금오신화>의 영향을 확인할 수도 있음. 즉, <위생전>은 <주생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지만, <주생전>의 가치 지향에 동의하지 않고 그와 다른 가치 지향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 생에 대한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 인간에게 ‘지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지어졌다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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