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강 국문소설 및 장편소설의 형성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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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씨남정기>, <구운몽> === 17세기 후반 김만중이 창작한 소설, 김만중은 인조 15년에 태어나 숙종 18년에 사망. 벌열집안 출신으로 지배층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 당색은 노론이었음. 지배층이면서도 소설의 가치를 인정하고 국문 문학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한 인물이었음. 김만중의 종손인 김춘택은 <북헌집>에 수록된 <시문을 논하다>라는 글에서 “서포는 자못 대부분 국문으로 소설을 지었다. 그중에 이른바 <남정기>라는 것은 범상한 작품들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라는 기록을 남김. 이를 통해 김만중이 <사씨남정기>를 국문으로 창작하였음을 알 수 있고, 김만중이 대부분의 소설을 국문으로 창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음. <사씨남정기>는 사씨가 남쪽으로 간 이야기라는 뜻임. 조선 후기 대부분의 국문소설이그렇듯 명나라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 주요인물은 한림학사 유연수와 그 처인 사씨, 첩 교씨임. <사씨남정기>는 심각한 처첩간의 갈등을 보여줌. 처첩갈등은 17세기 후반에 창작된 소설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사대부 집안 내부의 가부장제의 모순을 보여줌. 이후 국문소설, 특히 장편 국문소설의 필수적 모티프가 됨. 19세기 문인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소설변증설>이라는 글에 “<남정기>는 북헌 김춘택이 지은 것이다. (…) 북헌은 숙종 때 인현왕후가 폐비되었기에 숙종으로 하여금 그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지었다고 한다.” 라는 기록이 있음, <남정기>를 김춘택의 작이라고 한 것과 같이 여러 착오가 있는 기록이지만 (김춘택이 남정기를 한역하였기 때문에 착오가 생긴듯.) <사씨남정기>의 창작 의도를 알 수 있는 기록임. è <사씨남정기>의 창작의도: 인현왕후를 폐비한 일을 풍간하기 위해. 인현왕후는 숙종 15년 폐위됐다가 5년 뒤에 복위되었음. 이 사건은 세자 책봉을 둘러싼 남인과 서인의 갈등에서 기인하였기 때문에 <사씨남정기>의 창작은 숙종 연간의 당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음. 이러한 점에서 <사씨남정기<는 정치와 소설의 내적 연관을 보여주는 작품임. (당쟁이 소설의 내적 형식과 결구를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씨남정기>는 168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임. 또한 <구운몽> 역시 이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김만중이 1692년 사망하였으므로 <남정기>와 <구운몽>은 모두 김만중의 만년에 집필된 것. <구운몽>은 선계에서 현실계로, 현실계에서 다시 선계로 넘어가는 순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환몽 구조와 결부되어 있음. 환몽 구조라는 점에서 문학사 적으로 <조신전>과 연결되는 작품인데, <조신전>은 비참한 민중의 현실을 구현하였고, <구운몽>은 부귀영화가 구현되는 귀족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생에 대한 감각이나 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대조적임. <조신전>의 꿈 속 삶은 ‘고해‘로 귀결되지만, <구운몽>의 꿈 속 삶은 ’낙해(쾌락의 세계)‘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구운몽>은 귀족적 이상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음. 김만중은 장희빈 일가를 비판하다가 숙종 13년 9월 유배형을 받았고, 평안도 선천에서 1년즈음 유배 생활을 하였음. 김만중 후손이 창작한 <서포연보> 속 “부군께서는 또 모친께 책을 지어 보내어 소일거리로 삼게 하셨는데, 그 뜻은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꿈속의 환상이라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는 기록을 통해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어머니 윤씨를 위로하기 위해 <구운몽>을 창작하였음을 알 수 있음. <구운몽>의 서두에는 양소유의 아버지 양처사가 양소유 12살 때 집을 떠나 봉래산의 선계로 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보이는데, 이는 아버지 없이 자란 김만중의 개인사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임. 김만중이 지극한 효심을 가졌다는 점을 보면 <서포연보>의 기록은 사실로 보임. 그러나 <서포연보>의 기록처럼 단순히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구운몽>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면모도 있었으리라고 보임. 김만중은 전대의 지배적 소설 양식이었던 전기소설의 성과와 서사 문법을 잘 활용해 <구운몽>을 창작하였기 때문에 문체가 아정하고 예술적 성취가 뛰어남. <구운몽>은 후대의 국문소설, 특히 귀족적 성향의 가문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음.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많이 읽혔고, 장편소설의 작자들에게 일종의 ‘교본’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함. (Ex) 19세기 남영로의 <옥루몽>은 구운몽의 영향을 짙게 받은 소설) 양소유의 2처 6첩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화락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점이 특별함. 이를 통해 <구운몽>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긍정되고 있으며, 당대 상층 사대부 남성의 판타지를 그려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구운몽>은 초기 국문 장편소설로, 소설 양식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으며, 이후 창작될 국문 장편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음. 그러나 중화주의와 화의론적 세계관을 후대의 소설에게까지 답습하게 한 책임이 있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모두 중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외국을 배경으로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 작가의 상상력을 펼치기에 유리한 면도 있지만, 시공간을 주체적으로 전유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함. 국문소설이 시공간을 주체적으로 전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선적 정취’룰 미적으로 전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자국의 역사, 지리, 문화, 습속에 대한 이해 결부로 이어짐. 이러한 이해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시공간 설정은 작은 문제가 아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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