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신라의 문호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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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세계 === 최치원의 남긴 시들은 몇 가지 경향성을 보임. 1. ‘그리움’의 정서 <nowiki>:</nowiki> ‘그리움’을 한국문학사에 처음으로 뚜렷하게 각인한 문인이 최치원이라 할 수 있음. 여러 종류의 그리움 중 최치원의 시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점이 중요함. “그대와 서로 만나 노래하고 시 읊나니 / 흐르는 세월이 장대한 마음 꺾음을 한탄 마세나. / 다행이 봄바람이 길 영접하면 / 꽃 피는 좋은 시절 계림에 닿겠지,“ - <벗이 제야에 보내준 시에 화답하다>라는 시. 신라에서 당으로 유학온 벗에게 화답한 시임. 최치원은 어렸을 적 당으로 유학가 빈공과에 합격했지만, 중국인 과거 합격자와 빈공과 합격자 사이에는 차별이 존재했음. 최치원은 능력이 있었으나 민족으로 인한 차별을 받아야 했음. 이러한 차별로 인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더 컸을지도 모름. 2. 이별의 슬픔 <nowiki>:</nowiki> 최치원의 작품들은 한국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이별의 정한‘을 집중적으로 표출하고 있음. 이별의 슬픔은 그리움과는 다르지만, 그리움과 종종 연결되기도 함. “만나서 잠시 초산의 봄 즐기다가 / 다시 헤어지려니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 바람 맞으며 슬피 바라본들 이상타 마오. / 타향에서 고향 친구 만나기 참 어려우니. ” - <산양에서 고향 친구와 만나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지며>라는 시. ’초산‘은 산양을 가리키는 지명임. 떠나가는 벗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최치원의 모습이 생각남. 3. ‘술회‘ <nowiki>:</nowiki> 술회란 마음을 서술하는 것을 말함. 즉, 회포. 술회를 주로 하는 시를 술회시라고 하는데, 박지원의 술회시는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번뇌와 삶에 대한 성찰을 주로 닮고 있음. 특히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에 대한 아려움을 읊고 있음. “여우는 미녀로 잘 둔갑하고 / 살쾡이는 선비로 잘 가장하네. / 뉘 알리 짐승들이 / 사람 몸으로 변신해 홀리는 줄을. / 하지만 변신은 외려 쉬운 일이요 / 양심 지키기가 제일 어렵네. / 그러니 참과 거짓 알고 싶다면 / 마음의 거울 닦아 비춰 보게나.” - <옛 뜻>이라는 제목의 시. 혼란한 세상에서 양심을 지키고 사는 일이 참 어렵다는 것과, 참과 거짓을 분간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수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 자기 성찰적 면모가 강한 시. 후대의 문학사에는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번뇌와 고미을 담은 술회시를 쓴 시인들이 많음. 문제적 시인일 수록 술회시를 많이 남김. 최치원의 술회시는 문제적 문인의 술회시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됨. 4. 하찮거나 미천한 존재에 대한 연민 <nowiki>:</nowiki> “거친 밭가의 적막한 곳에 / 다복하게 꽃 피어 가지 휘었네. / 매화비 겪어 향기 그치고 / 보리바람에 그림자 비스듬하네. / 수레 탄 이 뉘라서 보아 줄까? / 벌과 나비만 옅보고 있네. /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리니 /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 슬퍼할만 하네.”- <접시꽃>. 중국에 있을 때 외국인으로서 차별받은 최치원의 경험이 투사되어 있다고 여겨짐. 즉,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느껴짐. 최치원의 시에서 드러나는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사회역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후대의 신분 차별, 적서 차별, 젠더적 차별에 대한 감수성과 연결됨. 5. 향악에 대한 관심 <nowiki>:</nowiki> 최치원은 <향악 잡영>이라는 다섯 수의 시를 지었는데, 이 중 <대면>과 <속독>은 탈춤을 노래한 것이고, <산예>는 사자춤을 노래한 것임. -> <삼국사기> 악지 편에 작품들이 실려있음. 이를 통해 신라에 다양한 토속 놀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음. 악무를 노래한 시들은 후대의 ‘악부시’와 연결됨. -> 최치원의 <향악 잡영>은 우리 문학사에서 악부시의 출발점을 보여줌. <nowiki>*</nowiki> 악부시: 자국의 노래나 놀이, 풍속 등을 읊은 시. 고려 후기에 나타나 조선때 풍부하게 창작됨. 최치원의 한시가 창작된 때는 신라 말기인데, 그 시적 성취가 매우 높음. 이 무렵 신라 한시의 수준이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 “중국의 사신 호귀후가 신라의 한시들을 많이 채록해 중국으로 돌아가 재상에게 보고하기를, “저 이후로는 무인을 신라에 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신라의 임금이 시를 모아 인쇄한 책을 주기에 저는 전에 시 짓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억지로 부끄러움을 참고 화답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될 뻔 했습니다.”라고 했는데, 식자들이 옳은 말로 여겼다.“ ㅡ>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 <대승복사비명> 내용 중. 당시 신라의 한시 수준을 잘 나타내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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