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무신란 이후의 문학과 신진사류의 의식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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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문인들 === 무신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정권 유지에 기여한 문인들도 있었음.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들이 <한림별곡> 제 1연에 나타나있음. * 한림: 한림원을 말함. 고려의 한림원은 왕명을 받들어 문장짓는 일을 맡았는데, 이곳에 속한 관원으로는 학사승지 1인, 학사 2인, 시독학사 1인, 시강학사 1인이었음. 한림원 학사는 문재가 있어야 맡을 수 있고, 임금을 가까이서 시종하여 영광스러운 벼슬로 간주됨. <한림별곡> 제1연 元淳 文(원순 문) 仁老 詩(인로 시) 公老 四六(공로 사륙) 李正言(이정언) 陳翰林(진한림) 雙韻走筆(쌍운주필) 冲基(충기) 對策(대책) 光鈞(광균) 經義(경의) 良鏡(량경) 詩賦(시부) 위 試場(시장)ㅅ 景(경) 긔 엇더니잇고 (葉) 琴學士(금학사)의 玉笋門生(옥순문생) 琴學士(금학사)의 玉笋門生(옥순문생) 위 날 조차 몃부니잇고 -> 원순은 유원순, 인로는 이인로(이인로는 한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언급되었지만, 거론된 사람들과는 성향이 다름.), 공로는 이공로, 이정언은 이규보, 진한림은 진화, 충기는 유충기, 광균은 민광균, 양경은 김양경, 금학사는 금의를 말함. 유승단은 고종의 사부로, 고문을 아주 잘하기로 유명했음. 참지정사(종2품)까지 올랐음. 이공로는 사륙변려문을 잘 지었으며, 벼슬은 정3품직인 추밀원 우부승선까지 지냄. 이규보는 <고려사>에 집안 선조에 대한 소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방 향리 출신임. 명종 20년에 급제함. 진화는 조부가 진준(병졸로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이 됨. 무신란 때 문인을 많이 구해줘 그 덕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 많았음.)의 아들. 무신란 이후 과거에 응시해 문인이 됨. 유충기는 대책(과거 응시자가 임금의 질문에 답한 글)을 잘 지은 문인. <고려사>에 집안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방향리 출신인 것으로 보임. 민광균은 경의(경전의 뜻에 밝았던 문인), 역시 <고려사>에 선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방 향리 출신으로 보임. 김양경은 시부에 능했던 문인으로, 나중에 인경으로 개명함. 문벌 귀족 출신이지만 무신정권에 잘 적응하여 형부상서까지 지냈음. 금위는 고위직인 평장사까지 지낸 인물. 지공거를 여러 번 맡아 많은 문생을 배출하기도 함. (그래서 <한림별곡>에 옥순문생이라고 언급된 것,) 문생과 지공거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기 때문에 문생이 많으면 세력이 더 큰 것이었음. <고려사> 열전 금위전에 따르면 삼한공신 금용식의 후예로 되어 있는데, 그 뒤의 가계는 기술되지 않음. -> 금위의 집안이 금위로 인해 번창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음. 금위는 최충헌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하였던 것으로 보임. <한림별곡>에 언급된 인물 중 가장 벼슬이 높았음. => 한림별곡 제1연에 언급된 인물들은 대체로 무신정권에 득의한 인물들이고, 지방 향리 출신이거나 한미한 집안 출신인 것으로 보임. 무신란 이후 문인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 기용된 신진사류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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