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의 형성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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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속염정소설의 모티프 변용 === <구운몽>은 <천연기우>나 <육포단> 같은 염정소설의 환원구조와 편력구조, 흥미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작중인물의 향락이 음탕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고 있음. 통속염정소설의 음란성에 대항하여, 상층 예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고 은근한 방법을 통해 충분히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육포단>류의 작품에 수시로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묘사는 채택하지 않고 은근한 묘사로 대체하였으며, <육포단>에서의 편력 대상이 유부녀였던 것과 달리 양소유의 편력 대상은 상층의 규수, 여종 혹은 기녀이기 때문에 일대일 관계로 바라보면 애정전기의 연애담과 크게 다르지 않음. <구운몽>의 중요한 서사 추동력 중 하나인 여성 주체의 속임수는 <육포단>류의 염정 소설에서도 활용되었음. 그러나 <육포단>에서는 속임수의 이유가 미앙생의 성적 능력 시험이었으며, 이 부분에서 노골적인 묘사가 나타남. <구운몽>에서는 이 부분의 흥미요소는 취하되, 자극적인 부분을 삭제하고, 바로 앞 대목에서 적경홍을 남자로 꾸며 양소유가 계섬월과의 관계를 의심케하는 속임수를 중첩시켜 재미를 배가하고 있음. 또한 <구운몽>에서 계섬월이 양소유에게 정경패와 적경홍을 배필로 추천하던 장면의 제목이 “계섬월이 원앙금에서 어진 이를 천거하다“였다던가, 두 여인이 기녀가 되어 양소유 같은 군자를 함께 섬기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하는 대목을 볼 때 이러한 속임수는 양소유의 여성 편력을 정당화하면서도 법도를 어지럽히는 음란성을 보여주지 않게됨. <육포단>에서 미앙생이 염방의 계략에 빠져 추녀와 동침하는 장면은 ‘가춘운의 귀신 놀음‘ 장면에서 농락당하는 양소유의 어리석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또한 양소유가 여도사로 가장하며 정경패를 만나는 장면은 <공공환>의 한 장면과 흡사함. 여주인공의 남장이 <최적전>, <홍백화전> 이래로 후대 장편소설까지 두루 보이는 반면 남주인공의 여장은 <구운몽>과 <창선감의록>이 시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짐. 명말청초의 소설의 경우에도 남장 및 여장 모티프가 자주 발견되어 이러한 설정이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임. * 남장모티프- <화영집> 중의 유방삼의전에서 시작하여 재자가인소설의 대표작인 <옥교리>를 거쳐 후대 소설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보임 * 여장모티프- <공공환>, <오강설>, <옥루춘> 등 <공공환>, <오강설>과 같은 작품에 구체적인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없지만, 당시 중국 소설에서 이러한 모티프가 인기리에 활용됐으므로 이런 유형에 속하는 작품을 읽고 <구운몽>을 전개했을 가능성이 있음. 그러나 위 작품들과 달리 <구운몽>은 그 파격적 성격이 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의도가 느껴짐. 양소유가 여장을 한 장면에서는 “재상댁 높은 문이 다섯층이요 화원 담장이 두어 길이니 엿볼 길이 없고, 정소저가 책을 읽고 예를 익혀서 일거일동이 구차하지 않은 바 도관과 절에 분향하지 않고 삼월삼짇날 곡강에서 노닐지 않으니, 외간사람이 어찌 만나볼 길이 있겠소? “ 라며 정경패를 만날 수 없는 이유가 사대부가 여성의 법도임을 나타내고 있음. <공공환 >에서는 고을 태수의 집이므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간단한 설정만 있고, <오강설>에서는 문벌의 차이와 주변 적대 인물의 방해때문이라는 설정과는 크게 다르다. 또 <구운몽>에서 양소유와 정경패가 만나는 장면에서 여도사로 변장한 양소유가 거문고 연주를 하자 정경패는 음악을 품평한다. “<예상우의곡>은 진선진미하나 세속의 소리, <옥수후정화>는 아름다우나 즐겁되 음란하고 슬픔이 과한 망국의 노래 (…)“ 사대부의 미의식 또는 윤리의식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는 의도가 느껴짐. 또한 마지막 곡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양소유가 <봉구황>이라는 사마상여가 탁문군을 유혹하던 노래를 연주하자 정경패는 양소유의 속임수를 간파한 뒤 자리를 뜸. <오강설>, <공공환>의 주인공들이 첫만남에 우여곡절을 거쳐 동침한 것과 다르게, 여장한 양소유와 정경패의 만남은 이것이 끝임. 이후 정경패는 “규중 처자의 몸으로 남자와 마주 앉아 언어로 수작하였으나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야! (…) 저자가 사마상여라 해도 나는 결단코 탁문군이 되지 않으리!“라고 말하며 이를 수치로 여김. -> <구운몽>은 앞선 중국소설과 동일한 모티프를 활용하여 스토리 전개의 흥미요소는 받아들이되, 당대 규범으로부터 완전히 일탈하지는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곳곳에 마련해두고 있는 것임. 이러한 요소는 양소유와 진채봉의 결연 과정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음. 진패봉이 먼저 양소유에게 유모를 통해 결연 의사를 밝히고, 양소유가 흔쾌히 그날 밤 만나자는 뜻을 전함. 이때 진채봉은 “남녀가 혼인 전에 만나는 것이 예가 아닌줄 알되 (…) 하오나 밤에 만나면 남들의 의심이 있을 듯하고 부친이 아시면 잘못이라 여기실듯 합니다.“ “소저의 밝은 견해와 바른 뜻은 내가 미칠 바 아니로다!“ 파격적이나 결정적인 한계를 넘지 않음. 통속염정소설이나 애정전기에 비해도 조심스러운 만남이지만, 이는 이후로 공격의 대상이 됨. “반면 진채봉은 비록 재주와 용모가 빼어나다 하나 거동이 자못 존귀하고 진중하지 못하니 (…)“ 혼인의 뜻을 먼저 밝힌 진채봉은 거동이 진중하지 못한 이로 평가절하되고 있음. 즉, <구운몽>은 자유로운 애정 관계가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경패와 같은 상층 사대부가 여성은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엄정한 예법을 스스로 지키는 한편,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여성에 대해 분명한 차등을 두고자 하고 있음이 드러남. 양소유의 끝없는 애욕추구와 정경패와의 혼인 이전에 가춘운과 동침하는 과정 역시 ‘가부장’의 승인을 통해서 인정되고 있음. 양소유가 여도사로 가장하는 속임수는 정경패의 부친인 정사도의 승인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음. 그의 입장에서 참된 풍류재자인 양소유가 여자로 가장하여 배필을 얻고자 한 일은 “재주 있고 정 많은 사람의 유희“이며, 정경패가 양소유를 여자로 여겨 만났기 때문에 탁문군과는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가춘운과의 동침이라는 파격은 정실보다 시비를 먼저 보내 양소유의 적적함을 달래게 하자는 정사도의 승인을 통해 인정이 되며, “그저 보내자니 소홀하고, 예를 갖추자니 혼인전이라 마땅하지 않다“는 정사도의 고민은 정경패가 귀신 놀음을 제의하며 속임수 놀이로 이어짐. 정경패 일가는 물론 독자까지 양소유가 놀림감이 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파격을 잊게 되며 진정한 승자가 양소유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를 통해 작자가 정사도라는 구세대 가부장과 양소유라는 신세대 가부장을 이용해 기묘한 남성중심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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