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고려 말 신흥사대부층의 형성과 그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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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색 === 14세기 후반에는 뛰어난 문인들이 여럿 배출되었지만, 그 중 최고는 목은 이색이라 할 수 있음. 이색은 이제현의 문생이며, 이곡의 아들임. 이곡의 이름에서 ‘곡’은 곡식이고, 이색의 ‘색’은 곡식을 거둔다는 뜻. 부자의 이름이 농사와 관련있음. -> 이는 신흥사대부의 대다수가 지방의 향리 출신이기 때문. 향촌과의 관련성이 나타남. <고려사> 열전 이색전에 “이색이 성균대사성이 됨에 성균관에 비로소 정주 성리학이 일어났다.“라는 말이 보임. ->이색이 성균대사성으로 있을 때 성균관의 학생들에게 정자와 주자의 성리학을 배우게 했다는 말. 현전하는 이색의 문집인 <목은집>에는 많은 시문이 실려있는데, 이색의 시에는 고려의 풍습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짙게 나타남. 이러한 시는 ‘기속시’이고 최치원의 <향악잡영>이 효시. 이색은 이러한 기속시를 여러 수 남겼음. <그네>, <찹쌀밥> 등 (385쪽 확인) 이색은 인물전을 여러 편 지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됨. 이색이 쓴 대부분의 인물전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쓰였는데, 이들은 재능은 있으나 운이 좋지 않아 불우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한 인물인 ‘일사’였음. 이색이 쓴 전은 대부분 일사전에 해당함. 조선시대가 되면 인물전이 많이 창작되는데, 가장 많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사전임. 이색의 전은 이러한 일사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음. 선비를 대상으로 한 인물전은 이규보가 노극청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집필한 <노극청전>이 효시임. 그러나 이는 ‘일사’를 다룬 전이 아님. 따라서 일사전은 이색이 효시라 할 수 있으며, 당시 신흥사대부의 연대 의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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