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해동도가와 새로운 질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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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책에 대한 전체적 조망 === 세 책을 통해 16세기 도가의 인물들이 대체로 지방에 거주한 한미한 집안 출신의 선비, 혹은 하층 신분 춘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이들은 지배 질서의 주변부에 속한 인물로서, 유교와 판연히 다른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었음. Ex) 이혜손(위한조의 스승): 한미한 사족, 집이 가난해 혼적농상함. 위한조: 북쪽 변방 갑산 출신. 조여적: 평안도 사람,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실의지사, 전우치: 개성출신의 한미한 인물 ㅡ> 16세기의 도인들은 대개 지체가 한미하며 불우한 인물들이었음. 또, 세 책을 통해 17세기 들어 도맥이 계보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물론 이 계보가 사실이라고는 여길 수 없지만, 이 계보화를 통해 어떠한 사상적 지향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실/비사실을 따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님.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청학집>과 <해동이적>이 모두 단군을 해동 선가의 시원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함. 도가의 주체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정렴, 한무외, 위한조, 조여적, 남궁두, 윤군평, 전우치 등의 인물들을 모두 16세기의 인물이며, 몇몇은 17세기 전~중기 까지 생존하였음. -> 이를 통해 16세기에 들어서 선풍이 현저해졌음을 알 수 있음. 16세기는 조선 성리학의 심화기임과 동시에 이인들의 시대라고도 부를 수 있음. 16세기에 도가를 추구한 이인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체제 모순의 심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성리학 이념을 근간으로 <신분적 차등과 사대존화>라는 틀이 공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한미한 출신의 인물들이 나서기 힘들어졌음.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자아를 실현할 방도를 찾기 어려웠음. 그래서 지배 질서의 기초가 되는 ‘유교’를 벗어나 도가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한 것임. ->이러한 지향은 대내적으로는 신분적 차별이나 젠더적 차별의 완화 / 부정으로 이어지고, 대외적으로는 존화주의의 거부와 민족 주체성의 강조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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