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김려와 이옥, 근대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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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배기의 김려 === 김려는 함경도 부령에서 3년 5개월, 남쪽의 진해에서 5년 4개월, 9년가까이 유배생활을 하였음. 김려는 부령의 한 기생과 깊은 사랑을 나누고 그곳의 토착민들과 사귀며 우정을 나누었는데, 정약용이나 이학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할 수 있음. -> 이러한 차이는 유배지에서 비롯됨. 김려가 유배간 부령은 남방과 풍토가 달랐기 때문. 그러나 김려가 이들과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이었떤 것이 가장 큰 이유일듯. 김려는 자유분방하고 직정적인 기질의 인간이라 부령의 기생이나 병사, 이민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음. 이 때문에 김려의 유배생활은 특이한 양상을 보임. 부령은 아주 거친 땅이고, 이곳의 사람들은 호랑이나 곰 같은 야생동물을 상대하며 살아가야 했음. 김려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북방의 거친 자연을 만나고, 지배층의 수탈과 싸우는 민중들의 삶을 목도하게 됨. 또한 이 과정에서 기생이나 이민들과 같은 하층민에게도 고귀한 덕성과 인간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됨. 즉, 김려는 부령에서 삶의 다른 접촉면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척박한 삶의 조건에서도 의연하게 살아가는 북방 민중에게 큰 애정을 가지게 되었음. ->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김려의 인식과 문학은 유배 이후 크게 바뀌게 되었음. 특히 여성과 민중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음. 김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다른 작가들과 확연히 다름.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인격을 가진 독립된 주체로서의 여성’으로 여기었고, 평등한 관계속의 주체이자 친교의 대상으로 여기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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