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무신란 이후의 문학과 신진사류의 의식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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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보와 진화 === <한림별곡>에 등장하는 문인 중 이 시기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은 이규보와 진화. 이들은 고려 전기의 귀족 문인과 구별되는 신진사류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었음. 이규보는 25살에 <백운거사전>과 <백운거사어록>을 지었음. 이 글들은 벼슬하기 전에 지었던 글들로 자전임. 제목에 붙어 있는 ‘백운거사’는 이규보의 호. -> 이를 통해 이규보가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 <백운거사전>과 <백운거사어록>은 우리 문학사 최초의 자전. “백운은 내가 사모하는 것이다. 사모하여 그를 배운다면 비록 그 실을 얻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비슷해지기는 할 것이다. 대저 구름이라는 것은 바람을 따라 흘러가 산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며 하늘에 매여 있지도 않다. (...) 뭉게뭉게 퍼져 나가는 모양은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는 것과 같고, 오므려 자신을 마는 모양은 고상한 사람이 은거함과 같다.” - <백운거사어록> -> 이규보는 이러한 백운을 배워 세상에 나아가 ‘물’을 윤택하게 하고, 세상에서 물러나서는 마음을 비워 흰빛을 지키겠노라고 말함. 물은 백성 / 국가. 사대부의 도리를 천명한 것. <백운거사전>에서는 자신의 본성이 방광하고 무검하다고 말함. -> 자유롭고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 또 ‘나는 도연명과 같은 무리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술을 마시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는 말도 있음. 이러한 내용은 <한림별곡>의 내용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음. => 이규보의 두 글 속에는 자유롭고 방달하며 진취적인 정신이 느껴짐. 이러한 감수성은 세련되고 폐쇄적인 고려 전기 귀족문인의 미의식과는 차이가 있음. 진화는 글을 잘 지어 당대 이규보와 더불어 뛰어난 문인으로 불렸음. <고려사> 열전 윤곤전에 부기된 윤세유전에 최충현이 이규보와 진화를 불러 시를 짓게해 한림 금의로 하여금 평가하게 했는데, 이규보가 1등, 진화가 2등을 했다는 말이 있음. 진화의 시로는 금나라에 사신 가면서 지은 시인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들어가다>가 유명함. “서쪽 중국은 이미 쇠잔하고 / 북쪽 변방은 아직 몽매하도다. / 앉아서 환한 아침 기다리나니 /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떠오르려 하네.” -> 진화의 시는 단문이지만 기상이 높고 그 스케일이 방대함. 서쪽 중국은 남송을, 북쪽 변방은 금나라를 가리킴. 국제 정세를 읽으며 결국 동아시아의 문명은 동쪽 땅 고려에 기대야 한다는 내용. 시인의 고려에 대한 자긍심이 나타남. 즉, 진화의 시에서는 동아시아에 대한 사유와 함께 진취적인 민족적 의식이 드러난다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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