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문학적 대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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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한잡저 2> ==== 김시습의 문집인 <매월당집(梅月堂集)>에는 잡저(雜著)라는 제목의 저술이 둘 실려 있음. 1. 도교를 논한 것. (청한잡저 1) 2. 불교를 논한 것 (청한잡저 2) -> 모두 10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객과 청한자(淸寒子)의 문답형식을 취하고 있음. 청한자는 김시습의 또다른 호임. 문답 형식으로 저자의 사상을 펼치고 있음. (18세기 홍대용이 쓴 <의산문답>을 떠올리게 함.) 형식적 세련도로 볼 때 도교를 논한 글이 먼저 쓰였고, 이후 불교를 논한 글을 쓴 것으로 보임. 둘 모두 금오산 시절 쓰인 듯함. 김시습은 유학자이면서 불교학자이기도 하였음. <청한잡저 2>에서는 유교를 의식해 불교를 논하면서도, 불교의 의의를 적극 긍정하고 있음. 또한 일목요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책임. “부처의 법은 청정과 과욕에 있으므로 만물과 다투지 않으니, 산속에 있으면 그 도가 높고, 인간 세상에 행해지면 그 법이 엄합니다.” (3, 삼청) “이른바 부처의 도란 (…) 그 광대한 이로움이 무궁합니다. (…)” (6. 양무제) -> 불교의 가르침이 비단 출세간만 아니라 세간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음. 한편,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를 유교의 ‘인애(仁愛)’로 가져와 그 사회적 정치적 효용을 부각시키기도 하였음. “석가의 근본 뜻은 자애를 우선으로 삼으니, 임금 된 자로 하여금 백성을 사랑할 바를 알게 하고, 아비 된 자로 하여금 자식을 사랑할 바를 알게 하며, (…) 위로는 그릇되고 어긋난 정치가 없게 하고, 아래로는 시해하고 반역하는 생각을 끊게 함으로써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평온하게 살면서 (…) 그러므로 비록 인이니 의니 하는 말은 없으나 (…) 깨우침이 이미 인의의 자취를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니, (…)” (5. 송계) (본책 87쪽) -> 불교와 유교를 적극적으로 회통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 불교를 통해 유교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키고 있기도 하고, 유교를 통해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꾀하고 있음. 따라서 김시습의 회통은 ‘상호적’임. 김시습은 특히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서 불교의 가치를 논하고 있는데, 석가로 인해 “억세고 용맹한 자가 전쟁을 그치고, 패역한 자가 찬탈을 그치며, 꾀 많은 자가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고, 어진 자가 상도를 지켜” 인도가 성인의 땅이 되었으니, 석가는 은의 탕왕이나 주의 무왕과 대등하다고 하였음. 또, <남염부주지>에서도 석가의 말은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라고 하기도 하였음. 김시습이 불교의 사회적, 정치적 의의를 크게 긍정하고 있는 점은 매우 독특하다 할 수 있음. 김시습의 독특한 불교에 대한 해석 역시 수양대군에게서 기인함. 세조는 호불(好佛)의 군주였음. 왕이 되자 많은 불사를 일으켰고, 많은 불경을 국문으로 발행해 간행했고, 도성 한 가운데 원각사를 짓기도 했음. 김시습은 불교를 긍정했지만, 세조의 이러한 불교 숭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짐. <청한잡저2>에서 중국 남조 양나라 무제의 호불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는 왕위를 찬탈했다는 점에서도 세조와 유사함. 김시습은 양무제의 부처 숭배가 부처의 가르침과는 어긋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음. 객과 청한자가 주고 받은 문답을 보면(89쪽), 큰 돈을 들여 화려한 절을 짓는 등 불사를 일삼는 것은 부처가 바라는 바가 아니며, 임금이 복을 닦아서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백성 사랑하기를 어린 자식처럼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애민의>, <방본잠>등의 유교적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애민적, 반전제적 입장과 동일한 기초 위에 있으며, 세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개재되었다고 볼 수 있음. -> 즉, 세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인민적 맥락에서 불교를 새롭게 해석해 낼 수 있게 됨. <청한잡저 2>는 불교적 텍스트지만, 유교적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애민적’ 입장이 보임. '''김시습의 애민적 입장이 그가 유교와 불교를 회통시키고, 유교와 불교 상호에 대한 심화된 이해와 성찰을 가능하게 한 근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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