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문학적 대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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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사진찬> ==== 충청도 홍산현 무량사에 거처할 때 작성한 글로, 자화상에 찬(贊)을 붙인 것. 김시습 스스로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세상에 남기는 말로 볼 수 있음. * 찬(贊): 인물을 찬양하는 운문체의 글. 문인들 중에는 자찬의 글을 남긴 사람들이 많음. 김시습의 이 글은 자찬(스스로를 찬미하다)한 글로만 보기는 어렵고, 김시습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대해 남긴 평가라고 보임. 따라서 이 자찬은 김시습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글이라 여겨짐. 이하(李賀)를 내려봤고 해동에서 뛰어났네 -> 이하는 당나라의 뛰어난 시인으로 7살에 지를 지은 것으로 유명, 자신은 5살에 지를 지었기 때문에 내려보았다 한 것. 자신의 시재(時才)에 대한 자부. 높은 명성과 부질없는 칭찬 높은 명성과 부질없는 칭찬 네게 어이 해당하리, 네 몸은 지극히 작고 네 말은 크게 어리석다. -> 자신에 대한 냉철한 직시이며, 약간의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함. ‘어리석다’는 말은 타인의 시선이며, 이를 통해 김시습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객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김시습은 세상과 어긋나는 삶을 살았고, 이는 타인의 시선에서 ‘어리석은’ 것,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견지하고자 하였음. (구렁이라네) 너를 내버려야 할 곳은 구렁이라네. -> ‘구렁’의 원문은 구학(溝壑), 땅이 움푹 팬 곳을 말함. 기근이 들면 백성들의 시체가 나뒹굴곤 했음. 이는 맹자의 “지사불망재구학(志士不忘在溝壑: 지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지킴.)”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말, 즉, '''김시습은 죽을 때까지 절의에 대한 태도를 견지하였음을 알 수 있음'''. 이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의 여성 주인공들이 죽음 앞에서 보여준 태도와 동일. <자사진찬>에 묘사된 김시습의 모습은 유교적 의미의 충신뿐만 아니라, 불의한 세계와 맞서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저항적 지식인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함. * <자사진찬>은 <매월당집>의 표기와 무덤에 세워진 표석, 율곡 이이의 <김시습전>의 표기가 다른데, <매월당집>에는 ‘구학’이 丘(언덕 구)壑, 나머지에는 溝壑으로 표기됨. 丘壑으로 해석한다면 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이 되어, 그윽한 산수를 의미하게 됨. 이러한 글자 변경은 김시습의 불온성을 완화하거나 없애기 위해서라고 생각됨. * 또한, 김시습의 자화상 역시 왜곡이 가해졌는데, 목의 염주 목걸이가 사라진 것임.이는 김시습의 승려로서의 정체성을 지우고, 유자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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