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고려 말 신흥사대부층의 형성과 그 문학
편집하기 (부분)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신흥사대부층의 문명 의식과 주체성 === 이승휴는 13세기 후반에 활동한 인물로, 충렬왕 13년인 1287년에 <제왕운기>라는 책을 썼음. <제왕운기>는 우리나라 역사가 단군조선에서 시작해 기자조선으로 이어지며, 삼국시댜를 거쳐 통일 신라시대와 고려 시대로 이어진다는 인식을 보여줌. -> 자국 역사에 대한 주체적 인식. 고려가 지리적, 문화적, 종족적으로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음. 이제현은 <연경에서 중서 도당에 올리는 글>을 통해 충숙왕 10년 일어난 부원배들의 ‘입성책동‘을 반대하였음. 입성책동은 고려가 원나라의 지방 행정 기구인 성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운동임. 이제현은 고려가 개국한지 400년이 지났꼬, 언어와 풍속이 중국과는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입성이 옳지 않음을 강조함. 이 글은 입성 저지에 기여하였음. 이색도 이승휴와 같이 우리나라가 단군조선부터 시작해 유구하게 이어져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 <잡흥>, <정관음>이라는 시에서 확인할 수 있음. (396~398쪽 시 확인) 이처럼 자국 문명에 대한 긍지와 자국 역사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여말의 사대부들에게서 확인되고 있음은 중요하나, 두 가지 문제점도 함께 발견할 수 있음. 1. 이들의 문명의식이 기본적으로 중화의 문명을 전범으로 삼고 있다는 점. <nowiki>:</nowiki> ex) 소악부: 백성에 대한 관심, 자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나, 향찰 표기처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 아닌 한문으로 번역, 번안했다는 것에서 이러한 인식을 알 수 있음. 2. 기자조선의 강조 <nowiki>:</nowiki> 이승휴와 이색은 요와 단국의 병립설을 제시하였음. 이는 주체성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만, 단군의 계승에 ‘기자‘를 강조한 것은 중국 문명이 전범이며 따라야할 보편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음.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문명의식은 주체성과 종속성의 모순적 통일이라 할 수 있음. 이러한 인식은 이들을 통해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에까지 이어지게 됨.
요약:
DHinDS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DHinDS: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
토론
기여
계정 만들기
로그인
이름공간
문서
토론
한국어
보기
읽기
편집
원본 편집
역사 보기
더 보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