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문학적 대응들
편집하기 (부분)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남효온의 <육신전> === 남효온(1454~1492)은 왕위 찬탈에 맞선 작가, 김종직의 문생. 김시습보다 19살 어림. 사육신(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의 전기인 <육신전>을 써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정면으로 비판함. -> 남효온의 문생들이 이 글로 인해 자신들에게 화가 올 것이 두려와 집필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지만, 남효온은 굴하지 않음. <육신전>에서 남효온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지조를 지킨 인물들의 최후를 그려내고 있음. 특히 주목할 부분은 성삼문과 유응부에 대한 서술임. 성삼문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안색에 변함이 없었다’는 것과 죽음 앞에서도 ‘안색이 태연했다’는 것이 부각되고 있음. 유응부는 달군 쇠를 배 아래에 놓는 고문에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는 서술이 나타남. 또한 사육신 중 유일한 무인인 유응부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음. 남효온은 사육신의 사건이 있었을 때 6살이었으므로, <육신전>은 그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훗날 전해 들은 일에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한 것으로 보임. 그래서 상당한 극화(劇化)가 가미되어 있고, 그 속에는 작가의 태도와 가치 의식이 투사되어 있다고 여겨짐. 이 작품은 고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주목됨. 우리 문학사에 이러한 작품은 <육신전> 뿐임. 또한 끝내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함. 이러한 점에서 <육신전>은 우리 문학사에서 불후의 위업으로 평가될 만함. 김시습이 <금오신화>에서 은유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 태도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냈다면, 남효온은 <육신전>에서 거사직서(據事直書)로 기술하는 방식으로 삶에 대한 가치태도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드러냈음. * 거사직서: 사실을 직필(直筆)로 기술하는 방식. 두 작품은 미적 방식은 다르지만 지향에 있어서는 동일함, 또한 두 사람이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교유했다는 점에서 <육신전>의 창작에는 <금오신화>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음.
요약:
DHinDS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DHinDS: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
토론
기여
계정 만들기
로그인
이름공간
문서
토론
한국어
보기
읽기
편집
원본 편집
역사 보기
더 보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