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문학적 대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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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제의 <수성지>, <원생몽유록> === 임제(1549~1587)는 김시습 사후 50년, 남효온 사후 57년에 출생했고, 무인 집안 출신임. 29살인 선조 10년 문과에 급제해서 서북도 병마평사, 예조정랑 등을 지냈음. 임제의 작품으로는 <수성지>, <원생몽유록>이 전함. <화사(花史)>는 임제의 작이 아닌 남성중이 숙종 28년에 창작한 작품. <화사>에서는 숙종 연간의 당쟁이 비판되고 있는데, 16세기에는 <화사> 수준으로 당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했음. <수성지>의 수성(愁城)은 근심으로 가득찬 성을 말하는 것. 이 작품은 임제의 수심(愁心)과 분한(憤恨)이 가득한 내면세계를 잘 보여줌. 오로지 술로 수심을 풀 수 있다고 함. “초나라 의제는 강에서 죽었으니, 나라를 빼앗는 것만으로도 족하거늘 어찌 차마 죽인단 말인가. 충신의 눈물 다하지 않고, 열사의 한 다함이 없다.” 항우는 의제를 참현으로 내쫒은 뒤 의제를 살해하였는데, 임제는 이를 <수성지>에서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음. <수성지>에는 중국 역대의 충성스러운 인무들이 차례로 서술되는 대목이 있음. 끝부분을 보면 “그 맨 뒤에는 중국의 제도와는 다른 의관을 갖춘 이들이 있었다. 500년 강상(綱常)의 무게를 제 한 몸에 짊어진 한림학사(翰林學士)와 호두장군(虎頭將軍) 대여섯 사람이 무리 지어 당당하게 들어왔다.” 강상은 인륜 도덕, 즉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고, 한림학사는 집현전에 근무했던 성삼문 등, 호두장군은 유응부를 가리킴. 즉, 이 부분은 사육신에 대한 서술인 것. -> 이처럼 <수성지>에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비판과 사육신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음. <수성지>는 고려 후기에 등장한 가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 가전에는 술을 의인화한 <국선생전>, <국순전>, 거북을 의인화한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같은 작품들이 있음. 가전은 많은 고사와 전거가 구사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수성지> 역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마음을 의인화한 ‘천군(天君)’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임. 고려 후기의 다른 가전 중에서는 마음을 의인화한 가전은 없음. 천군을 주인공으로 한 가전인 <천군전>은 남명 조식의 제자인 김우옹이 1566년에 처음 창작하였고, <수성지>는 1580년에 창작되었음. <수성지>는 <천군전>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지만, 가전이 아닌 소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 <수성지>는 동아시아 문학사에서 오직 우리 문학사에만 보이는 ‘천군소설(天君小說)’의 출발점을 이룸. 이후 17세기 전반기에 황중윤이 장회체 장편소설 <천군기>를 창작하고, 17세기 후반에 정태제에 의해 보수적인 방향으로 수정되게 된다. (<천군연의(天君演義)>)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은 ‘원생이 꿈에 노닌 기록’이라는 뜻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몽유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최초의 소설임. 단 한 세대 앞의 문인인 심의가 <기몽(記夢: 꿈을 기록하다)>이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실제적으로는 꿈에 문인의 왕국에 가서 노닌 일을 기록한 몽유록에 해당함. <기몽>은 별 문제의식이 없는 희필적(戱筆的) 성격의 글이지만, <원생몽유록>은 심각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음. * 심의의 <기몽>: 대관재몽유록 (大觀齊夢遊錄), ‘대관재기몽(大觀齋記夢)’ 또는 ‘몽기(夢記)’라고도 한다. 중국문학사에도 <침중기>처럼 꿈을 꾸고, 꿈속에서 서사가 완성되는 ‘몽유록’과 비슷한 작품들이 존재하지만, 독자적인 양식으로 존재하지는 않음. 그러나 한국에서는 몽류록이 독자적인 소설 양식으로 간주되고 있음. <원생몽유록>은 원생이 꿈에서 단종과 사육신, 남효온을 만나는 이야기임. 꿈에서 단종과 사육신은 저마다 시를 한 수씩 읊으며 비감을 표하는데, 다음은 남효온이 한 말. “요임금과 순임금과 탕왕과 무왕은 만고의 죄인입니다. 후세에 음흉한 농간을 부려 왕위를 찬탈한 자들이 선양(禪讓)받았다며 요순을 빙자하고, 신하로서 임금을 공격한 자들이 탕왕과 무왕을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 아아 이 네 임금이 도적의 효시입니다.” * 요, 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양함. (선양: 덕이 높은 신하에게 왕위를 물려줌.) * 탕왕, 무왕: 탕왕은 자신이 섬기던 하나라의 군주 걸을 쫒아내고 은을 세웠고, 무왕은 은나라의 군주 주를 몰아내고 주를 세움. -> 위 선양과 탕왕과 무왕의 방벌(放伐)은 나라를 도적질하는 행위의 효시라는 것. 남효온의 말은 곧 작자의 생각이라 할 수 있음. 작자인 임제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 후 단종에게 왕위를 선양받은 것을 비판하기 위해 이러한 말을 한 것. 요순, 탕왕, 무왕은 모두 유교에서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사람들임. 그런데 <원생몽유록>에서는 이들을 ‘만고의 죄인’으로 칭하고 있음. 이는 유가의 정치사상과 크게 어긋난 생각이며, 위험한 생각이라 할 수 있음. 유교의 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이며, 성인에 대한 전복적인 사고이며, 이러한 생각은 수양의 왕위찬탈로 인해 낳아진 사유라 할 수 있음. 그런데 김시습도 <백이, 숙제를 찬미하다.>라는 글에서 (내용 104쪽) 임제와 동일한 사유를 보여줌. 김시습 역시 수양의 왕위찬탈로 유교 경전을 재해석하게 되면서 일반적인 성인관과는 다른 사유에 도달하게 됨. <원생몽유록>은 <육신전>의 ‘속편’이라고 할 만함. 임제는 남효온의 육신전을 읽고 감명을 받아 이 작품을 쓴 것으로 보임. 이후 <원생몽유록>을 계승해 <수성궁몽유록(운영전)>, <달천몽유록>, <강도몽유록> 같은 작품들이 나옴. 임제는 소중화 의식에서 탈피해 주체적 의식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의식의 성립은 <원생몽유록>에서 확인되는 유교에 대한 과감한 전복적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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