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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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편의 <달천몽유록> === 1. 윤계선의 <달천몽유록> 2. 황중윤의 <달천몽유록>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문경새재 쪽으로 진군했는데, 이 때 신립의 실책으로 인해 조선군이 궤멸하게 됨. 많은 사람들이 달천강에 빠졌는데, 시체가 떠올라 강이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고 함, 그래서 작품 제목에 ‘달천‘이라는 명칭이 들어가게 됨. 윤계선은 선조 10년에 태어나 선조 37년에 세상을 떴음. 호는 ‘파담’. 선조 30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33년 충청도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석 달간 충청도 여기저기를 다님. 돌아와 사헌부 지평으로서 우의정 이헌국을 심하게 비난한 일로 황해도 웅진 현감으로 쫒겨났는데, 이때 암행어사 시절의 견문을 토대로 <달천몽유록>을 지었음. 이 작품의 몽유자는 ‘파담자’로 되어 있는데, 이는 곧 윤계선을 가리킴. 파담자는 꿈속에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순신, 고경명, 최경회, 송상현, 김천일, 조헌, 신립, 영구 등 27명의 인물을 만나 그들의 말을 들음. 꿈에서 깬 후에 장문의 제문을 지어 그들을 애도함. 입몽 도입부의 다음 구절에는 충주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참혹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음. 주목할 점은 신립 이외의 인물은 모두 우호적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신립은 부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임. (신립이 문경새재를 지켜야한다는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패했다고 봤기 때문) 작품 말미 파담자의 제문에서는 27명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 신립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8천 명의 굳센 병사들은 왜 헛되이 죽어야 했습니까?“라는 평가를 내림. 윤계선의 <달천몽유록>>은 꿈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발언한다는 점에서 임제의 <원생몽유록>부터 계승된 몽유록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 10년 뒤 황중윤이 동일한 제목의 작품을 창작함. 황중윤은 명종 12년에 태어나 인조 26년 사망하고, 정구의 문생으로써 퇴계의 학맥을 잇고 있다 할 수 있음. <달천몽유록>이외에도 <천군기>, <사대기>, <옥황기> 등의 소설을 남김. 황중윤은 몽유록에서 윤계선의 <달천몽유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음. 윤계선은 신립의 전술적 실책을 비판하였지만, 황중윤은 신립을 변호함. è 당시 조선에는 무비가 없었고, 병농일치의 병제로 인해 정예병을 기를 수 없던 것이 패전의 원인이지, 신립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는 의견. è 윤계선이 통념에 따르고 있다면, 황중윤은 패전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차이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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