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김려와 이옥, 근대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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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시절의 작품들 === 현전하는 이옥의 작품 중 주목되는 것들은 대부분 성균관 시절에 창작된 것임. Ex) 소설 <심생전>, <이홍전>, <부목한전> / 산문 <중흥사 유기>, <시간기>, <이언>인(引) / 희곡 <동상기> 이옥은 충군과 관련된 일로 1795년, 1799년 두 차례 삼가현에 갔었는데, 이 때 두 편의 글을 남김. 1795년에는 <남정십편(남쪽으로 귀양갈 때 쓴 열 편의 글)>. <남정십편> 중의 한 편이 <옥변(집에 대한 변)>인데, 현감으로 있던 박지원을 만난 뒤 쓴 글임. 당시 박지원은 벽돌을 이용해 관아 건물을 지었다가 중국식 건물을 지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는데, 이옥은 박지원을 변호하며 이 세상에 중국에서 유래하지 않은 집이 어디 있는가?라는 논리를 펼침. (박지원 역시 1793년 정조로부터 문체와 관한 견책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문체 탄압을 받은 인물 간의 만남이라 할 수 있음.) 1799년의 <봉성필>은 영남의 토속, 구전되는 이야기, 방언, 세태, 인물, 역사, 유적, 경관 등 잡다한 내용을 필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임. 총 64항목인데 항목마다 제목이 붙어 있음. 봉성필 중 <언패(국문소설)> 항목에서는 어떤 사람이 인본(印本, 방각본) <소대성전>을 기져와 읽으라고 했다는 말이 나옴. -> 이를 통해 18세기 말 이미 방각본 국문소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음. 김려는 이옥이 죽은 뒤 <담정총서>에 <봉성필>을 <봉성문여>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실어놓았음. 봉성은 삼가현의 다른 이름. ㅡ> <남정십편>, <봉성필>의 흥미로운 점은 소품체로 인해 견책을 받아 편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이 모두 소품체라는 것임. Ex) <봉성문여(봉성필)>의 시기(市记, 저자에 대한 기록): 저자의 풍경을 서술한 글로, 무수한 열거법을 통해 장터의 풍경을 묘사함. 이옥은 정조의 문책에도 불구하고 소품체 글쓰기에 익숙하여 소품체 글을 계속 쓴 것으로 보임. 소품체에 익숙한 사람은 고문을 쓰기 어렵고, 고문에 익숙한 사람은 소품체 글쓰기가 힘들기 때문.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소품체와 고문에 해당하는 글 모두를 구사했는데, 이는 박지원이 이옥과 달리 고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해 20대 이후 소품을 배웠기 때문임. 또한 박지원은 원래 문재가 뛰어나 뭐든 잘 구사할 수 있던 것으로 보임. (하지만 박지원도 문체반정 이후 주로 고문을 사용하고 패사소품체는 쓰지 않았음.) 이옥은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 소품체 글을 썼지만, 성균관 시절처럼 혁신적인 글을 쓰지는 못함. 문학에 대한 권력의 탄압이 발전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음. 소설과 패사소품적 전 이옥은 <심생전>, <이홍전>, <부목한전> 같은 소설과 20편여의 전을 남겼음. <심생전>은 비극적 애정전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작품으로, 조선시대의 마지막 비극적 애정전기 작품임. 이 소설은 여성의 심리 묘사가 곡진하고, 남녀 주인공의 신분 갈등에 작자의 불우감이 깊게 투사되어 있음. <이홍전>은 피카레스크 소설(15~16세기 스페인에서 처음 등장한 문학 장르의 하나로,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을 도덕적 결함을 갖춘 악인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이끄는 것을 가리킨다.)에 해당하는데, 사기꾼 이홍의 개성이 잘 나타남. <부목한전>은 이인(異人)에 속하는 부목한(절에서 밥 짓고 물 기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신비주의에 대한 경도를 보여줌.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작품 말미 작가의 논평임. “속담에 같은 동네에 명창 없고, 동접에 문장없다는 말이 있다. 중국의 월에 신선이 있고 촉에 부처가 있다라고 말하면 믿지만, 우리나라 아무 산에 신선과 부처가 있다”라고 말하면 믿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아무 산이 촉이나 월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촉이나 월에 해당하는 줄 알기나 하는지.“ ㅡ> 자국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볼 수 있음. 이옥은 무조건적인 화풍에 대한 경도보다는 토풍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존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 <남정십편>과 <봉성문여>에서는 ‘방언’이라는 항목이 들엉 있어, 지방어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줌. ㅡ> 즉, 중심과 주변의 우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가치가 대등하다는 입장을 나타내는 것. <이언>의 서문인 ‘삼난’에서도 동일한 생각이 발견됨. “초나라에서는 초나라 말을 하고, 제나라에서는 제나라 말을 하며, (…) 오나라에서는 오나라 말을 한다. (...) 나를 따라온 한 호서인이 여관에 들어 주인과 말하면서 지금을 일컬어 ‘산대’라 하고, 가을을 일컬어 ‘가슬’이라 하니 영남인 주인이 크게 웃는다. (…) 나는 호서인이 영남인의 말을 듣고 웃는 것이 옳은 지 영남인이 호서인의 말을 듣고 웃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또한 호서인과 영남인이 나 같은 사람의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지 어찌 알겠나.“ ㅡ> 모든 나라나 지방은 각각 그 나라, 지방의 말을 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각 지방, 나라의 말은 대등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음. 한국고전문학사에서 이옥을 제외하고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문인은 없음. 이옥이 창작한 전에는 패사소품적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 많고, 대부분은 소설적 지향을 다소간 보여줌. 이는 이옥이 구전서사를 수용한 것과 관련이 있음. -> 이옥의 패사소품적 전들은 형식은 전이어도 서사는 야담과 동일한 것이 많음. Ex) <부목한전>, <협효부전(산골에 살던 효성스러운 며느리 이야기> 등. 이러한 작품은 구연되던 이야기를 듣고 쓴 것으로 보임. 야담의 성립과 같은 과정을 보여줌. 이옥의 전은 작품 뒤에만 사설이 붙는 보통의 전과 다르게 작자의 말이 작품의 서두에 붙어있거나, 앞 뒤에 다 붙어 있기도 함. 이옥의 의론을 제외하고 서사만 본다면 이러한 전들은 모두 야담과 같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경계가 모호함. (박지원의 <광문자전>, <허생전> 등은 야담과 구분이 가능한 것과 대조) <유광억전>이나 <장복선전>, <가자송실솔전>은 야담을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패사소품에 속함. 특히 <각로선생전(흰 머리를 뽑는 족집게에 대한 글)>은 특이한 패사소품. ‘나‘와 ’혹자‘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우한 삶을 살다 노년을 맞이한 이옥의 모습이 족집게인 ’각로선생‘에 투영되어 있음. 이옥이 죽기 4년 전인 순조 9년 창작되었음. 이옥의 소설이나 전에 등장하는 주인공에는 변변한 양반이 없음. 일사(逸士, 세상을 등지고 숨어사는 선비) 조차 없으며 주변부에 속한 한사(寒士, 가난하거나 권력이 없는 선비)혹은 민간이나 여항의 비천한 인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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