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속의 인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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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제적 개인의 등장과 새로운 전망 ‘문제적 개인’: 근대 유럽의 리얼리즘 소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 -> 소설은 ‘문제적 개인’을 찾아가는 과정, 조화를 꿈꾸는 개인과 조화가 무너진 세계의 불일치에서 출발함. 문제적 개인은 낯선 세계 속에서 자신의 개별성을 넘어 이상적인 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이상적인 세계도 문제적 개인이 존재해야 실체가 나타날 수 있음. è 따라서 뤼시앵 골드망에 따르면 소설은 ‘보편적 가치가 사라진 허위의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세속적인 방식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라 하였음. 즉, 소설이란 개인의 자서전인 동시에 사회적 역사. <최척전>, <운영전>을 문제적 개인의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소설의 ‘전형’에 매우 근접한 인물 형상을 보여줌. (구체적인 시대, 시대와의 갈등(임병양란) 속의 입체적인 인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 17세기 전반 우리 소설이 ‘문제적 개인’의 삶을 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임병양란 속 개인의 삶이 동아시아의 세계 변동과 맞물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제적 작가가 전쟁 이후 세계에 대한 환멸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음. (1) 역사 속의 인간 운명 <최척전>은 조위한이 1621년 창작한 작품. 조위한은 전의 형식에 입각해 작품 말미에 논찬을 붙였는데, 말미에 창작 동기를 밝힘. “(…) 최척이 찾아와 위와 같이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주고는 그 전말을 기록하여 사라지지 않게 해 달라고 청했다. 최척의 요청을 사양하지 못하여 대략 그 줄거리만을 들어 기록하였다.” 이 논찬 뒤 “천계 원년 신유년(1621) 윤 2월 소옹이 쓰다.“라는 기록이 있어 창작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음. <최척전>은 최척과 옥영의 결연 과정에서 시작해 그 가족이 역사 변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별하고, 재회하는 과정을 그렸음. 30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조선, 중국, 일본, 베트남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작품의 스케일이 매우 큼. 작품을 최척과 옥영이 결연하는 과정의 ‘전반부’, 결연 이후 최척 일가가 이별하고 재회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음. ‘전반부’는 작품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그 자체로 훌륭한 애정전기를 이룸. 후반부는 전계소설의형식에 대응하며 내용상으로는 최척의 ‘전’이며 동시에 옥영의 ‘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주인공의 활약이 두드러짐. è 압도적인 경험 소재와 분량의 측면에서 볼 때 ‘전계소설’을 뼈대로 삼고, 주인공의 결연 부분을 애정전기의 형식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을 듯. 전반부 최척과 옥영의 결연과정) <최척전>은 최척의 신원 기술로 시작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전의 서두와 흡사함. “최척은 자가 백승이고(…) 자잘한 예의범절에 얽매지이지 않았다.“ 최척이 있던 남원은 당시 임진왜란 중이었어도 진주성 싸움과 수군의 활약으로 초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음. 최척의 부친은 최척이 전쟁에 징발될까봐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과거 공부에 전념하도록 하였음. —> <최척전>에서도 전쟁은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 후대 영웅소설 영웅들의 ‘전쟁’인식과는 다름. 최척은 부친의 친구인 정상사를 스승으로 삼아 과거 공부를 시작했는데, 정상사의 집에서 인연이 시작되게 됨. “최척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홀연 창문 틈으로 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최척이 쪽지를 주워보니 시집 못간 여자가 짝 구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인 <서경> 표유매의 마지막 장이 적혀 있었다. (…)” 애정전기다운 면모. 이후 최척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여종이 따라 나와 쪽지를 보낸 것이 옥영임을 알려줌. 최적은 옥영의 마음을 확인하고 답을 써준다. “(…) 우리 두 사람이 월하노인의 실로 엮인다면 삼생의 소원이 이루어져 백년해로의 맹세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화려한 변려체로 이루어진 최척의 편지에는 애정전기의 전고가 사용되고 있음. 최척의 편지를 받은 옥영도 변려체가 섞인 정갈한 문장으로 답장을 보냄. “(…) 하지만 저의 더 큰 근심은 어찌하면 훌륭한 남편을 만날까 하는 것이랍니다. (…)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낭군의 첩이 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 낭군께 시를 던지는 아름답지 못한 행실을 제가 먼저 했고, 게다가 사사로이 편지를 주고받기까지 해서 여자의 그윽한 정조를 더욱 잃고 말았습니다. (…) 지금 이후로는 반드시 매파를 통해서 혼사를 의논하도록 하고, 제가 부정하게 외간 남자와 놀아난다는 조롱ㅇ 을 받지 않게 마음 써주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임진왜란을 피해 남원으로 피난을 온 옥영도 전쟁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 서둘러 혼인을 해야할 형편이지만 옥영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맞는 이를 찾는 것. 옥영은 먼저 결연을 청한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음. -> 애정전기의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 비해 적극적인 경우가 많지만 옥영은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에 해당함. 이후 최척이 옥영과의 혼사를 추진하지만, 최척이 한미한 집안인 것을 보고 옥영의 모친이 반대함. 애정전기/ 후대 한글 장편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혼사장애‘. 대개의 여주인공과는 달리 옥영은 모친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최척과 혼인하겠다는 의사를 밝힘. “묵묵히 입 다물고 있다가 끝내 용렬한 사람에게 시집가 일생을 망친다면 어쩌겠어요.(…) 더욱이 제 처지는 다른 사람과 달라서 집에는 엄한 아버지가 안계시고 도적떼가 지척에 있으니 진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우리 모자의 몸을 의지할 수 있겠어요?(…) 깊은 규방에 숨어 남의 입이나 바라보고 있다가 제 몸을 위태로운 지경에 빠뜨릴 수는 없어요.“ 옥영의 정당성을 보중해주는 흠잡을 데 없는 논변. 파격적인 생각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음. <최척전>은 이처럼 여주인공의 형상만으로도 17세기 소설사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됨. 이후 최척과 옥영의 혼인이 성사되어 혼례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 ‘2차 혼사장애‘가 발생함. 의병장 변사정이 의병을 규합하며 활쏘기와 말 타기에 능한 최척을 차출해가고, 최척은 근심에 빠져있다가 병이 들게 됨. 혼례식 날이 다가와 휴가를 청했지만 거절당하고, 혼례식이 미뤄지게됨. 이후 ‘3차 혼사장애’ 발생. 이웃의 부자 양씨가 최척이 돌아오지 못하는 틈에 옥영을 아내로 맞이하고자 한 것. 옥영은 모친을 설득하는 것에 실패하자 자살을 기도함으로써 혼사 장애를 극복. 최척은 뒤늦게 부친의 편지로 상황을 파악하고 병이 더 깊어져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됨. 이후 고향에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병이 다 나았고, 혼례를 올리게 됨. 애정전기의 주인공다운 면모. (애정전기의 주인공은 사랑이 없으면 목숨을 잃고, 사랑을 찾으면 생기를 얻게 됨.) 보통의 애정전기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최척전>은 최척과 옥영이 가정을 이룬 후의 이야기를 덧붙임. 이 과정에서 ‘장륙불’과 두 사람의 지음 관계에 대한 서술을 보충함. 최척과 옥영은 혼인 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만복사에 가서 불공을 드렸고, 1594년 정월 초하루 옥영의 꿈에 ‘장륙불’이 나타나 아들을 점지해주더니 아들 몽석을 임신하게 됨. 이 ‘장륙불’은 이후 서사의 고비마다 역할을 하게 됨. 애정전기의 주인공은 문학과 예술 등을 매개로 ‘지음’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은데, <최척전>에서도 전고를 총망라한 편지를 주고 받으며 마음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본격적인 지음관계가 분명해진 것은 몽석의 출생 이후 퉁소를 매개로 한 장면이다. “최척이 퉁소를 부니 소리의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 옥영이 시흥을 참지 못해 시를 지어 읊었다.(…) 푸른 난새 함께 타고 날아가리니 / 봉래산 안개 속에서도 길 잃지 않으리.“ 옥영의 시는 이후 최척전에서 두 사람의 재회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활용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 또한 마지막 구절은 사랑의 맹세이기도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험난한 앞 길을 암시하기도 함. 최척은 옥영의 이 시를 들은 뒤 재주에 놀라면서 화답시를 지음. 옥영은 최척의 시를 듣고 매우 기뻐하다, 기쁨의 정점에서 서글픈 감상에 젖게 됨.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한 뒤 지음이라고 여기게 됨. è <최척전>은 이렇게 전반부를 마무리짓게 됨.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는 과정은 2년 남짓이지만 이 내용은 전체 분량의 1/3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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