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 실존의 형식: 환멸과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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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생전> === 영웅소설에서 전쟁은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통해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기회지만, 애정소설에서 전쟁은 세계의 횡포일 뿐임. 권필의 <주생전>은 비극적 애정전기 계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임. * 전기소설: 중국 당대 성립, 이후 고유의 장르 관습을 계승, 변용하며 성장을 거듭한 ‘한문문언체 단편소설’. 14~16세기 전반 사이 중국의 <전등신화>, 한국의 <금오신화>, 베트남의 <전기만록>이 창작된 것과 같이 전기소설은 중세 동아시아 한문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성장 발전하였던 역사적 문학 장르임. * 당대 전기를 신괴, 염정, 호협의 세 유형으로 나누는데, 17세기 초까지의 우리 소설사에는 ‘염정’에 해당하는 애정전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음. -> 나말여초의 <최치원>에서 시작해 <금오신화>속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주생전>, <운영전>에까지 이름. 이 작품들은 비극적 결말을 취하고 있어 상당한 문제 환기력을 지님. <주생전>은 <최치원> 이래 이어져 온 한국 애정전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몇 가지 혁신을 시도하였음 1. 작품의 배경이 중국임. <nowiki>:</nowiki> 주생전의 주인공인 ‘주회’가 명나라 선비이고, 그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보니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가 됨.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였던 전례가 있지만, 금오신화를 비롯한 15~16세기 소설 작품을 보면 우리 애정전기의 전통은 배경을 외국으로 설정하는 일이 거의 없음. 따라서 <주생전>의 배경 설정은 이례적인 일. 이러한 배경설정은 작자가 현실에서 우연한 만남을 한 뒤 작품을 구성하였기 때문으로 보임. 권필은 작품의 마무리 대목에서 1593년 봄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대파하고 경상도까지 내려갔을때 주생이 중병으로 군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고 개성에 있었다고 서술한 뒤 에필로그를 붙여 <주생전>의 창작 배경을 밝힘. 이를 보면 작자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선비를 우연히 만나 그가 겪은 일을 듣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생전>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 당시 주생은 27세였고, 대대로 중국 강남의 항주에 살던 선비로 어렸을 때부터 시재가 뛰어났음. 18세에 태학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자부심이 높았고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었음. 그러나 몇 년동안 연거푸 과거에 낙방하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배를 한 척 사서 장사에 나섰음. 어느 날 호남성의 악양성에서 술에 취해 배를 띄운 채 잠들었다 깨보니 고향 항주에 와있었음. “안개에 싸인 절에서 종소리가 들려왔고 달은 서편에 걸려있었다. (…) 32쪽“ 몽환적인 이국 풍경이 서정적으로 묘사되었음. 이후 주생은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기녀 배도를 찾아갔고, 배도는 주생의 문재에 반하여 주생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준다며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였음. 주생도 배도를 사랑하게 되었음. 이후 주생과 배도는 사를 이어 지우로 사랑을 나누었음. “길 잃고 봉래도에 들어왔다가 누가 알았으리, 두목이 방초를 찾게 될 줄을? 잠 깨어 문득 새소리 들리는데 비췻빛 주렴에 그림자 없고 붉은 난간에 새벽빛이 비치네.“ 시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교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 애정전기 특유의 연애담이 전개됨. 위는 주생이 배도를 만난 기쁨을 표현한 노랫말. 신선이 산다는 곳인 ‘봉래도’는 항주, 당의 시인인 ‘두목’은 주생 자신, ‘방초’는 배도를 가리킴. 이날 밤 주생이 배도와의 잠자리를 원하자 배도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하며 주생과 평생을 함께하고자 하는 소망을 말함. 또 주생이 벼슬에 올라 자신을 기적에서 빼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말함. 주생은 배도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다 약속을 하고 그녀를 안심시킴. 전형적인 애정전기(당나라의 <이와전>, 우리나라의 <옥소선>)라면 이후의 행복한 세계상이 전개되겠지만, <주생전>에서는 이 시점부터 미묘한 균열이 감지됨. “서방님께선 이익과 곽소옥의 일을 모르십니까?“ 이익과 곽소옥은 당나라의 전기소설 <곽소옥전>의 주인공들인데, 이익이 곽소옥을 배시하자 곽소옥은 원망을 품고 죽었다는 내용, 배도는 주생을 믿지 않고 이런 말을 하였는데, 이는 애정전기의 특징이자 미덕이었던 남녀 주인공의 ‘상호 독점적 애정 관계‘가 의심되고 있는 것임. 결국 주생은 배도를 위해 맹세의 글을 써주었지만, 남녀주인공의 애정 관계가 출발부터 견고하지 않았음. 그러나 이 날밤에는 이러한 문제가 아직 뚜렷히 들어나지 않았음. “그날 밤 두 사람이 <고당부>를 노래하니 짝을 찾은 두사람의 기쁨은 김생과 취취, 위랑과 빙빙보다 더했다.” <고당부>는 전국시대의 문인 송옥이 지은 부로, 초나라 회왕과 무산 신녀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임. “<고당부>를 노래하다.”라는 것은 두 남녀가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임. 또, 당대 이래로 애정전기에서 두루 애용되는 것이었음. 또 김생과 취취는 전등신화 <취취전>의 남녀 주인공을 말하고, 위랑과 빙빙은 <전등여화>에 실린 <가운화환혼기>의 남녀주인공을 말함. -> 당나라의 유명 전기와 명나라의 전기소설집인 <전등신화>와 <전등여화>등을 이미 앍고 있는 식자층을 주요 독자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음. 그날 이후 주생은 배도에게 빠져 온종일 배도와 함께 비파를 타고 술을 마시며 웃고 즐겼다, 그러나 머지 않아 노승상의 외동딸 ‘선화‘로 인해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이상 기류가 발생하게 됨. 배도는 승상 댁 잔치에 불려갔고, 주생은 배도의 뒤를 밟아 노승상의 집 안에 들어갔음. 배도를 찾던 주생은 승상 부인의 곁에 앉은 선화를 보았는데, “부인과 소녀의 사이에 앉은 배도의 모습은 봉황에 곁에 선 올빼미만도, 진주 곁에 놓인 조약돌만도 못해보였다. (…) 미친듯이 소리 지르며 방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일어났다.” 주생은 새로운 사랑을 찾은 기쁨에 취했지만, 속마음을 감추고 배도를 대함. 그러나 “주생은 선화를 본 뒤로 배도를 향한 마음이 이미 식어 버렸다. 말을 주고받을 때에도 억지로 웃음 지으며 기뻐하는 척만 할 뿐 마음속엔 온통 선화 생각뿐이었다.” 주생과 배도의 사랑은 이렇게 파탄이 나게됨. 주생은 독점적 애정관계를 구축하는 애정전기의 전통에서 벗어나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신의를 버리고 욕망을 추구한 최초의 주인공이 되었음. 서사적 흥미의 차원에서 보면 이 시점부터 <주생전>의 재미가 더해짐. 배도를 저버리고 선화를 얻기 위한 주생의 계략과 행동, 주생의 변심을 눈치 챈 배도의 분노가 서사를 움직이고, 주생을 사이에 둔 두 여인의 질투와 미묘한 심리, 어느쪽도 택하지 못하는 주생의 내면 갈등이 서사에 살을 붙임. 삼각관계라는 새로운 갈등 구조 속에서 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 것이 소설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됨. <주생전>은 문체와 전고 활용에 있어서 동시기 어떤 소설보다 애정전기의 전통이 강하지만, ‘욕망’을 택함으로써 기존의 애정전기와는 전혀 다른 지향의 작품이 되었음. 선화를 보고 첫눈에 반한 주생은 선화의 남동생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선화의 집에 머물게 되고, 배도는 주생이 승상댁 장서를 통해 과거 공부를 하겠다는 말에 속아 흔쾌히 허락함. 주생은 선화를 만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늦은 밤 선화의 방 앞에 숨어들었음. 선화는 노랫말을 짓고 있었고, 주생은 노랫말을 이어지으며 선화의 앞에 나타남. 선화는 주생을 애정상대로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뜻밖에도 쉽게 이루어짐. 이튿날 밤에도 주생은 선화를 다시 찾음. “ ”서방님, 겁내지 마세요! 앵앵이 여기 있어요.“ 주생은 그제야 선화에게 속은 줄 알고 일어나 선화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주생과 선화의 밀회 장면. 선화가 말한 ‘앵앵’은 당 원진이 지은 전기소설 <앵앵전>의 여주인공. <앵앵전>은 애정전기의 명편으로 뽑힘. 앵앵과 장생의 밀회 장면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앵앵전>을 읽은 독자라면 전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대목. -> <주생전>에서는 남녀의 사랑과 관계된 대목에서 애정전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전고가 자연스럽게 활용됨. 이후 둘은 밤마다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는데, 선화와 주생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는 2가지가 남았음. 1. 배도의 존재 2. 규범에 위배되는 사통을 범한 잘못 (근본적으로는 승상 댁 사위가 되기는 지체가 낮은 주생의 처지) 주생과 선화의 관계가 배도에게 발각된 것은 선화의 질투심 때문인데, “선화는 밤에 주생의 방에 와서 몰래 주생의 가방을 뒤지다가 배도가 주생에게 준 시 몇 편을 발견했다. 선화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그러고는 <안아미>한 편을 새로 지은 다음 비취색 비단에 써서 주생의 가방안에 넣어두고 방을 나왔다.” 긍정적인 여주인공의 질투심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은 <주생전>이외에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주목을 요하는 부분. 노승상 집을 방문한 배도가 주생의 방에 묵다가 이 노랫말을 발견하면서 관계가 밝혀지게 됨. 배도는 주생과 선화의 사통을 승상 부인에게 고발하겠다고 협박했고, 주생은 다른 핑계를 대고 배도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음. 이로써 우리 고전소설사 초유의 삼각관계가 아름답지 못한 형태로 일단락 되었음. 그러나 작자는 삼각관계를 형성한 인물들에게 윤리적 판단을 하며 비판의 시선을 던지 않음. 사랑이라는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 면죄부를 얻게 된 것은 갈등을 초래한 주생임. 그 뒤 배도는 주생에게 속았던 일이 분해 마음의 병을 얻었고, 주생은 선화가 그리워 마음의 병을, 선화 역시 주생이 그리워 중병을 얻었음. 배도는 돌연 병에 걸려 죽으면서 선화를 아내로 맞이라하는 유언을 남김. 배도의 돌연한 죽음으로 삼각관계의 갈등 구조가 극단까지 전개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되게 됨. (이점은 약점) 배도의 죽음 뒤에 선화와 다시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선화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국영이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에 수단이 없었음. 주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항주로 떠나야 했음. 이후 주생은 멀리 떠나 친척 장씨 노인의 집에 의탁하였고, 1592년 장씨는 주생의 고민을 듣고 처가가 노승상 일가라며 주생과 선화의 혼인을 중매해주기로 함. 승상 부인도 선화의 병 원인을 알고 있던 차라 승낙하며 그해 9월로 혼례 날짜를 잡음. 혼례가 결정된 이후 선화와 주생의 편지를 보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남녀의 간절한 마음이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음. 배도가 사라진 뒤 <주생전>은 다시 애정전기 특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되찾게 됨. 그러나 주생이 답장을 쓰고 아직 보내지 못했을 때 새로운 장애가 발생하게 됨.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파견하면서 주생이 조선으로 가게 된 것. 작자는 개성에서 우연히 주생을 만나 그 사정을 듣고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하였음. 이후의 주생의 사연은 알 수 없고,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되지만 결말부의 분위기는 비극적임. <주생전>은 전대의 소설과 비교할 때 새로운 특징과 미덕을 지님. 1. 앞선 시기의 단편 소설보다 분량이 늘어남. <nowiki>:</nowiki> 16세기 후반까지의 대다수 작품은 <원생몽유록>이 1600자, <이생규장전>이 3500자(가장 긴 편에 속함.) 정도로 원고지 30~40매 안팎의 분량을 유지함. 17세기 이후에도 대다수의 한문 단편소설은 이 분량을 크게 넘어서지 않음. 그러나 <주생전>은 5800자로 <이생규장전>의 2배임. 그 뒤를 이어 <달천몽유록>은 7400자, <최척전>은 8300자, <강로전>은 9000자, <운영전>은 130000자에 이르렀음. (전기소설의 중편화 현상) -> <주생전>의 분량 확대는 전반부 주생과 배도의 사랑, 후반부 주생과 선화의 사랑이 결합된 결과로 보여짐. 이후 <최척전>, <운영전>으로 가면 길이가 늘어나며 세부 묘사가 강화되고,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화, 보조인물의 등장 등 질적 변모가 이뤄진다. <주생전>은 그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함. 2. 당의 <앵앵전>, <곽소옥전>, 명의 <전등신화>, <전등여화> 등 애정전기의 명편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애정전기의 전고를 자유자재로 구사함. <nowiki>:</nowiki> 이 점이 <주생전>이 애정전기의 주류 계보에 놓이는 중요한 이유. <주생전>의 전고 구사 능력은 애정전기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속함. 시사가 적절히 삽입되고,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장을 사용하고 있어서 애정 전기 전통을 훌륭하게 발전, 계승시킨 점이 돋보임. 3. 남녀의 삼각관계를 스토리 전개의 주요한 계기로 삼고 있음. <nowiki>:</nowiki>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남녀의 삼각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 일대일 남녀관계라는 우리 전기소설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서사 지평을 만들어 냄. 절개보다 욕망을 추구하는 남자주인공은 이전의 우리 애정소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인간형. 삼각관계 속의 주인공들 모두 ‘욕망’이 긍정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 밖에 있으며, 배도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선화와 주생을 이어주고자 한 점은 부당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욕망을 긍정한 결과임. è 즉, <주생전>은 욕망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의미있는 소설 작품이고,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이고 고차원적인 문제로 시선을 확대한 <운영전>의 앞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음. <주생전>은 욕망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인간(주생)이 전쟁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보는 한 시각을 대변한다. 주생에게 전쟁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폭압’임. 주생에게 전쟁은 연인과의 이별을 뜻할 뿐임. (애정전기의 주인공들에게 애정 상대와의 신의, 애정 이외에 더 중요한 가치가 없듯이, 주생에게도 애정 성취 이외의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 전쟁에 참전한 주인공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낭만적 열망’만이 존재함. 이는 주생의 세계가 <달천몽유록>, <임진록>에 등장하는 전쟁영웅의 세계와는 다른 평범한 인물의 세계이기 때문. (주생에게 전쟁은 애정에 대한 고난과 시련, 참전해야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것임.) 그리고 작자가 이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전쟁이 평범한 개인에게 패배와 상처만을 남기는 무의미한 행위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음. === <남궁선생전> === 허균의 <남궁선생전>은 전계소설과 전기소설의 특징을 아울러지니면서 전쟁 이후의 환멸과 도피 지향을 일정하게 드러낸 작품임. <주생전>, <최척전>처럼 주인공에게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한 소설. 작중 허균은 남궁두를 1608년에 만났다고 하였음. 허균은 1607년 공주목사가 되었다가, 이듬에 8월 파직 당하고 전라북도 부안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었음. 남궁두는 선조, 광해군 때 호남의 유명한 도인으로, 그 행적에 관한 신비한 전설이 <어우야담>, <지봉유설> 등에 실려 있음. 허균은 명문가의 자제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지만 청년기 불운한 개인사를 가짐. 20세에 허봉이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 허난설헌도 세상을 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피난하던 도중 첫아들을 얻었지만 피난길에 아내와 아들이 모두 목숨을 잃음. 허균이 남궁두를 만났을 때는 공주목사에서 파직당한 직후였는데, 남궁두의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도가적 상상을 펼치며 울울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임. <남궁선생전>의 서두에는 입전 인물에 관한 신상정보를 자세히 기술하는 전형적인 전의 서술 방식을 취함.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서술은 일반적인 전이나 전계소설과는 달리 모든 에피소드가 연쇄적으로 이어짐. (전이나 전계소설의 경우 에피소드가 서로 간의 연계없이 나열되는 구조.) <주생전>과 같은 애정전기와 달리 <남궁선생전>은 화려한 수식 없이 대상을 정확하게 담고 있음. 사건 서술에서는 사건의 핵심만을 밀도 있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등 수준 높은 서사 문체의 한 전형을 보여줌. 선사가 남궁두에게 장생불사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한 뒤 남궁두가 도술을 익히는 과정의 서사전개는 박진감있게 진행됨. 1차 과제는 잠들지 않는 것이며, 2차 과제는 도가의 경전인 <주역참동계>와 <황정경>을 읽는 것, 3차 과제는 곡기를 끊는 일이었음. 남궁두가 하나의 과정을 마칠 때마다 선사가 몹시 기뻐하는 모습에서 독자 역시 함께 몰입하며 쾌감을 느끼도록 함. 수련 과정에서의 서술은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지배적. 이후 9년의 수련을 거쳐 ‘왕자교(중국 고대 전설 속의 신선)‘의 경지에 이름. 최후의 단계를 앞두고 선사는 “욕망이 동하더라도 결단코 참아야 하네. 식과 색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도 일체의 망상이 모두 진에 해로우니 모름지기 모든 유를 비우고 고요히 단련하도록 하게.” 라는 말을 남김. <주생전>과 같은 동시대의 애정소설이 사랑이라는 욕망의 분출과 좌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에 비해 <남궁선생전>의 선사는 일체의 욕망과 망상을 비우는 것을 진리라고 말함. 남궁두는 최종 관문에서 욕망을 막지 못해 신선이 되지 못함. 선사는 이후 자신이 500살이 넘었으며, 신선이라는 정체를 밝힘. 남궁두의 요청으로 선사는 조선 삼남 지방의 신을 통솔하는 신선으로서 여러 신들에게 조회 받는 광경을 보여주게 됨. 이 장면은 이전의 간결한 문체와는 다르게 기교 있는 화려한 문체로 이루어짐. “문득 대 위의 향나무 두 그루에 각각 알록달록한 꽃등이 걸리더니, 이윽고 골짜기 가득 수천수만 그루의 나무마다 모두 꽃등이 걸리면서 붉은 불꽃이 하늘에 뻗쳐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 이후 도교의 신들이 하나하나 호명되며 화려한 조회장면이 이어짐. 도가문학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장관. 화려한 수식이 돋보이는 대목. 신선이 되는 것에 실패한 남궁두는 속세로 돌아갔고, 신선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절제하여 800년의 수를 누리는 지상선이 될 수 있었음. 그러나 허균을 만난 남궁두는 “(…) 게다가 가는 곳마다 젊은 것들이 내 늙고 추한 모습을 업신여기니 인간 세상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어졌어. 사람이 장수하고 싶어 하는 건 원래 즐거움을 위해서인데, 나는 쓸쓸해서 즐거움이라곤 전혀 없이니 오래 살아 봐야 뭐하겠나? 그래서 이젠 속인들이 먹는 음식을 금하지 않고, 아들도 안아 보고 손자 재롱도 보며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 하늘이 내린 이치를 순순히 따르려하네.“ 라고 말하며 장수를 버리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택한 이유를 설명함. 허균은 <남궁선생전>을 통해 도가적 초월을 꿈꾸다 좌절한 불행한 인간의 삶을 다루었음. 남궁두의 속세에서의 고난은 암울하게 서술되었지만, 연단 과정의 서술과 도교 신들의 조화 과정은 활기차고 화려하게 서술되었음. 이후 마무리 대목에서는 불로장생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속세의 평범한 삶을 택하는 남궁두를 조명함. 부질없음을 보여주는듯 하지만,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도가적 초월을 보여주는 대목. <남궁선생전>의 연단 과정은 당 전기 <두자춘>의 연단 과정과 비교할 수 있음. <두자춘>에서는 말하지 말라는 금기를 지켜야 신선이 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금기를 지키기 위해 온갖 외부의 위협을 인내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냄. 그러나 <남궁선생전>에서는 연단 과정 자체를 자세히 기술하며 욕망을 참는 과정에 초점을 둠. 또, <두자춘>에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연단을 실패했지만, 남궁두는 빨리 이루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신선이 되지 못함. <두자춘> 이래로 명대의 <비검기>까지 도가의 연단 과정을 작품화한 예가 이어지지만, <남궁선생전>(조회 장면)은 그 중에서도 도가적 상상력을 한 껏 발휘한 작품임. 이러한 점에서 우리 고전소설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도가문학사에서도 이채를 발하는 작품. <남궁선생전>을 통해 허균은 도가적 지향을 화려하게 나타내고,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 하였음. 이는 허균의 불운한 개인사 등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하였을 것. 또한 전란 이후의 상황에 쓰여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남궁두의 운명은 더욱 큰 반향을 준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여 돌아와 보니 행복했던 과거 삶의 자취마저 지워져버린 남궁두의 운명은 전란 이후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 던져진 당대 조선인의 정서와 맞닿아 있음. 또한 모든 것을 잃고 세상을 초월하고자 했던 남궁두의 의지는 삶에 염중을 느끼고 현실 밖의 신비한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함. 즉, 이 작품의 근저에는 전쟁 이후 세계에 대한 불안, 공포, 환멸 속에서 초월적 상상을 통해 현실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던 초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임. 그러나 <남궁선생전> 속 임진왜란에 대한 특이한 생각은 주목할 필요가 있음. 조회 장면에서 선사가 조선의 액운을 예견하며 구제할 방책을 묻자 세 신군은 “삼한의 백성들이 간교하여 속임수를 잘 쓰고, 미혹되고 흉포하며, 복을 아끼지 않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 삼한의 백성 열 사람 중 대여섯의 목숨을 빼앗아 경각심을 일깨우려 합니다. 저희들은 삼도제군의 이 말을 듣고 모두 가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하늘의 큰 운수에 관계되는 일이니 어찌 해볼 도리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함. 임진왜란의 발생이 숙명이었다고 말하며, 전쟁의 책임을 조선 백성의 간교함에 떠넘기는 왜곡된 시각이 나타남. 당대 지배계급의 자기 반성과는 거리가 먼 태도. - 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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