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전쟁과 사회: 두 판 사이의 차이

DHinDS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새 문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격변기를 집약한 역사적 사건.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1598년 11월 19일 왜군의 철수까지, 6년 8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임. 일본의 군대는 100년 가까이 벌어진 내전으로 축적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대표되는 화력을 가지고 있어 전쟁 초기에는 승승장구함. 이 초기 전쟁의 분수령은 '달천 전투'였...)
 
편집 요약 없음
 
20번째 줄: 20번째 줄: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임진록」, 「달천몽유록」에 표출된 분노와 「주생전」, 「운영전」의 환멸은 당대를 반영함.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임진록」, 「달천몽유록」에 표출된 분노와 「주생전」, 「운영전」의 환멸은 당대를 반영함.
- 동쥬

2024년 5월 21일 (화) 18:24 기준 최신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격변기를 집약한 역사적 사건.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1598년 11월 19일 왜군의 철수까지, 6년 8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임.

일본의 군대는 100년 가까이 벌어진 내전으로 축적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대표되는 화력을 가지고 있어 전쟁 초기에는 승승장구함.

이 초기 전쟁의 분수령은 '달천 전투'였음. 신립이 이끌던 조선 군대가 충주 달천강 탄금대에서 전멸하고, 그 직후 선조가 개성에서 평양으로 피신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개월 만에 의주에까지 다다름.

전쟁 초기의 무방비한 상태와 장수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일방적 패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 당시 정황을 반영한 작품이 「달천몽유록」.

이러한 상황을 전환한 계기가 이순신의 남해 장악, 의병의 활약, 명나라의 참전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중국 침략으로 설정함. 이 때문에 명나라 역시 참전했고, 명의 장군과 왜의 장군이 강화 회담을 벌임. 조선에서 발발한 전쟁이나 조선은 배제된 채 명과 왜가 회담의 파트너가 됨. 이는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크게 바뀌지 않음. 회담이 결렬되고 명은 10만 이상의 군을 투입함.

명의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 활동이 벌어짐.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평양을 되찾았으나 서울은 되찾지 못하고 개성으로 물러남. 이후 명과 왜의 협상을 통해 일본은 한강 남쪽에서 철수하여 동남 해안에 주둔함.

조선군이 서울에 입성한 것은 왜군이 철수한 직후인 1593년 4월 20일이지만, 선조는 서울로 돌아오길 주저해 5개월 후인 10월 4일에 돌아옴. 선조보다 한 달 미리 서울에 다녀온 대사헌 김응남의 보고에 따르면, 전란에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쳐 상황이 처참했음.

사헌부의 보고 내용은 민중들의 절망과 분노, 이를 접한 지식인들의 분노와 환멸이 담겨있음.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임진록」, 「달천몽유록」에 표출된 분노와 「주생전」, 「운영전」의 환멸은 당대를 반영함.


- 동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