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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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iki>:</nowiki> <운영전>이 일명 <수성궁몽유록>으로 불리기도 하였음에서 알수 있듯이 몽유록과 관련이 있는 작품임. (전형적인 몽유록과는 달라도 몽유록 형식을 사용함.) | <nowiki>:</nowiki> <운영전>이 일명 <수성궁몽유록>으로 불리기도 하였음에서 알수 있듯이 몽유록과 관련이 있는 작품임. (전형적인 몽유록과는 달라도 몽유록 형식을 사용함.) | ||
- 윤서 |
2024년 5월 21일 (화) 18:24 기준 최신판
17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편집 | 원본 편집]
두 번의 큰 전쟁[편집 | 원본 편집]
1592년 4월~1598년 11월까지를 임진왜란이라 함. 임진왜란으로 명은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졌지만, 만주의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해 세력을 확장하고 1616년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됨. 이후 1627년 후금은 조선을 침략하고 (정묘호란), 1636년 다시 조선을 침입함. (병자호란)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조선 시대는 전기와 후기로 나뉨.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 인민의 삶에 큰 고통을 주었으며, 민족적 자부심에도 큰 상처를 입게 됨. 또한 전쟁 중 지배층의 무능과 무책임을 목도하였고, 이를 통해 미중 의식이 대두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됨.
조선에서는 16세기 말 이래 임병양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여러 편 창작되었고, 이 중 주목할만한 것으로 권필의 <주생전>, 성로의 <위생전>, <운영전>, 조위한의 <최척전>, 권칙의 <강로전>, 김응원의 <김영철유사>, 홍세태의 <김영철전>, 작자미상의 연의소설 <김영철전>과 <달천몽유록>, <강도몽유록> 등이 있음 <- 이 작품들은 모두 한문소설
국문소설로는 <임진록>, <임경업전>, <박씨전> 등이 있음.
<주생전>[편집 | 원본 편집]
<주생전>은 위 작품들중 가장 먼저 창작됨. 1593년 5월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딱 1년이 되었을 무렵임. 작자인 권필은 선조 2년에 태어나 광해군 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뛰어난 시인이었음. 성격이 자유분방해 벼슬을 하지 않고 시와 술을 즐겨하였으며, 당대 지배층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시를 즐겨 지음. 대표작으로는 <충주석>(권세가가 거대한 신도비를 세우는 모습을 비판), <투구행>(이해관계로 인해 당파 싸움을 벌이는 행태 비판)이 있음. 광해군 초기 외척의 권세를 비판한 <궁류시>를 지은 것이 문제가 되어 유배형에 처해졌는데, 이때 귀양길에서 술을 폭음한 뒤 이틀 뒤에 죽었다고 함..(죽음에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히는 알 수 없음.)
권필은 성로, 허균, 조위한과 가깝게 지냈음. 이 넷은 모두 자유분방한 인간형으로, 소설을 창작했다는 공통점이 있음. 당시 소설은 비정통문학으로 간주되어 정(正)한 문인이라면 쓰지 않았음. 그러나 이들은 서로 문예취향이 비슷하여 다들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추정됨. 권필이 이들 중 소설 창작의 첫 머리를 열었고, 이후 성로가 <운영전>, <위생전>을, 허균이 <남궁선생전>과 <홍길동전>을 창작했고, 조위한이 <최척전>을 창작하였음. <주생전>은 <위생전>, <운영전>에 동일한 모티프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들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임. 작자들이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며 소설을 창작한 것.
<주생전>의 주인공인 주생은 조선사람이 아닌 중국 절강성의 전당 사람임. 처음에는 기생 배도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이후 재상집 딸 선화를 만나면서 배도를 배신함. 배도는 이에 슬퍼하다 죽게 되고, 주생은 배도의 넋을 위로한 뒤 선화와 약혼하게 되지만,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주생은 조선으로 오게 됨.
작중에는 서술자에 해당하는 ‘나‘가 나오는데, 서술자는 작자로 볼 수도 있으며, 주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주생을 위로하는 존재임.
<주생전>은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며, 한국 문학사에서 남녀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문제되는 최초의 작품임. 한국의 애정전기소설은 일반적으로 남녀주인공간의 배타적, 독점적 사랑, 그리고 지조를 보여주는데, 주인공들의 사랑은 몹시 강해 둘 사이에 아무도 끼어들 수 없음. 그런데 <주생전>은 이러한 일반적 서사 문법을 깨뜨리고 새로운 창안을 보임. 남주인공인 주생은 지조를 버리고 개인적 욕망(사랑)을 쫓고 있는데, 이는 인생의 목적, 책임감 등을 잃고 부유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음. 즉, 젊은 지식인의 섬세하지만 나약하고 열정적이지만 무책임한 면모가 표출되고 있다고 여겨짐.
è 이러한 주생의 캐릭터는 작자가 겪은 전쟁 중 심리 상황이 일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임.
<주생전>은 이념이나 관념을 벗어난, 현실 세계에 있을 법한 인간을 그렸다는 점에서이전 소설과 다른 새로운 인간 유형을 창조했음. 주인공이 선과 악으로 완벽히 재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품의 현실성이 돋보이며, 인간에 대한 진전된 인식이 보인다 할 수 있음.
작품 말미에 “대장부가 근심할 일은 공명을 이루지 못할까 하는 것뿐이오. 천하에 어찌 미인이 없겠소“라는 서술자의 말은 꼭 작자의 견해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음. 서술자와 작자의 견해가 반드시 일치해야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작자인 권필은 공명에 큰 관심이 없었음. 그러나 이 말이 당대 지배층의 통념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함. 하지만 주생을 위로하기 위한 상투적인 말에 그칠 뿐임. 작품의 끝부분은 허망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는 전쟁과의 내적 연관이 있는 듯함.
<위생전>[편집 | 원본 편집]
성로는 명종 5년에 태어나 광해군 7년에 세상을 떠남. 정철의 문인이었는데, 벼슬을 하지 않고 자유방달하게 살았음.
당시의 정(正)한 사대부들은 예교를 따르지 않고 거리낌 없는 성로를 광객으로 여겼음. 세계와 화합하지 못하고, 당대 지배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컸다는 점에서 경계인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음.
성로는 아내를 일찍 여의고 혼자 살았는데, 아들은 없고 딸이 둘 있었으나 양자를 들이지 않았음. 서울의 인왕산 아래에 살 때 임진왜란을 만나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했으며, 강화도가 불안해지자 전라도 군산으로 가 거기서 6년을 보냄.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군산이 위험해지자 다시 강화도로 이동해 5년 정도 우거하였음.
1602년 겨울에서 1603년 봄 사이, 성로는 양화도 부근의 작은 산 밑에서 은거했는데, 이 때 기생 설죽과 시를 주고받으며 깊이 교유하였음. 이 무렵 <위생전>과 <운영전>을 창작했을 것으로 여겨짐.
이전에는 <위생전>을 권필이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하였지만, 성로의 문집인 <석전유고>와 <위생전>, <운영전>을 대조하고 작품의 미적 지향과 성로의 생에 대한 지향을 맞춰 보면 <위생전>을 성로가 썼음을 알 수 있음. <주생전>과는 그 생에 대한 지향과 가치 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임.
작품의 주인공인 위생은 중국 금릉(지금의 남경) 사람임. 임진년(1592년)에 친구와 악양에 가서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밤에 술이 깨어 혼자 배에서 내려 어느 곳으로 갔는데, 그곳은 소상국(소재상)의 집이었음. 우연히 딸 소숙방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됨. 그런데 이해에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위생은 조선으로 떠나게 됨. <주생전>에서의 주생도, 위생도 서기의 임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임.
위생은 조선에서 병이 들어 군막에서 숨을 거두고, 시신은 소숙방이 있는 악양으로 운구됨. 소숙방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목을 매어 자결함.
이 작품은 플롯이 비교적 간단하고, <주생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기 때문에 유사한 부분이 많음. 성로는 권필과 절친했고, 따라서 권필의 소설 창작에 자극 받아 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 그러나 <위생전>과 <주생전>의 생에 대한 전망이나 가치 지향은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음.
è <주생전>과 달리 <위생전>에서는 남녀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키고, 사랑 때문에 죽게 됨.
: 이러한 점에서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와 연결됨. 실제로 <금오신화>의 영향을 확인할 수도 있음. 즉, <위생전>은 <주생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지만, <주생전>의 가치 지향에 동의하지 않고 그와 다른 가치 지향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 생에 대한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 인간에게 ‘지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지어졌다 할 수 있음.
<운영전>[편집 | 원본 편집]
<운영전>의 작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음. 북한 학계에서는 작중인물인 ‘유영‘을 작자로 보고 있지만,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님. 최근 허균을 작자로 추정한 논문도 나왔지만 작품의 필치나 감수성이 허균의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워보임.
선생님은 <운영전>의 작자가 성로라고 보고 계심, 그러나 성로가 지었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님. 성로의 문집인 <석전유고>와 <운영전>을 대조하고 작자의 실존과 <운영전>의 미적 지향을 대조한 추정.
<위생전>에는 권필이 지은 <주생전>의 영향이 발견되지만, <운영전>은 그렇지 않음. 따라서 <운영전>과 <주생전>은 완전히 다른 지향과 감수성을 보여줌. 그러나 삽입 시가 매우 많고, 남녀의 사랑이 우여곡절로 서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바가 있음. 그러한 점에서는 상호텍스트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음.
<위생전>과 <운영전>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여타의 소설들과는 다른 남녀주인공이 ‘쉽게 죽는다.’는 공통점을 보여줌. 또한 두 작품의 도입부에서 소숙방과 운영이 읊은 시에는 모두 상사의 정이 표출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이후의 서사 전개가 암시되는데, 공통적으로 당나라 시인 송지문이 지은 <유소사>의 한 구절이 원용되고 있다는 것임.
l <유소사(有所思)>: 漢代 악부 鐃歌 18곡 가운데 하나. 본시는 그리운 사람이 멀리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서는 ‘봄에 생각하는 바. 곧 인생무상을 느끼고 노래한 것’이란 뜻
이는 성로 소설의 라이트모티브(작품들에 반복되는 기법)를 이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함.
<운영전>에는 남자 주인공의 입을 통해 당나라 시인 이백을 예찬하는 말이 한참 나오는데, <석전유고>를 보면 성로가 이백 풍의 낭만적인 시를 즐겨 썼음을 알 수 있음. <위생전>과 <운영전>의 삽입 시들도 대개 이백 풍의 낭만적인 시들임.
<위생전>이 소설로서 허술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것과 달리 <운영전>은 필치가 빼어나고 주제의식도 문제적이라는 점에서 성로는 <위생전>을 먼저 짓고 이후 <운영전>을 쓴 것으로 보임. 특히 여성의 정욕에 대한 긍정의 메세지는 작품의 창작시기를 고려햤을 때 놀라운 부분이라 할 수 있음.
이러한 점에서 <운영전>은 <금오신화>, <춘향전>과 함께 고전소설의 명편에 속하며,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할 수 있음.
여주인공인 운영은 남쪽의 미천한 신분 출신이며, 남주인공 김진사는 사족 출신 인물임. 서로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됨. 운영은 안평대군이 총애하는 궁녀였기 때문에 둘의 사랑은 위험하고 금지된 사랑이었음. <운영전>은 사랑을 통해 조선 사회의 경계를 넘었다할 수 있으나, 그 귀결이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출구가 없는 조선 사회 내부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겠음.
성로가 위험하고 놀라운 사랑의 서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기녀 설죽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보임. <운영전>처럼 성로와 설죽은 신분에 큰 차이가 있었고, 성로는 설죽을 통해 미천한 신분의 여성, 사랑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이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던 것으로 보임.
이 작품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안평대군의 사궁인 수성궁에서 서술자(유영)이 150년전 인물인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됨. 그런데 작품이 종료될 즈음, 유영이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 꿈 속의 일임이 드러남. 몽유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작품 말미에서 김진사와 운영은 안평대군이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수성궁의 주인이 없어진 것을 슬퍼할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수성궁이 잿더미가 된 것을 가슴아파함. 또, 사육신 중 하나인 성삼문이 궁녀들의 시를 평가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
è 이러한 점을 통해 작가가 안평대군과 성삼문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당시 사육신은 아직 복권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고, 안평대군과 성삼문에 대해 대놓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음. 따라서 작자는 안평대군과 성삼문을 은밀한 방식으로 추억하고 있는 것.
종래에는 <운영전>의 자유연애적인 측면에 대한 주목만이 이루어졌지만,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며, 두 개의 문제의식이 겹쳐있다는 것이 중요함. 또한, 김진사와 운영의 비극이 안평대군과 사육신의 비극으로 들어가는 은밀한 통로가 되고 있어, 두 개의 비극이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음.
<운영전>의 이러한 중층성으로 인해 작품의 전모를 제대로 이해하고, 작가가 보내는 메세지를 제대로 해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음.
성삼문과 안평대군을 통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은근히 소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정신사적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나 임제의 <원생몽유록>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음. 이 점에서 <위생전>에 인간의 ‘지조‘가 문제삼아졌는지 알 수 있게 됨.
<최척전>[편집 | 원본 편집]
조위한은 명종 13년에 태어나 인조 27년에 세상을 떠남. 성로보다 8살이 어렸고, 권필, 허균, 성로와 교유가 있었음.
조위한은 계축옥사 때 파직되어 남원에 우거하고 있다가 최척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최척전>을 창작하였음.
l 계축옥사: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 및 서인,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獄事). 계축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계축옥사라 함.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원인이 되었음. [유사어] 칠서지옥(七庶之獄)
작품 말미에 최적인 작자를 방문해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고 이 일의 전말을 기록해 인멸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대략 그 경개를 적었음을 밝히고 있음.
이 작품은 전쟁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을 뿐인 <주생전>, <운영전>, <위생전>과 달리 전쟁이 인간의 운명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탐구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그리고 있음.
최척은 남원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서울에서 피난 온 옥영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됨. 두 사람은 혼인하게 되고, 전쟁 중이지만 화락한 삶을 살다가,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옥영이 돈우라는 일본 병사의 포로가 됨. 옥영은 나고야로 끌려가 돈우의 집 하인이 되게 됨. 돈우는 원래 장사꾼이라 전쟁이 끝난 후 중국의 복건성, 절강성 등으로 장사하러 가곤 했는데 옥영이 항해장 일을 맡아서 했음. 옥영은 포로로 잡힐 때 남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은 옥영이 남자인 줄 알았음.
최척 일가는 남원성이 함락되기 전 지리산 연곡으로 피난가는데, 이 때 최척은 가족들과 헤어져 그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됨. 최척이 가족들을 찾아 헤매는 대목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핍진하게 보여줌.
(267~268쪽)
묘사가 아주 자세하여, 이전의 소설들에서는 볼 수 없던 리얼리즘의 진전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음.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의 참상을 <최척전>만큼 리얼하게 그려낸 우리 고전소설은 없음.
최적은 가족을 찾지 못해 낙담하고, 중국인 장교를 따라 중국으로 가며,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중국인 벗을 따라 차를 매매하러 베트남으로 감. 베트남에서 우연히 일본 배에 타고 있던 처를 만나고, 최척 부부는 중국에서 살면서 아들 몽선을 낳게 됨. 이후 명나라가 후금을 정벌하기 위해 만주로 군대를 보내고, 최척은 서기로 차출됨.(권필의 <주생전>에 처음 나오는 모티프, 주생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명나라 군대는 무순 부근의 사르후라는 곳에서 대패하고, 명청 교체의 분기점이 됨. 당시 조선은 명의 강요로 1만 3천명의 원병을 보냈는데, 강홍립이 최고 사령관이었음. 이때 강홍립은 조선 병사들과 함께 후금의 포로가 됨. 최척도 포로수용소에 갇히는데, 강홍립에 휘하에 있던 몽석도 같은 곳에 갇혀 부자 상봉하게 됨. 원래 함경도 사람인 포로 감시 책임자의 도움으로 탈출해 조선으로 오게 됨. 이후 고향으로 오던 중 둘째 며느리 홍도의 부친을 만남. 옥영은 배를 장만하여 몽선과 중국인 며느리 홍도와 함께 조선을 향함. 세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고향 남원에 도착하게 되고, 온 가족이 다시 만나 단란하게 살게됨.
조위한은 최척에게 들은 실화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최척전>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조선, 일본, 베트남, 명, 후금으로 방대한 스케일이 나타남. 광대한 서사 공간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소설. 작품의 방대한 규모는 16세기 말~17세기 초 거듭된 전쟁으로 인해 이곳 저곳으로 떠돌수 밖에 없었던 조선 인민의 고난의 크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음.
<최척전>은 거듭된 동아시아의 전란으로 인한 가족 이산의 문제를 그리고 있으며, 가족의 이산과 재회를 그린 최초의 소설임. <최척전>에서 인상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산-재회 모티프는 이후 우리 고전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모티프 중 하나가 됨. 특히 영웅소설, 가문 소설에서는 소설 작법상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잡게 됨.
l 다만 영웅, 가문소설에서는 장르 특성상 시공간적 주체성을 전유하지 못함으로써 이산-재회의 문제가<최척전>만큼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띠지는 못함.
여주인공 옥영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써,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현실의 파란을 헤쳐나가는 인물임. 작가는 옥영을 통해 당대 조선 여성의 한 전형을 창조한 것으로 여겨짐. 또한 중국인 며느리인 홍도도 주체성이 강한 인물. 이전의 <호원>, <만복사저포기> 등 전대 소설에서도 여성의 주체적인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최척전>은 전시대 전기소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할 수 있음. 그러면서도 옥영과 홍도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고 있으므로 전대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인물 형상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음.
<강로전>[편집 | 원본 편집]
강로전의 작가는 권칙. 권칙은 권필, 성로, 조위한 보다 한 세대 아래의 인물. 권필의 서질(서얼조카)임.
권칙은 인조 14년에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왔는데, 일본에서 문명이 높았음. 일본에 가기 전에는 명나라에 다녀온 적도 있음.
<강로전>의 강로는 ‘강 오랑캐’라는 뜻으로, 강홍립을 비난하는 말. 조선은 광해군 10년 명의 요구에 따라 강홍립을 필두로 원병 1만 3천명을 만주에 파병하였는데, 후금의 군대에 대패하였고, 광해군의 밀명을 받았던 강홍립은 후금에 투항하였음. 이후 후금에 억류되어 있다가 정묘호란때 조선에 돌아왔음.
<강로전>은 강홍립이 후금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을 출발하는 것부터 정묘호란 때 후금군을 따라 조선에 들어와 죽기까지의 전 과정을 그리고 있음. 작품에서는 실사와 달리 강홍립이 만고의 역적으로 그려짐.
작품의 창작 시기는 강홍립 사후 3년이 되는 인조 8년,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을 ‘오랑캐’라고 부르며 극히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당시 서인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들의 통념을 보여주는 것.
è 인조반정 이후 화이론적 관점과 숭명배호적 의식이 강화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
이러한 인식이 바탕이 되면서, <강로전>은 우리 문학사상 최초로 부정적인 인물이 주인공으로 설정된 소설이 되었음.
숭명배호적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문벌세족 자제에게만 유리한 조선의 인재 등용 제도에 대한 비판, 토붕지세와 같은 조선의 현실에 대한 비판도 나타남. 이러한 비판 의식은 서얼 출신이었던 작자의 존재 여건에 기인한 것으로 보임. 즉, 겉으로 표방된 화이론보다는 작품에 내제된 현실 비판 의식 속에서 작자의 실존적 지점이 더 잘 드러난다 할 수 있음.
17세기 후반 이후 창작된 국문 소설(특히 영웅, 가문소설)은 모두 화이론적 관점 위에 구축되어 있는데, <강로전>은 이러한 화이론적 인식의 선구가 되는 작품이라는 점이 주목됨.
<김영철유사>, <김영철전>[편집 | 원본 편집]
<김영철유사>는 평안도 영유현의 사족인 김응원이 김영철의 구술을 토대로 작성한 글. 전부가 사실은 아니고 작자의 상상력을 보탠 약간의 호구적 요소가 있음. 그러나 대부분은 김영철이 겪은 실제 사실의 기록으로 보임. 창작 시기는 1680~90년대로 추정. <김영철유사>는 현존하지는 않지만, 이를 토대로 한 두 종류의 텍스트가 전하고 있음.
1. 홍세태의 <김영철전>
: 전계소설(인물전으로 보터 소설화된 작품. 전의 장르적 특징상 대개 사실적인 필치를 보임.)
1717년 경 창작, 김응원의 <김영철유사>를 읽고 이를 축약해 전계소설로 재창작하였음. 조선 후기에 많이 창작된 전계소설의 주요한 성과 중 하나.
작품에 두 가지 주제가 구현되어 있는데, 하나는 ‘고향으로의 귀환‘임. 귀소의식이 작품의 표면상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음.
또 하나는 당시 민중이 겪은 ‘종군의 괴로움과 군역의 가혹함 드러내기’임. 이는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뚜렷해짐.
홍세태의 <김영철전>은 1618~1683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고, 배경이 되는 공간은 조선, 만주, 중국. 광활한 공간을 배경으로 17세기 전란이 벌어진 시기에 김영철이라는 한 민중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리고 있음.
-> 이는 홍세태가 중인층 작가였기 때문에 미천한 출신의 삶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임. 또한 작품 말미의 논평에서 김영철이 국가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출신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있기도 함.
2. 작자미상 <김영철전>
: 연의소설(실제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하되, 허구를 보태 서사를 확장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소설 작법)
여러 이본이 존재하지만, 조원경본 <김영철전>이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임. 조원경본의 필사 시기는 1762년 전후이지만, 모본은 1720년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임.
홍세태의 <김영철전> 분량보다 몇 배가 많으며, 문예적 성취도 훨씬 뛰어남.
<김영철유사>, 홍세태의 <김영철전>, 조원경본 <김영철전>을 함께 묶어 ‘김영철 서사‘를 상정할 수 있다면 이 서사는 두 가지의 문학사적 의의가 인정됨.
1. 민중적 입장에서 당대 동아시아의 전란과 민중의 삶 사이의 관련을 추적해서 보여주되, 역사 상층부의 동향도 어느정도 포괄하여 제시하고 있음.
-> 역사의 표면에 드러난 문제(거시사)+ 심층의 드러나지 않은 문제(미시사)까지도 탐색. 두 가지의 결합이 보여짐.
2. <최척전>과 다르게 비현실적 요소가 없고, 리얼리즘적 정신으로 주인공과 그 주변 세계의 상호 관계가 탐구됨.
<최척전> | <김영철전> |
사건 전개 군데군데 ‘부처의 계시‘가 나타남. | <최척전>과는 달리 어떠한 비현실적 요소도 발견되지 않고, 리얼리즘적 정신으로 주인공과 그 주변 세계의 상호 관계가 탐구됨. |
초현실적 요소가 나타나므로써 작품의 리얼리즘적 서술 원칙을 훼손하고 있음. | <최척전>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그 성과를 확충시킴.
전형창조, 서술 원리의 면에서 김영철 서사는 당시까지 우리나라 소설이 이룩한 리얼리즘적 성과중 최대치라할 수 있음 |
김응원의 <김영철유사>는 김영철 서사를 창안하였고, 홍세태의 <김영철전>은 김영철 서사를 널리 알렸으며, 조원경본 <김영철전>은 김영철 서사를 문예적으로 완성하였다 할 수 있음.
김영철 서사와 <최척전>은 모두 가족의 이산과 재회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주인공의 귀환으로 해피엔딩이 이루어지며 종결되는 <최척전>과 달리 김영철 서사에서는 주인공의 귀환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음. 이국에 남겨둔 처자가 있기 때문. 김영철 서사는 현실적 해결이 불가능한 처자 문제를 억지로 해결하려하지 않고, 현실적 직시 태도를 견지함.
또한 김영철이 조국으로 귀환한 후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다시 전쟁에 동원되고, 늙어죽을 때까지 산성을 지켜야 했음을 보여줌. 이로인해 김영철 서사의 전체적인 분이기는 심각하고 어둡게 됨.
김영철은 평안도 사람이고, 김응원은 김영철과 같은 고을의 사람. 김응원은 <김영철유사>를 통해 서북인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타내었음. 이러한 김응원의 문제의식은 조원경본 <김영철전>에 그대로 수용되었음.
è 김영철 서사에 나타난 로컬리티로 인해 문학사적 문제성이 더욱 증폭되게 됨.
두 편의 <달천몽유록>[편집 | 원본 편집]
1. 윤계선의 <달천몽유록>
2. 황중윤의 <달천몽유록>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문경새재 쪽으로 진군했는데, 이 때 신립의 실책으로 인해 조선군이 궤멸하게 됨. 많은 사람들이 달천강에 빠졌는데, 시체가 떠올라 강이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고 함, 그래서 작품 제목에 ‘달천‘이라는 명칭이 들어가게 됨.
윤계선은 선조 10년에 태어나 선조 37년에 세상을 떴음. 호는 ‘파담’. 선조 30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33년 충청도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석 달간 충청도 여기저기를 다님. 돌아와 사헌부 지평으로서 우의정 이헌국을 심하게 비난한 일로 황해도 웅진 현감으로 쫒겨났는데, 이때 암행어사 시절의 견문을 토대로 <달천몽유록>을 지었음.
이 작품의 몽유자는 ‘파담자’로 되어 있는데, 이는 곧 윤계선을 가리킴. 파담자는 꿈속에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순신, 고경명, 최경회, 송상현, 김천일, 조헌, 신립, 영구 등 27명의 인물을 만나 그들의 말을 들음. 꿈에서 깬 후에 장문의 제문을 지어 그들을 애도함.
입몽 도입부의 다음 구절에는 충주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참혹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음. 주목할 점은 신립 이외의 인물은 모두 우호적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신립은 부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임. (신립이 문경새재를 지켜야한다는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패했다고 봤기 때문) 작품 말미 파담자의 제문에서는 27명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 신립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8천 명의 굳센 병사들은 왜 헛되이 죽어야 했습니까?“라는 평가를 내림.
윤계선의 <달천몽유록>>은 꿈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발언한다는 점에서 임제의 <원생몽유록>부터 계승된 몽유록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
10년 뒤 황중윤이 동일한 제목의 작품을 창작함. 황중윤은 명종 12년에 태어나 인조 26년 사망하고, 정구의 문생으로써 퇴계의 학맥을 잇고 있다 할 수 있음.
<달천몽유록>이외에도 <천군기>, <사대기>, <옥황기> 등의 소설을 남김.
황중윤은 몽유록에서 윤계선의 <달천몽유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음. 윤계선은 신립의 전술적 실책을 비판하였지만, 황중윤은 신립을 변호함.
è 당시 조선에는 무비가 없었고, 병농일치의 병제로 인해 정예병을 기를 수 없던 것이 패전의 원인이지, 신립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는 의견.
è 윤계선이 통념에 따르고 있다면, 황중윤은 패전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차이를 보여줌.
<강도몽유록>[편집 | 원본 편집]
작자 미상, ‘강도’는 강화도를 말함.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죽은 13명의 사대부 집 여성들이 한데 모여 한마디씩 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짐.
<강도몽유록>의 몽유자는 청허선사라는 승려인데, 가상인물로 보임. 다음 구절은 청허선사가 꿈에서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장면인데, 전쟁의 모습이 몹시 참혹함.
이 작품은 병자호란 당시 조신들이 보여준 무능함과 비겁함, 무책임함과 위선을 여성들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이 주목됨. 그렇지만 절의와 정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고취하고 있기도 함. 즉, 단순히 병자호란 당시의 위정자 비판이 주목적인 것이 아니라, 절의와 정절 이데올로기를 고취하는 것에 큰 힘을 쏟고 있는 작품인 것.
<강도몽유록>에서는 대부분의 지배층 사대부들이 비판받지만, 열 두번째 부인(윤선거의 처 이 씨)의 시아버지인 윤황과 같은 인물은 비난받지 않음.
16세기 말 17세기 초의 전쟁과 소설의 발전[편집 | 원본 편집]
16말~17초에 쓰인 소설들에서는 몇가지 점이 확인 됨.(김영철서사는 17세기 말 성립된 것으로 보임.)
1. 16세기 말 17세기 초 사이에 전기소설의 ‘중편화 경향’이 나타남.
: 전기소설은 대개 단편소설인데, 중편화되었음. (ex)<운영전>, <주생전>등은 조선 초기의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보다 편폭이 훨씬 김.)
-> 이는 소설적 총체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련있는 것. 전기소설의 편면적, 단편적인 생의 한 과정을 묘출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생의 총체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것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가 곧 분량의 확장으로 이어졌다는 것.
-> 이러한 총체성의 문제는 장편소설의 성립과도 관련됨.
2. 환상적 방식의 서사 대신, 현실적 사실적 방식으로 서사가 이루어짐.
<최척전>에서 장육불이 꿈에 나타나 도움을 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실의 인과관계에 따라 서사가 이루어짐. <최척전>에서의 기이한 부분도 이전의 전기소설과 달리 구조적인 의미 연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요소적인 부분에 그침.
3.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모색이 나타남.
: <주생전>에서는 악인/선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현실적 인간형이 제시됨. <운영전>에서는 여성의 정욕과 신분을 넘은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 김영철 서사는 로컬리티의 맥락 속에서 인간을 고찰함으로써, 차별받는 현실을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이국에 두고온 처자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는 인간을 그려냄.
4. 소설 형식의 발전
: 매개적 인물의 확대, 정황에 대한 자세한 재현(디테일 확장)
è 이 시기의 전기소설은 최고의 발전을 보여주었고, 장르 관습을 혁신하였음. 이런 점에서 전기소설을 이탈하는 조짐이 보이기도 함.(이전의 전기소설 형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을 나타내는 과정에서의 어긋남. -> 소설사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됨을 고지함)
5. 역사소설의 대두
: <강로전>, <김영철전>은 연의소설의 형식을 취한 역사소설에 해당.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 인물의 운명을 그리고 있음.
6. 몽유록 양식의 만개
: <운영전>이 일명 <수성궁몽유록>으로 불리기도 하였음에서 알수 있듯이 몽유록과 관련이 있는 작품임. (전형적인 몽유록과는 달라도 몽유록 형식을 사용함.)
- 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