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나말여초 소설의 성립
5강: 나말여초 소설의 성립
- 나말여초(羅末麗初): 신라 말 고려 초, 역사 전환기로써 상층과 하층의 세계관이 활발하게 섞이고 교섭을 이룸. 이러한 시기적 특징이 소설 발생 및 형성의 언어적, 문화적 기초를 이룸.
소설의 장르적 본령
소설 발생 이전 서사문학: 설화와 전(傳)이 서사문학의 전부였음.
- 설화: 구전문학, 사실과 허구가 교직되기도 하지만 본질 상 허구에 해당.
- 전: 기록문학, 사실에 입각한 글쓰기
-> 소설은 선행한 두 장르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장르임.
소설은 허구라는 점에서 ‘나말여초’의 소설은 설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음. 설화를 들은 그대로 기록하거나 들은 설화를 약간 윤색한 것을 ‘지괴’라 하는데, 소설은 ‘지괴(志怪)’장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
Ex) 지괴: <수이전> 속 개로 변한 노옹 이야기, 불귀신이 된 지귀이야기,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
대개 서술이 간략하고 서사의 길이가 짧다는 특징이 있음.
지괴와 소설의 차이: 지괴는 한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 집단 속에서 형성된 설화가 기록된 것. 소설은 특정 개인의 창작물.
-> 따라서 소설의 서사는 개인적 탐구 행위에 속함. 그러므로 개인의 글쓰기에 대한 자각이 생기고 그것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문학사의 단계에서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성립될 수 있음.
-> 소설 속 ‘탐구’가 무엇을 탐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탐구하는가에 따라 소설의 하위장르가 결정됨.
ex) 역사소설/전기소설/가문소설/영웅소설 …
그러나 어떠한 하위장르인지와 무관하게 소설이란 허구적 상상을 통한 탐구행위에 속함.
-> 소설은 개인에 의한 탐구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반성적’임. 소설이 ‘나’와 ‘세계’에 대한 서사적 거리 두기 및 성찰 위에서 성립된다는 것. 소설은 ‘반성’이라는 인간의 정신 행위 위에서야 비로소 성립되는 장르이므로 설화나 지괴가 ‘즉자적(卽自的)’인 것에 가깝다면, 소설은 ‘대자적(對自的)’인 것에 가깝다.
나말여초 시기의 소설은 설화와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새로운 장르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1. 소설이 아니라 설화의 일종으로 보는 관점.
2. 설화와 소설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
3. 이전의 설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지적, 정신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소설로 보는 관점
들이 있음. 따라서 소설과 설화가 본질상 어떻게 다른가를 아는 것이 이해에 있어 중요하다.
나말여초 소설의 관법(觀法)
이 시기 소설을 보는 관법으로 세가지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이 시기 소설은 후대의 소설과 달리 ‘설화의 바다’에서 떠올라 처음 문학사에 자태를 드러낸 장르이기 때문에 설화적 요소가 발견되거나 설화와의 관련이 있을 수 있다.
2. 소설은 역사적으로 계속 형성되어 왔고, 지금도 형성되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소설을 근대소설이나 조선 후기의 소설을 보는 관점으로 재단해서는 안됨.
3. 이 시기 소설은 한국 고전소설의 역사적 하위 장르 가운데 하나인 전기소설에 해당함.
전기소설-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소설 양식
전기소설(傳記小說): ‘전기’란 ‘기이함을 전한다’라는 뜻, 여기서의 기이는 초현실적이거나 환상적인 일을 의미함. 그래서 전기소설에는 귀신이나 요괴 같은 것들이 종종 등장함. 물론 현실적인 사건으로 일관하는 작품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낯설거나 기이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은 같음.
동아시아 최초의 전기소설은 초당(初唐) 말기에 장작(張鷟)이 지은 <유선굴(遊仙窟)>.
- <유선굴>: ‘신선의 굴에서 노닐다’라는 뜻. 작품의 서사 과정 중에 여러 편의 시가 등장. 이 작품 이후 시와 산문의 교직은 전기소설의 주요한 미적 특징의 하나가 됨. 전기 소설에서 시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서사의 복선을 제시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함.
당에서는 <유선굴> 이후 만당까지 전기소설이 많이 창작되었으며, 이후 송, 원, 명까지 이어져 계속 창작됨. 특히 14세기 후반 원말에 ‘구우’가 낸 <전등신화(剪燈新話)>라는 전기소설집은 15세기 후반에 쓰인 우리나라의 <금오신화(金鰲新話)>나 16세기 전반에 쓰인 베트남의 <전기만록(傳奇漫錄)>에도 영향을 끼쳤음. 이처럼 전기소설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보편적인 소설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전기소설 작자의 대부분이 중하층 사인(士人)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나말여초 전기소설 작자는 대부분 육두품 문인임. 육두품 문인 중에는 당 유학생이 많았는데, 이들의 경우 당에서 전기소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문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음. 게다가 이들은 신라 말 새로운 지식인층을 형성했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고민과 문제 의식 있었을 것. 이로 인해 육두품 문인들은 새로운 글쓰기인 전기소설의 창작을 통해 생(生)의 형식과 의미에 대한 가치론적 탐색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여겨짐.
나말여초의 전기소설로는 어떤 작품들이 있나
나말여초에 창작된 전기소설로는 <최치원>, <조신전>, <호원>, <온달전>, <설씨>, <백운제후> 여섯 작품을 들 수 있다.
- <최치원>: 조선 성종 때 성임(成任)의 <태평통재(太平通載)>에 실려 있음. 원출전은 <수이전>. 최치원이 스스로 쓴 것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11세기 중후반에 박인량이 증보한 <증보 수이전>에 실려 있었을 것으로 보임.
- <조신전>: <삼국유사>에 실려 있음. 작품 서두에 “옛날 서라벌이 서울일 적에”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초 창작 작품으로 보임.
- <호원>: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감호(金現感虎: 김현이 호랑이에게 마음이 동하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16세기 후반 권문해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에는 <호원>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음. ‘김현감호’라는 제목은 ‘김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고, ‘호원’이라는 제목은 호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음. 서사의 내용으로 보아 호녀가 중심이 되므로 원 제목은 ‘호원’일 것으로 추정. 원래 <수이전>에 실려 있던 작품을 일연이 <삼국유사>에 옮겨 실으면서 제목을 바꾼 것으로 보임.
- <온달전>: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있는 작품. 원래 소설로 전해지던 원작이 있었고 이를 사료로 삼아 열전이 작성된 것으로 추정. * 전기소설의 열전화는 중국의 <신당서(新唐書)>에서도 발견됨. <오보안전>와 <사소아전>은 원래 전기소설이었으나 각각 <신당서>의 열녀전과 충의전에 축약되어 실림.
- <설씨>: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있는 작품, <온달전>과 마찬가지로 전기소설의 열전화로 추정. 이 과정에서 표현이 바뀌거나 내용이 상당부분 축약되었을 것으로 보임.
- <백운제후>: 조선 초 서거정 등이 편찬한 편년체 사서인 <삼국사절요>에 실려 있음. ‘절요(節要)’는 요점만 간단히 기록한다는 뜻. 파란곡절이 많은 이야기지만 <삼국사절요>에는 그 줄거리만 실려 있음.
최치원
최치원의 줄거리: 본 책 156~159p
<최치원>에는 불우한 문인의 분만감(憤懣感)과 불평지심(不平之心)이 표현되어 있음.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고독한 존재로 그려짐. 불우한 문인이 느끼는 소외감과 고립무원의 감정 상태가 직접적이고 본격적으로 ‘서사’의 문제가 된 것은 우리 문학사에서 <최치원>이 처음임.
<최치원>에서 두 여인은 아버지의 강요된 결혼 때문에 분한을 품고 자살하게 되는데, 짝이 없는 외로운 존재라 할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 최치원이 그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됨. 이렇게 작품의 남녀주인공 모두 ‘고독’이라는 존재론적 상황에 처해 있어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음. 즉, 이 작품에서 사랑은 고독감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의 사랑이 ‘은유’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됨. 그리고 이 은유는 작자의 존재론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짐.
<최치원>의 작자는 누구인가?
1. 최치원이라는 설도 있으나 본인이 썼다고 보기는 어려움.
2. <수이전>을 증보 편찬한 박인량이라는 견해가 제기되어 있기도 하나, 박인량은 불우한 문인의 분만감과 불평지심이 토로된 <최치원>이라는 작품을 쓰기에는 너무나 현달한 인물임.
3. 육두품 문인 최광유가 작자일 것이라는 견해. 최광유는 존재론적 처지는 이러한 작품을 씀 직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나,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단언하기는 어려움.
-> 따라서 고려 초에 ‘익명의 불우한 육두품 출신 문인’이거나 ‘육두품 출신 문인의 후예’가 쓴 작품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음.
이처럼 불우한 처지의 작가가 자신의 심화를 사랑에 가탁하는 소설 문법은 <최치원> 이후 한국 전기소설의 주요한 장르 관습을 이룸. <최치원>은 작품 자체로서는 아직 미숙한 점이 많고, 특출난 문제의식을 보여주지는 않음. 다만 이 작품이 후대의 문학사와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에 문학사적으로 중요함.
Ex) 15세기 후반의 <금오신화>, 17세기 초 <운영전>, 18세기 말의 <심생전>이 보여주는 서사 문법과 미학의 원류 끝에는 <최치원>이 있음.
<최치원>에는 시가 많이 나오는데, 남성주인공 뿐만 아니라 여성주인공 역시도 시를 여러 편 창작함. 이러한 여성 주인공의 문예 취향 자체가 남성 중심적 욕망의 소설적 표현이 아닌가? 여성은 성적 대상물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음.
-> 작품에서 남성의 욕망이 그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성이 단순 ‘성적 대상물’로만 그려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움. 작품 속 여성들은 가부장의 결혼 강요에 의해 희생된 여성일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줌. 또한 이러한 여성의 모습이 부정적이거나 타자화되지 않고 적극 긍정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함. 그리고 이런 면모는 후대의 소설로 이어지고 있음. (ex) <금오신화>, <운영전> 등에서 여성의 정욕에 대한 적극적 긍정이 나타남.)
호원
이 작품의 주인공은 김현이 아니라 호녀, 따라서 <김현감호>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고, 주체의 자리에 있던 여자 주인공을 타자의 자리로 밀어내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함. 반면 ‘호원’은 작품의 내용에 상응하게 여성을 주체로 상정하고 있음.
호원 줄거리: 본 책 162~163p
전기소설은 크게 艶情類, 神怪類, 豪俠類가 있음.
- 염정류: 남녀의 사랑이야기
- 신괴류: 귀신이나 이물이 등장하는 신이하고 괴기한 이야기
- 호협류(검협류): 협객이나 검객이 등장하는 이야기
<호원>은 <최치원>처럼 ‘신괴’와 ‘염정’이 결합되어 있는 이야기임. 불교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불교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창작된 작품은 아님.
<호원>은 인간의 삶에서 자기 희생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묻고 문제 삼은 작품임. 중요한 것은 희생의 주체가 ‘여성’, 그것도 ‘금수’로 그려진 여성이라는 것. 금수로 그려진 여성은 하층 신분의 여성을 은유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즉 ‘호녀’는 지배 체제 주변이나 바깥에 있는 제어하기 어려운, 이중의 타자성을 띈 하층 신분에 속한 여성인 것이다. ‘호녀’의 희생은 김현과 오라비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의 맥락이 느껴지기도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자기희생이라고 하는 문제를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심청전> 역시 이러한 의미의 ‘희생’을 목도할 수 있음.
<호원>은 <수이전>에 수록된 작품으로, 작자는 최치원임. <호원>의 서두에는 “신라에는 해마다 2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라벌의 남녀들이 흥륜사에 있는 탑 주위를 돌며 복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라는 말이나 말미의 “지금도 민간에서는 호랑이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할 때 이 방법을 쓴다.”라던가 “숲을 ‘논호림’이라 이름 붙여 지금까지 그리 부른다”라는 말을 통해 신라의 풍습을 잘 알고, 그 속에 있었던 사람이 지은 작품임을 알 수 있음. 최치원은 살신성인을 행하는 미천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소설의 창작을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됨.
조신전
조신전 줄거리: 166~167p
<조신전>의 서두 “옛날 경주가 서울이던 시절 세달사의 장원이 명주 나리군에 있었다.”는 말을 통해 볼 때 이 작품의 창자시기가 신라 말이 아니라 고려 초임을 알 수 있음.
<호원>과 마찬가지로 불교적 색채가 느껴지지만, 불교 교리를 전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 불교적인 외피 속에는 ‘신라 말’ 농민들이 처해 있던 심각한 현실이 그려져 있기 때문.
<조신전>은 ‘꿈의 형식’을 우리 문학사에 최초로 선보인 작품임. 17세기 후반에 창작된 <구운몽> 속 꿈의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면, <조신전> 속 꿈의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임. 즉, <조신전>의 꿈은 현실의 반영이며,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문제적이고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음.
<조신전>에는 현실의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반영되어 있음.
1. 신분 갈등의 문제: 남녀주인공의 신분이 다름.
2. 신라 말 하층민의 곤고상(困苦狀): 토지에서 유리되어 유망하는 농민의 삶. 극한의 빈곤이 닥쳐 ‘가족해체’가 야기됨.
이 작품은 현실 속에서 사랑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묻고 있음. 지극한 사랑은 어떠한 고난, 어떠한 고통도 견딜 수 있으며, 고난과 관계없이 지속될 수 있는가?
1.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 <금오신화>의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운영전> 등의 내용. 비록 세계의 폭력 앞에 패배하지만, 굴하지 않고 끝까지 서로에 대한 신의와 지조를 지켜냄.
2. 지속될 수 없다. : <조신전>,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으며 리얼리즘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만함. 즉, <조신전>은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을 담고 있는 소설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조신전>은 ‘가난’에 대한 묘사를 리얼하게 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됨. 한국문학사에서 극빈의 고통에 대한 리얼한 묘사와 본격적인 문제 제기는 이 작품이 처음일 것.
<조신전>은 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문학사 속 <침중기>와 비교될 만함.
- <침중기>: 당나라 전기 소설, 주인공 노생이 꿈에서 평생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꿈에서 깬다는 내용.
온달전, 설씨, 백운제후
<온달전>: 신분의 벽을 넘어선 사랑이야기, 신분 갈등이 나타남. 남녀주인공의 신분차이가 존재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지극해 죽음조차도 이들의 사랑을 퇴색시키지 못함.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진 작품. 즉, 진정한 사랑은 신분적 제약과 관련없으며 죽음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
<설씨>: 인간이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서 신의를 부각시키고 있음. 이는 후대 문학사의 ‘절의’나 ‘지조’의 문제와 연결됨. 지조와 절개가 인간이 인간임을 담보하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을 말하는 출발점.
<백운제후>: 마찬가지로 인간이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가치인 신의에 대하여 이야기 함.
-> 이 세 작품 역시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즉 생의 의미에 물음을 제기하며 그 답을 진지하게 모색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세 작품과 공통점이 있다 할 수 있음.
->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 여섯 작품은 설화와 지괴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상 그것들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
나말여초 전기소설의 의의
나말여초의 전기소설은 발생기의 소설에 해당하기 때문에 소설로서 미숙한 점이 없지 않아 있음.
Ex) 서사의 편폭 협소, 갈등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함, 묘사의 구체성이 부족
그러나 이러한 한계점에도 하층민의 사유와 삶, 하층민의 현실을 상층의 문학 속에 담아 냄으로써 상하층의 교섭을 꾀하는 한편, 상층 문학을 새롭게 하면서 확장한 의의가 있음.
이 시기의 전기소설은 상하층의 교섭을 보여줌으로써 육두품 문학이 야기한 상층과 하층의 괴리를 완화하는 것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음.
또한, 한계는 있지만 여성 주체를 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음.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이 더 깊어지고 향상되었다 할 수 있음.
나말여초 전기소설은 향가, 한시, 고승전, 구전 설화 따위와는 차별되는 주제와 문제 의식을 내포하고 있음. 차별되는 주제의식을 담기 위한 새로운 문학 장르인 것. 이로 인해 ‘생’의 의미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성찰과 탐색이 이루어지게 되었음.
나말여초의 소설 작자들은 대부분 익명이나, <호원>의 작자만큼은 ‘최치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최치원이 우리 문학사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소설작가라 할 수 있음.
나말여초 전기소설의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
나말여초 전시소설에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타난 것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음.
1. 소설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승인 위에서 성립될 수 있는 장르이다.
: 남녀가 정욕에 이끌림은 당연한 일인데 소설에서 남성의 욕망만 인정하고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서사가 가능하지 않음.
2. 구전문학과의 관련: 나말여초 소설에서 보여주는 적극적인 여성상은 하층의 행위 양식과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구전문학으로부터 넘어온 것일 가능성이 큼.
3. 전기소설 장르 관습과의 연관성: 전기소설은 한문으로 쓰인 상층의 문학 형식, 기본적으로 단편 형식임. 그래서 그 편폭이 비교적 짧으며 등장인물 역시 제한되어 있음. 특히 애정 전기는 남녀주인공의 일대일 애정 관계가 서사의 중심을 이루게 됨. 이 때문에 여성은 애정 실현에서 비교적 적극적인 면모를 보여주게 되며, 이것이 하나의 장르적 관습으로 구축됨. -> 애정전기의 문법에서는 여성의 이러한 적극성이 장르적으로 전제되는 면이 있음.
나말여초 전기소설과 후대 전기소설 / 중국의 전기소설 비교
나말여초의 소설은 후대의 소설에 비해 설화 내지 지괴와의 관련이 상대적으로 크다. 나말여초의 전기소설들은 설화 내지 지괴를 그 원천으로 삼으면서도 그것들과 미학적 차별을 이뤄내야 했음.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소설에는 민간의 사고방식이 풍부하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그러나 후대의 전기소설은 장르적 독자성이 확고해지며 설화나 지괴와는 멀어지게 됨. 대신 17세기 전기에 창작된 <최척전>에서 볼 수 있듯 실제 사실의 전기화가 관찰됨. 후대 전기소설에서 민간의 현실이나 민간적 사고는 실제 사실의 전기화를 통해 수용되고 있다고 생각됨.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은 육조시대에 성행한 지괴를 탈피한 편, 따라서 지괴와의 관련성은 나말여초의 전기소설보다 희박한 편. 또한 초당 말기 이후 창작되었기 때문에 나말여초의 전기소설처럼 중대한 역사 전환기에 발생한 것이 아님. 이 때문에 상하층의 사고와 시각, 상하층의 문화 의식과 세계관이 소설 속에 혼융된 양상을 보이기 보다는, 현실에서 소외된 선비의 실의와 울분과 체험이 소설 창작의 바탕이 되고 있음. 또한 당나라의 전기는 소외된 선비가 자신의 문재와 시재를 과시해 출세의 기틀로 삼기 위해 창작한 측면이 있어 문장이 화려하고 미사여구가 많음. 이러한 점에서 나말여초의 전기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 문학사 최초의 소설은 무엇인가?
‘전기’와 전기 소설은 다르며 <금오신화>를 우리 역사 최초의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본다면 이는 억지스러움, ‘전기’라는 단어가 소설과 관련되었을 때 대체로 전기소설을 의미하기 때문.
또한 중국에서 전기소설이 창작된 것은 7세기, 일본에서 <겐지모노가타리>가 창작된 것이 11세기인데, <금오신화>가 우리 문학사 최초의 소설이라면 한국은 중국보다 800년쯤 뒤에 소설을 창작한 것. 당시 동아시아의 활발한 문화교류를 생각했을 때 이는 이해하기 힘듦. 따라서 <최치원>, <호원>등의 작품을 소설이 아니고 ‘전기’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인 측면이든 역사적 측면이든 성립되기 어려운 주장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