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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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

두 번의 큰 전쟁

1592년 4월~1598년 11월까지를 임진왜란이라 함. 임진왜란으로 명은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졌지만, 만주의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해 세력을 확장하고 1616년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됨. 이후 1627년 후금은 조선을 침략하고 (정묘호란), 1636년 다시 조선을 침입함. (병자호란)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조선 시대는 전기와 후기로 나뉨.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 인민의 삶에 큰 고통을 주었으며, 민족적 자부심에도 큰 상처를 입게 됨. 또한 전쟁 중 지배층의 무능과 무책임을 목도하였고, 이를 통해 미중 의식이 대두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됨.

조선에서는 16세기 말 이래 임병양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여러 편 창작되었고, 이 중 주목할만한 것으로 권필의 <주생전>, 성로의 <위생전>, <운영전>, 조위한의 <최척전>, 권칙의 <강로전>, 김응원의 <김영철유사>, 홍세태의 <김영철전>, 작자미상의 연의소설 <김영철전>과 <달천몽유록>, <강도몽유록> 등이 있음 <- 이 작품들은 모두 한문소설

국문소설로는 <임진록>, <임경업전>, <박씨전> 등이 있음.

<주생전>

<주생전>은 위 작품들중 가장 먼저 창작됨. 1593년 5월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딱 1년이 되었을 무렵임. 작자인 권필은 선조 2년에 태어나 광해군 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뛰어난 시인이었음. 성격이 자유분방해 벼슬을 하지 않고 시와 술을 즐겨하였으며, 당대 지배층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시를 즐겨 지음. 대표작으로는 <충주석>(권세가가 거대한 신도비를 세우는 모습을 비판), <투구행>(이해관계로 인해 당파 싸움을 벌이는 행태 비판)이 있음. 광해군 초기 외척의 권세를 비판한 <궁류시>를 지은 것이 문제가 되어 유배형에 처해졌는데, 이때 귀양길에서 술을 폭음한 뒤 이틀 뒤에 죽었다고 함..(죽음에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히는 알 수 없음.)

권필은 성로, 허균, 조위한과 가깝게 지냈음. 이 넷은 모두 자유분방한 인간형으로, 소설을 창작했다는 공통점이 있음. 당시 소설은 비정통문학으로 간주되어 정(正)한 문인이라면 쓰지 않았음. 그러나 이들은 서로 문예취향이 비슷하여 다들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추정됨. 권필이 이들 중 소설 창작의 첫 머리를 열었고, 이후 성로가 <운영전>, <위생전>을, 허균이 <남궁선생전>과 <홍길동전>을 창작했고, 조위한이 <최척전>을 창작하였음. <주생전>은 <위생전>, <운영전>에 동일한 모티프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들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임. 작자들이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며 소설을 창작한 것.

<주생전>의 주인공인 주생은 조선사람이 아닌 중국 절강성의 전당 사람임. 처음에는 기생 배도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이후 재상집 딸 선화를 만나면서 배도를 배신함. 배도는 이에 슬퍼하다 죽게 되고, 주생은 배도의 넋을 위로한 뒤 선화와 약혼하게 되지만,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주생은 조선으로 오게 됨.

작중에는 서술자에 해당하는 ‘나‘가 나오는데, 서술자는 작자로 볼 수도 있으며, 주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주생을 위로하는 존재임.

<주생전>은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며, 한국 문학사에서 남녀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문제되는 최초의 작품임. 한국의 애정전기소설은 일반적으로 남녀주인공간의 배타적, 독점적 사랑, 그리고 지조를 보여주는데, 주인공들의 사랑은 몹시 강해 둘 사이에 아무도 끼어들 수 없음. 그런데 <주생전>은 이러한 일반적 서사 문법을 깨뜨리고 새로운 창안을 보임. 남주인공인 주생은 지조를 버리고 개인적 욕망(사랑)을 쫓고 있는데, 이는 인생의 목적, 책임감 등을 잃고 부유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음. 즉, 젊은 지식인의 섬세하지만 나약하고 열정적이지만 무책임한 면모가 표출되고 있다고 여겨짐.

è 이러한 주생의 캐릭터는 작자가 겪은 전쟁 중 심리 상황이 일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임.

<주생전>은 이념이나 관념을 벗어난, 현실 세계에 있을 법한 인간을 그렸다는 점에서이전 소설과 다른 새로운 인간 유형을 창조했음. 주인공이 선과 악으로 완벽히 재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품의 현실성이 돋보이며, 인간에 대한 진전된 인식이 보인다 할 수 있음.

작품 말미에 “대장부가 근심할 일은 공명을 이루지 못할까 하는 것뿐이오. 천하에 어찌 미인이 없겠소“라는 서술자의 말은 꼭 작자의 견해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음. 서술자와 작자의 견해가 반드시 일치해야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작자인 권필은 공명에 큰 관심이 없었음. 그러나 이 말이 당대 지배층의 통념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함. 하지만 주생을 위로하기 위한 상투적인 말에 그칠 뿐임. 작품의 끝부분은 허망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는 전쟁과의 내적 연관이 있는 듯함.

<위생전>

성로는 명종 5년에 태어나 광해군 7년에 세상을 떠남. 정철의 문인이었는데, 벼슬을 하지 않고 자유방달하게 살았음.

당시의 정(正)한 사대부들은 예교를 따르지 않고 거리낌 없는 성로를 광객으로 여겼음. 세계와 화합하지 못하고, 당대 지배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컸다는 점에서 경계인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음.

성로는 아내를 일찍 여의고 혼자 살았는데, 아들은 없고 딸이 둘 있었으나 양자를 들이지 않았음. 서울의 인왕산 아래에 살 때 임진왜란을 만나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했으며, 강화도가 불안해지자 전라도 군산으로 가 거기서 6년을 보냄.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군산이 위험해지자 다시 강화도로 이동해 5년 정도 우거하였음.

1602년 겨울에서 1603년 봄 사이, 성로는 양화도 부근의 작은 산 밑에서 은거했는데, 이 때 기생 설죽과 시를 주고받으며 깊이 교유하였음. 이 무렵 <위생전>과 <운영전>을 창작했을 것으로 여겨짐.

이전에는 <위생전>을 권필이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하였지만, 성로의 문집인 <석전유고>와 <위생전>, <운영전>을 대조하고 작품의 미적 지향과 성로의 생에 대한 지향을 맞춰 보면 <위생전>을 성로가 썼음을 알 수 있음. <주생전>과는 그 생에 대한 지향과 가치 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임.

작품의 주인공인 위생은 중국 금릉(지금의 남경) 사람임. 임진년(1592년)에 친구와 악양에 가서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밤에 술이 깨어 혼자 배에서 내려 어느 곳으로 갔는데, 그곳은 소상국(소재상)의 집이었음. 우연히 딸 소숙방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됨. 그런데 이해에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위생은 조선으로 떠나게 됨. <주생전>에서의 주생도, 위생도 서기의 임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임.

위생은 조선에서 병이 들어 군막에서 숨을 거두고, 시신은 소숙방이 있는 악양으로 운구됨. 소숙방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목을 매어 자결함.

이 작품은 플롯이 비교적 간단하고, <주생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기 때문에 유사한 부분이 많음. 성로는 권필과 절친했고, 따라서 권필의 소설 창작에 자극 받아 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보임. 그러나 <위생전>과 <주생전>의 생에 대한 전망이나 가치 지향은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음.

è <주생전>과 달리 <위생전>에서는 남녀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키고, 사랑 때문에 죽게 됨.

: 이러한 점에서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와 연결됨. 실제로 <금오신화>의 영향을 확인할 수도 있음. 즉, <위생전>은 <주생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지만, <주생전>의 가치 지향에 동의하지 않고 그와 다른 가치 지향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 생에 대한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 인간에게 ‘지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지어졌다 할 수 있음.

<운영전>

<운영전>의 작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음. 북한 학계에서는 작중인물인 ‘유영‘을 작자로 보고 있지만,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님. 최근 허균을 작자로 추정한 논문도 나왔지만 작품의 필치나 감수성이 허균의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워보임.

선생님은 <운영전>의 작자가 성로라고 보고 계심, 그러나 성로가 지었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님. 성로의 문집인 <석전유고>와 <운영전>을 대조하고 작자의 실존과 <운영전>의 미적 지향을 대조한 추정.

<위생전>에는 권필이 지은 <주생전>의 영향이 발견되지만, <운영전>은 그렇지 않음. 따라서 <운영전>과 <주생전>은 완전히 다른 지향과 감수성을 보여줌. 그러나 삽입 시가 매우 많고, 남녀의 사랑이 우여곡절로 서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바가 있음. 그러한 점에서는 상호텍스트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음.

<위생전>과 <운영전>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여타의 소설들과는 다른 남녀주인공이 ‘쉽게 죽는다.’는 공통점을 보여줌. 또한 두 작품의 도입부에서 소숙방과 운영이 읊은 시에는 모두 상사의 정이 표출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이후의 서사 전개가 암시되는데, 공통적으로 당나라 시인 송지문이 지은 <유소사>의 한 구절이 원용되고 있다는 것임.

l  <유소사(有所思)>: 漢代 악부 鐃歌 18곡 가운데 하나. 본시는 그리운 사람이 멀리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서는 ‘봄에 생각하는 바. 곧 인생무상을 느끼고 노래한 것’이란 뜻

이는 성로 소설의 라이트모티브(작품들에 반복되는 기법)를 이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함.

<운영전>에는 남자 주인공의 입을 통해 당나라 시인 이백을 예찬하는 말이 한참 나오는데, <석전유고>를 보면 성로가 이백 풍의 낭만적인 시를 즐겨 썼음을 알 수 있음. <위생전>과 <운영전>의 삽입 시들도 대개 이백 풍의 낭만적인 시들임.

<위생전>이 소설로서 허술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것과 달리 <운영전>은 필치가 빼어나고 주제의식도 문제적이라는 점에서 성로는 <위생전>을 먼저 짓고 이후 <운영전>을 쓴 것으로 보임. 특히 여성의 정욕에 대한 긍정의 메세지는 작품의 창작시기를 고려햤을 때 놀라운 부분이라 할 수 있음.

이러한 점에서 <운영전>은 <금오신화>, <춘향전>과 함께 고전소설의 명편에 속하며,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할 수 있음.

여주인공인 운영은 남쪽의 미천한 신분 출신이며, 남주인공 김진사는 사족 출신 인물임. 서로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됨. 운영은 안평대군이 총애하는 궁녀였기 때문에 둘의 사랑은 위험하고 금지된 사랑이었음. <운영전>은 사랑을 통해 조선 사회의 경계를 넘었다할 수 있으나, 그 귀결이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출구가 없는 조선 사회 내부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겠음.

성로가 위험하고 놀라운 사랑의 서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기녀 설죽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보임. <운영전>처럼 성로와 설죽은 신분에 큰 차이가 있었고, 성로는 설죽을 통해 미천한 신분의 여성, 사랑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이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던 것으로 보임.

이 작품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안평대군의 사궁인 수성궁에서 서술자(유영)이 150년전 인물인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됨. 그런데 작품이 종료될 즈음, 유영이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 꿈 속의 일임이 드러남. 몽유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작품 말미에서 김진사와 운영은 안평대군이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수성궁의 주인이 없어진 것을 슬퍼할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수성궁이 잿더미가 된 것을 가슴아파함. 또, 사육신 중 하나인 성삼문이 궁녀들의 시를 평가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

è 이러한 점을 통해 작가가 안평대군과 성삼문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당시 사육신은 아직 복권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고, 안평대군과 성삼문에 대해 대놓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음. 따라서 작자는 안평대군과 성삼문을 은밀한 방식으로 추억하고 있는 것.

종래에는 <운영전>의 자유연애적인 측면에 대한 주목만이 이루어졌지만,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며, 두 개의 문제의식이 겹쳐있다는 것이 중요함. 또한, 김진사와 운영의 비극이 안평대군과 사육신의 비극으로 들어가는 은밀한 통로가 되고 있어, 두 개의 비극이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음.

<운영전>의 이러한 중층성으로 인해 작품의 전모를 제대로 이해하고, 작가가 보내는 메세지를 제대로 해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음.

성삼문과 안평대군을 통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은근히 소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정신사적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나 임제의 <원생몽유록>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음. 이 점에서 <위생전>에 인간의 ‘지조‘가 문제삼아졌는지 알 수 있게 됨.

<최척전>

조위한은 명종 13년에 태어나 인조 27년에 세상을 떠남. 성로보다 8살이 어렸고, 권필, 허균, 성로와 교유가 있었음.

조위한은 계축옥사 때 파직되어 남원에 우거하고 있다가 최척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최척전>을 창작하였음.

l  계축옥사: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 및 서인,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獄事). 계축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계축옥사라 함.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원인이 되었음. [유사어] 칠서지옥(七庶之獄)

작품 말미에 최적인 작자를 방문해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고 이 일의 전말을 기록해 인멸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대략 그 경개를 적었음을 밝히고 있음.

이 작품은 전쟁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을 뿐인 <주생전>, <운영전>, <위생전>과 달리 전쟁이 인간의 운명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탐구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그리고 있음.

최척은 남원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서울에서 피난 온 옥영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됨. 두 사람은 혼인하게 되고, 전쟁 중이지만 화락한 삶을 살다가,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옥영이 돈우라는 일본 병사의 포로가 됨. 옥영은 나고야로 끌려가 돈우의 집 하인이 되게 됨. 돈우는 원래 장사꾼이라 전쟁이 끝난 후 중국의 복건성, 절강성 등으로 장사하러 가곤 했는데 옥영이 항해장 일을 맡아서 했음. 옥영은 포로로 잡힐 때 남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은 옥영이 남자인 줄 알았음.

최척 일가는 남원성이 함락되기 전 지리산 연곡으로 피난가는데, 이 때 최척은 가족들과 헤어져 그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됨. 최척이 가족들을 찾아 헤매는 대목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핍진하게 보여줌.

(267~268쪽)

묘사가 아주 자세하여, 이전의 소설들에서는 볼 수 없던 리얼리즘의 진전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음.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의 참상을 <최척전>만큼 리얼하게 그려낸 우리 고전소설은 없음.

최적은 가족을 찾지 못해 낙담하고, 중국인 장교를 따라 중국으로 가며,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중국인 벗을 따라 차를 매매하러 베트남으로 감. 베트남에서 우연히 일본 배에 타고 있던 처를 만나고, 최척 부부는 중국에서 살면서 아들 몽선을 낳게 됨. 이후 명나라가 후금을 정벌하기 위해 만주로 군대를 보내고, 최척은 서기로 차출됨.(권필의 <주생전>에 처음 나오는 모티프, 주생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명나라 군대는 무순 부근의 사르후라는 곳에서 대패하고, 명청 교체의 분기점이 됨. 당시 조선은 명의 강요로 1만 3천명의 원병을 보냈는데, 강홍립이 최고 사령관이었음.


<강로전>


<김영철유사>, <김영철전>


두 편의 <달천몽유록>


<강도몽유록>